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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박 Mar 17. 2024

비박 태국에 적응 못하다

발렌티어의 삶 4

내가 태국에 적응한다고 생각하면서

제일 먼저 한 착각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내가 태국어 잘한다고 착각했던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내가 친화력이 높은 사람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태국에 적응하면서

3개월에서 6개월 차가 되니

인사도 할 수 있고 밥도 먹으러 갈 수 있었으며

내가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었다.

내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이 해결되니

내가 태국어를 잘한다고 착각을 하게 되었다.

그 답답한 시절에는 주로 하늘을 찍었다. copyright ⓒ 2024 all rights resvered by danbi park




하지만,

여기에는 반전이 있었으니    

내가 하는 태국어로 사람들이 이해를 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맞은 단어로 그들은 알아들은 것이었으며

상황과 환경을 보고 언어를 하고 있지만 바디랭귀지처럼

사람들이 나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던 것이었다.




하늘 2 copyright ⓒ 2024 all rights resvered by danbi park


태국에서의 삶이 익숙해져서 처음으로 간

큰 백화점에서

평소와 같이 말을 했지만

못 알아듣겠다고 영어로 해달라는 점원의 

말을 들으며

충격을 받으면서

나의 그동안의 태국어가 엉터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삶, 태국에 적응하지 못하는 삶,

그 지점이 시작되었다.







태국에 처음 도착해서는

태국의 환경과 날씨에 적응하느라

혼자만 심각하고 바쁜 삶을 살았다.

하늘 3 copyright ⓒ 2024 all rights resvered by danbi park

3개월이 지나가니

모든 것이 익숙해졌고

다른 부분들이 나의 삶에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은 이해가 되지만

태국 타임과, 항상 웃는 사람들…


태국 타임은 코리아 타임과 비슷한 부류인데

한국이 10~30분 사이의 늦음이었다면

태국은 30분 이상의 유동적인 시간이 있었다.


나는 누군가

빠름의 민족에서 왔고

항상 과제 마감 기일에 지쳐있던 대학원생을

휴학하고 온

빠름이 뼛속까지 탑재된 한국 대학원생이었다.


처음에 30분은 그냥 그런가 보다

사고가 있겠지, 사정이 있겠지 했지만

그 30분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나를 무시하나? 까지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본질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현상만 보고 화를 내기 시작했고

나만의 타임을 만들어 그 시간이 지나면

말을 안 하고 집으로 갔다.

(생각하면… 나도 참.. ㄸㄹㅇ….)


그렇게 다시 만나면 어색하지 않게 웃는 사람들이 정말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저 사람들은 내가 무례하지 않은가? 내가 싫지 않은가?

왜 아무것도 없었던 일 정도로 나를 대하는지?

이 수많은 물음에  나 스스로는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이 뺀 라이(Mai Pen Rai, ไม่เป็นไร ) 사건


마이 뺀 라이란 괜찮아요.


나는 이 마이 뺀 라이를

한국적인 정서에 녹였다.

그래서 뭐 줄까? 어디 갈래? 의 답변이

마이 뺀 라이라고 오면

성심 성의껏 모든 힘을 다해

주고 또 주었었다.



그렇게 주면

또 마음 좋은 태국 사람들은

예쁘게 웃어줬으니까

나의 주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근데,

어느 순간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

웃음뒤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웃음은 웃음이었지만

그 뒤에 무언가의 찜찜함이 감돌았다.



나,

참지 않는 ENTP로써

궁금하면 물어봐야 직성이 풀려서

친해진 태국인 언니한테 물어봤다

우연한 인생샷 copyright ⓒ 2024 all rights resvered by danbi park


나에게 있어서 마이 뺀 라이란

마이 뺀 라이 → 괜찮아 → 좋아였지만

상황에 따라서 태국에서는

마이 뺀 라이 → 괜찮아 → 더 권하지 말아 줄래?

까지…. 확장판의 느낌이 있다는 것을


이 이후로 마이 뺀 라이의 상황에서는

상황과 분위기를 읽기 시작했고

태국의 삶에 적응하면서

나 자신도 좋아, 싫어 대신에

마이 뺀 라이를 쓰는 내가 되었다.




그 마이 뺀 라이(싫어, 더 권하지 말아 줄래?)의 뒤의 웃음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었다.

항상 웃는 태국인이 신기한 난 웃음에 궁금함이 많았었는데

우연한 기회의 대화에서 알게 되었다. 


침략은 당하지 않았지만

식민지가 된 적은 없지만

태국인 사이에서는 전쟁의 불안함은 항상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상황에서 호의를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고

그게 웃음이라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썰이 있는데

그 이후로, 슬퍼도, 놀라도, 좋아도 모든 순간에 웃음을 지니게 되었다는…

그들의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 웃음을 사용했다는 말을 듣고

그들의 웃음이 웃음으로 보이지 않고

그들의 감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좋은 것이 좋은 것이었다.

그래서 문화 속에 심각함이 없는 것이었다.

한국적인 시각으로 보면

느리고, 확고하지 않고, 대충대충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그 삶과 문화에서는

그들이 선택한 생존의 문제였던 것이다.

처음으로 태국 친구에게 받은 선물 copyright ⓒ 2024 all rights resvered by danbi park


그 이후로

나는 처음으로 내 한국 문화를 내려놓기 시작했고

태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나의 문화를 강요하지 않고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태국에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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