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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Nov 02. 2023

파인딩 포레스터



*영화 줄거리가 나옵니다.





'왜 언제나 자신을 위해 쓴 글이 남을 위해 쓴 글보다 나을까.'

이 대사 하나를 붙들고 본 영화였다. 글쓰기 영화라고 들었는데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은 글쓰기로 보이지 않았고 그래 질문만 던지고 답해주지 않았다.


천재 소년과 천재 남자 어른의 만남은 감독의 이전 작품인 <굿 윌 헌팅>그대로 따른다. <굿 윌 헌팅>은 수학이라 흥미로웠 맷 데이먼과 로빈 윌리암스가 함께 좋았영화였는데 번째는 천재 소녀와 천재 여자어른의 만남이었다면 더 감동적이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전개상 필요한 남의 집 창문 넘기는 범법행위데다 인위적인 장치로 느껴지고 자말이 포레스 집에 실수로 두고 온 가방에서 자말이 쓴 글을 포레스가 보는 장면은 너무 뻔해 실망스러웠지만 사실 그렇지 않고선 둘은 만나기 어려운 사이다.


주인공 자말은 흑인이고 브르통 빈민가에 산다. 열여섯 살인데 고전에 해박하고 기억력도 대단하다. 떠난 아버지, 차별과 가난이 글을 쓰게 지만 같은 환경이라고 모두 자말 같진 않다. 자말은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재능을 숨기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험도 대충 친다. 형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하려 농구에 매달리고 친구들 성화에 다른 집 창문을 넘는다. 그 일탈로 포레스와 만난다.


포레스는 전설적인 작가다. 단 한 권의 책을 출판하고 은둔했다. 평론가들이 자신의 글을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해체하고 분석하는 걸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브르통은 어린 시절 가족과 휴가를 보낸 추억의 장소고 그곳에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이 묻혀 있다. 까탈스러워 신이 쓴 책이 접힌 걸 보곤 '페이지를 접었군.작가에게 물어봤나'라며 화낼 만큼 글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도 대단하다.


재능을 숨긴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같지만 다르다. 자말의 은둔 자기 방어고 포레스의 은둔은 권력이다. 레스터 사람들이 자신을 찾고 기다린다는 사실을 안다. 평론가와 독자를 따돌린 채 엄청나게 많은 책이 쌓여있는 고급스러운 집에서 생필품 쇼핑 고지서를 담당하는 비서까지 두고 산다. 유산이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둔하며 그런 생활이 가능한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이 그의 책 읽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그에게 은둔할 이유인 동시에 은둔할 수 있는 권력이다.


 자말이 쓴 글을 본 포레스말의 재능을 알아보고 관심을 갖는다. 포레스자신이 쓴 글에 빨간펜으로 거칠게 휘갈겨 쓴 피드백을 봤을 때 자말은 제대로 쓰고 싶다는 강력한 갈증을 느꼈을 것이다. 둘은 정기적으로 만나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쓴다. 은둔의 공간은 공유되고 글과 생각이 교류된다.  피부색, 이름, 나이가 아닌 글로 소통다. 나이와 권위의 차이가 선생님과 제자로 보이지만 영화 내내 두 사람의 관계는 우정이었다. 몇 개의 사건과 갈등은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은 그렇게 친구가 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자말을 위해 은둔을 포기하고 포레스가 나타난 장면이겠지만 너무 예측 가능해 긴장감이 없었다. 포레스가 자말이 받은 오해를 풀기 위해 사람들 앞에 나타나 자말이 쓴 우정과 연대, 가족에 관한 글을 낭독한다. 포레스는 브르통을 떠나며 자발적 은둔을 끝내기로 결심한다. 자말을 뒤로한 채 오랫동안 집에 처박아두었던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들 사이를 달리는  뒷모습이 여운을 남긴다. 오랫동안 버리지 않고 자전거를 간직했던 건  역시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느끼게 했다.




영화 속에 글쓰기에 관한 조언 몇 가지가 나온다. 초고를 쓸  생각하지 말고 가슴으로 그냥  쓰 한다. 때론 타자기 소리가 글을 불러온다는 말에 렇다면 타자기를 살까 하고 잠시 고민했지만 (대체로 귀가  글쓰기에 관해선 더 그런 편이다.) 보는 내내 마음에 닿 건 포레스슬픔과 외로움이었다. 동생이 술에 취해 운전하고 사망했을 때 말리지 않은 그 밤의 죄책감을 포레스어떻게 감당했을까. 튼 사이로 거리를 훔쳐보고 여러 대의 작은 티브이로 세상을 만나고 혼자 위스키를 마시 소파에 구겨지듯 잠 그를 보면서 은둔은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말의 재능은 아름다웠고 탐났으며 자말을 알아본 포레스는 근사했다. 포레스를 연기한 배우가  숀 코네리라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내가 가진 편견 중 '글 쓰는 사람은 질투가 많다'가 있는 유명한 작가뿐 아니라 지망생들조차 샘이 많아 서로 견제하고 쉽게 인정하않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영화에도 이런 편견을 확인시켜 주는 인물이 등장하지만 포레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글을 사랑하는 사람은 전도하듯 자꾸만 쓰라고 열심히 권한다. 좋은 글엔 감응하고 쓰라고 격려한다. 영혼이 맑으시군요. 글을 쓰세요. 상처가 있으시네요. 글을 쓰세요. 오해받 일이 생길지라도 자꾸 쓰라고 응원한다.


두 사람의 우정은 서로를 구원한다. 자말은 차별의 족쇄에서 풀려나 재능을 인정받고 포레스는 스스로의 감옥에서 탈출한다. 친구는 삶을 대신 살아주진 않지만 살 힘을 준다. 까진 생채기에 호호 입김 불어주면 덜 아프게 느껴지는 것처럼 위로는 상처를 견디게 한다. 레스가 자신의 집을 말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오랜 시간 손때 묻은 책과 혼자 쓴 글이 남아있는 장소. 그것을 이해할 사람은 자말뿐일 테니 말이다.


영화가 끝났을 때 처음 갖고 시작한 질문의 답은 요원했나 상관없었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글 역시 그렇겠구나 생각했다. 글을 쓰는 동안 물음은 이어질 것이다. 글의 구원을 기다리는 나는 결국 사람과 우정이란 뻔한 구체성이 흔해도 따뜻했다. 글로 맺어진 인연들을 기억하고 같이 쓰는 벗들을 떠올린다. 글로 맺은 우정이 나와 그들을 구원해 주길 바란다. 같이 읽고 쓰며 포레스가 치유되고 자말이 자신을 찾아갔듯 우리도 그럴 것이다. 천재와 천재의 만남이 아니어도 충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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