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삼세판
“바지는 무릎까지 걷히는 거 입으셨죠?“
Y병원 간호사샘이 물으셨다.
“???? 네… 저 반바지인데요.”
어색한 웃음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몹시 친절하셨던 간호사 샘은 이것저것 더 물어보신 후에 내 mri를 복사해 가셨다. 그리고 영겁 같은 시간을 기다린 후… 비로소 의사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어… mri 상으론 인대가 안 보이는 건 맞아요. 파열 맞는 거 같네요. 그래도 다른 검사도 해봅시다.”
와…. 각오는 했지만 맞은데 또 처맞으니 아팠다.
망연자실한 상태로 X-ray도 찍고, 이학 검사도 했다.
이학 검사…
Rachman test : 무릎을 20도-30도 정도 구부려서 정강이를 앞으로 빼보는 그거…
Pivot-shift test : 다리를 살짝 내회전 시켜서 접었다 폈다 하는 그거…
“어? 무릎이 조금 밀리긴 하는데 완파 정도는 아닌데요. 이 정도면 동요도 없는 겁니다.”
아, 그러니까… 나 일상생활에서 흔들리는 거 못 느꼈으니까요. 내가 겁나게 둔한 건가 싶었다고요.
“그럼 초음파 좀 봅시다. 초음파에서 인대는 안 보이지만 뼈의 움직임은 보이니까요. 인대 파열이 있으면 뼈 움직임이 다르거든요.“
한참을 이리저리 다리를 돌려보며 초음파를 문질러보던 의사샘 말씀하시길…
“어…. 그런데 뼈의 움직임에서 딱히 인대 완파 소견은 안 보이네요. 움직임에서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
그리고는 X-ray.
“X-ray 상으로도 문제는 없는데… 골반이 많이 틀어져있네요. 혹시 골반 안 아프세요? 이 정도면 무릎보다 골반이 더 문제예요. “
어쩐지… 오래 서있는 게 힘들더라니.
근데요. 저는 골반보다 제 십자인대의 부재중 여부가 더 시급합니다.
“그럼 무릎에 물 좀 빼볼까요? 인대가 파열되었으면 출혈이 있었을 테니까요. 확인 차 뽑아봅시다.“
어?? 잠깐만요. 십자인대를 먼저 끊어먹은 내 십자군 동지한테 듣기로, 그거 악소리 나게 아프다던데??? 라고 항의도 하기 전에 끝났다. 실로 독감 예방 접종보다도 안 아팠다. 뭐지? 십자군 선배?? 그대의 악소리 상한경계선이 낮은 거야? 아님 그 의사가 잘못 찔렀던 거야?
“여기 노란물 보이죠? 이건 염증이고, 피는 아니에요. 출혈은 없는 거 같아요. 아니면 이미 만성일 수도 있고요… 근데 동요도랑 초음파를 보면 완파는 아닙니다. 수술은 필요 없고요. 주사만 맞으면 될 거 같습니다.”
아… 그토록 듣고 싶었던!! 수술이 불필요하다는 말을 결국 듣고 말았다. 그런데 왜!!!
“그런데 왜 mri에서는 십자인대가 안 보이죠?”
“mri가 제일 정확한 것을 사실입니다만, 단면 사진이라는 단점이 있고, 뭐… mri가 전부는 아니죠. 그래서 다른 검사도 해보는 겁니다.“
“저… mri 다시 찍을까요?”
“아뇨. 필요 없어요. 또 저렇게 나오면 찝찝하기나 하지. 그런데요. 하지정맥이 심하네요. 하지정맥 약 처방해 드릴게요. 압박스타킹도 구입하셔서 매일 착용하세요.”
하지정맥이고 골반이고 나발이고 전혀 안 들렸다.
‘수술은 필요 없어요.’ 이 말만 둥둥 떠다녔다. 아파봐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안다더니… 아파봤는데도 여전히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냥 지금 당장 문제인 십자인대 말고는 그 무엇도 관심 없었다. 나는 그렇게 의사샘께서 내미는 압박스타킹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그 후 열심히 재활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로 마무리 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진심으로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네 인생은 덮으면 끝인 동화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마무리하기엔 앞으로 살날이 40년이 남았을지도 모르고, 운동은 20년은 더 할지도 모른다. 한번 다치면 수술을 하건 비수술로 가건 절대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무릎 십자인대! 그래, 예전으로 돌아가진 못 하더라도 나중에 이때를 생각했을 때 적어도…
‘그래, 그래도 나 그때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라는 생각은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길을 선택하던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한 미련이 남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 후회를 덜 할 거 같았다.
그래!! 전문가들의 의견조차 이토록 다르다면,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더 들어보자! 더 들어보고 더 생각해 보고 더 관찰해보고 그리고 판단하자. 그래도 너무 늦지는 않을 것이다.
3화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