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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Nov 09. 2023

씨앗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매일 쓰기엔 확신이 적었다. 첫째는 매일 글감을 찾을 수 있을까였고 둘째는 제대로 쓸까였다. 퇴고가 짧으니 완성도가 떨어질게 뻔한데 그렇더라도 매일 쓰는 게 맞을까 의심했다. 일주일 한 편도 어려운 일인데 자판 연습하는 마음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단 생각도 했다. 어디까지 쓸 수 있고 얼마나 쓸 수 있는지 알기 위해 질보다 양이 중요하다고 은유 작가가 말했지 안 써지는 글 쓸 때의 괴로움과 발행 후 부끄러움은 어째야 한단 말인가.

지난 6월부터 베짱이 버전 매일 쓰기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평일 다섯 편 쓰려 하지만 대략 서너 편 쓰고 그마저도 성실하지 . 꾸역꾸역 겨우겨우 숨 끊어지지 않을 만큼 이어가며 4,5개월 지속하고 나니 이제야 매일 쓰기의 효용이 무엇인지 조금 알겠다.

브런치 북을 만들 각에 그간 쓴 100개 정도의 글 중 18편을 라냈. 퇴고할 생각에 다시 읽으니, 이 일을 어째야 하나. 같이 쓰는 벗들이 '짜란다짜란다' 해 주길래 진짜 잘  줄 알았는데 이 사람들, 안 되겠네. 알고 보니 때려치우지 말라고  살려준 말이었다. 혼자 심히 부끄러워 누가 볼까 얼굴 가리 수정했다. 퇴고하고 나니 처음 글과 같지만 다른 흐름이 필요 없는 문단삭제해 모양새가 달라다. 어제는 2021년에 쓴 글을 퇴고했다. 같은 소재였지만 다시 쓰기 한 기분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글은 씨앗구나. 묻어 두었다 고쳐 쓰기 위해 쓰는 글이구나.


《글 쓰는 삶을 위한 일 년》이란 책에선 에세이 쓰기 4단계를 이렇게 나눈다. 1단계 선택해서 말하기 2단계 보여주기 3단계 다듬기 4단계 묵혀두었다가 고쳐 쓰기. 특히 묵혀두는 기간은 적어도 하룻밤, 이왕이면 며칠 밤, 심지어는 몇 주 정도 묵혀놓을 수 있다면 더 좋다고 말한다. 이 책을 쓴 작가 수전 티베르기앵은 자신이 에세이 한 편을 쓰려면 꼬박 한 달 정도가 걸린다고 적었다. 앞서 말한 4단계를 밟을 때마다 새로운 원고, 새로운 판이 나오기도 한다고 했다.  물론 한 달 동안 한 편의 글만 쓰진 않을 것이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매일 규칙적으로 글을 쓴다고 .


매일 쓰는 글은 씨앗글이다. 4단계 중 1,2 단계에 해당된다. 오르는 생각을 기록하고 일상 속 글감을 잡아낸 기록. 다르게 바라본 연습과 잠시 멈춰 골몰한 순간의 흔적. 충분히 묵히지 않았으니 완성도떨어지고 선명하지 않지만 씨앗을 계속 찾고 묻는 일을 반복한다면 글밭은 어떻게 될까. 씨는 본디 작다. 자라서 무엇이 될지 처음엔 눈치채기 어렵다. 매일글은 이미 정리된 생각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열어놓고 나도 몰랐던 것을 쓰면서 발견하는 일이다. 매일 쓰며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다. 매일 쓰는데 어떻게 매일 잘 써요. 망칠 권리, 망치고도 할 변명지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바쁜 시대지만 글은 머물고 쓰고 고치고 쌓을 때 빛난다. 뿌려둔 씨앗은 움틀 것이다. 쓰는 동안 속도를 늦춘 삶이 내면의 원천을 파고들며 나를 자라게 할 것이다. 고쳐쓰기가 반드시 퇴고만 의미하진 않는다. 한 번 썼던 주제를 다시 쓸 때 달라진 표현과 깊어진 사유를 바라보는 즐거움도 클 것이다.  달 20편 정도의 글을 쓴다. 그중 한 편이라도 읽을만한 글이라면 기쁘지만 아니도 씨앗을 얻었으니 괜찮다. 매일 쓰기는 절실함이고 쓰고 고치는 과정 반복하다 보면 언젠간 내가 쓴 이야기가 '들어줄 사람을 찾아 이동하며 자신의 운명을 살아가'는 날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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