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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moong Jun 06. 2021

팔레르모에서 세상 힙하게 놀아보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마지막 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사랑했던 곳을 묻는다면 나는 단연 "팔레르모"를 외칠 것이다.


라보카, 산뗄모 등 다른 아름다운 곳들도 많지만,

부에노스에서의 일상을 가장 많이 함께 한 팔레르모는 남미의 느낌은 덜 하지만 그만큼 세상 힙한 곳이 참 많은 사랑스러운 곳이다.


마치 세련된 유럽의 소호거리 같은 느낌을 주는 이곳은 맛있는 브런치, 베이커리 카페는 물론 근사한 레스토랑과 펍까지 남미 여행자들의 여행의 품격을 높여주는 곳들로 풍성하다.


   

이런 팔레르모에 또 다른 숨겨진 스팟이 있다는 걸 난 부에노스를 떠나기 전 날에서야 알게 되었다. 이곳에 그렇게 오래 머물면서도 골목골목 알록달록한 벽화가 있다는 걸 떠날 때가 다 돼서야 알게 된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그래도 떠나기 전에 알게 된 걸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카메라를 꺼내 들고 하루 종일 셔터를 눌러대 본다. 앞으로 만나게 될 다른 남미 국가의 여러 벽화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팔레르모에 대한 나의 남다른 애정이 담겨있으니깐.



부에노스에서의 마지막 날 낮에는 벽화와 함께 충분히 즐겼으니

밤에는 그 어떤 밤보다 화려하게 보내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들 때쯤 오랜만에 거울 속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몇 개 있지도 않은 옷들 중에서 그나마 세련되어 보이는 하얀 레이스 원피스를 꺼내어 입고 캐리어 구석에 고이 모셔 두었던 화장품을 꺼내어 얼굴에 발라본다. 평소 걸리적거려서 잘하지도 않던 귀걸이도 하고 블링블링 반지까지 끼고 나니 오랜만에 진짜 노는구나 싶어 벌써부터 흥분되기 시작한다.

 

배낭여행자 치고 나름 빼입었으니 오늘 저녁 들릴 근사한 레스토랑을 검색해본다. 오랜만에 옷 차려입고 소고기를 슥삭슥삭 썰어 상큼한 샐러드까지 곁들여 먹고 있으니 지금은 꾸질꾸질한 배낭여행이 아닌 마치 호캉스로 휴가 온 느낌이다.



배까지 두둑하게 채웠으니 이제 어디 한번 화려한 마지막 밤을 장식할 클럽을 찾아가 볼까?


밤문화로 핫한 팔레르모 클럽을 야심 차게 찾았는데,

첫 번째 클럽에 들어서자 어라, 이건 내가 생각한 클럽이 아니다. 이 뽕짝 느낌은 무엇인가.

아쉬운 마음에 찾은 두 번째 클럽은 그냥 한 밴드의 작은 콘서트 공연 같은 느낌이다. 이것도 아니야.

그리고 다시 찾은 세 번째 클럽. 어라, 이건 또 뭔가 애매하다. 음악과 리듬이 내 취향이 아닌 건지 이 애매한 리듬과 뭔가 몽환적인 이 분위기에는 도저히 내 몸을 맡길 수는 없다.



이렇게 마지막 밤을 보낼 곳은 정녕 없는 것인가.

한껏 실망하며 나온 팔레르모 거리에는 이미 새벽의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젊은 남녀들로 넘쳐난다.


그런데 웬걸, 저쪽 편에 위치한 어느 한 펍에서 내 몸을 조종하는 흥겨운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게 아닌가.

도대체 저긴 뭔가 싶어 조금씩 발걸음을 옮겨 그 공간 속으로 들어가 본다.


오 마이 갓, 이렇게 흥겨울 수가.



검은 망토를 입고 얼굴엔 가면을 쓴 사람들이 등장하더니 목에 걸쳐 맨 북 같은 악기를 마구 치기 시작한다.

뭔가 아프리카 레게 느낌도 조금 나는, 이 정체 모를 정갈하면서도 흥겨운 비트와 리듬이라면 몸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난 뭔가에 홀린 듯 아래위 좌우로 미친 듯이 흔들어대기 시작한다. 이 연주가 끝나기 전까지는 도저히 멈출 수 없다. 점점 빠져 들어간다.


너도 나도 몸을 흔드는 이 공간이 지금 이 순간 너무나도 좋다. 내 머릿속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빠른 템포의 리듬이 흘러나올 때면 발을 어떻게 놀려야 할까, 오직 그 생각뿐이다. 그저 흥겹고 신나고 재밌다. 이건 뭐 싸이 콘서트와도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다.


이 공간 안에서는 여기에 있는 모두가 하나가 된 느낌이다. 일반 클럽처럼 남녀 간의 접촉, 뭐 그런 것도 전혀 없다. 그저 각자의 위치에 서서 각자의 feel 만을 느끼며 그 feel을 마음껏 표출할 뿐이다.



내가 내가 아닌 기분으로, 남들에게 비치던 나의 모습은 잠시 내려놓고, 오로지 이 순간 만은 나만의 흥에 집중해본다. 너무 충실했는지 음악이 끝나고 난 이후에도 그 흥이 가시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계속 덩실거리게 된다.

 

살면서 가장 흥나던, 내 생에 절대 잊지 못할 밤을 마음속에 담아두면서 그렇게 부에노스에서의 마지막 밤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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