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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Feb 10. 2021

별 보러 가서 시트콤 찍고 온 사연

지난 월요일 밤.
갑자기 별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어 조금은 울적한 나에게 기분전환이 필요 것 같았다.

몇 달 전에 화사가 '나 혼자 산다'에서 별을 보러 다녀온 에피소드가 방영된 후, 나는 친구들과 별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달의 위상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던 나와 친구들의 무지함 덕분에 별보다는 보름달만 열심히 보고 왔던 기억이 있었기에, 가장 먼저 달의 위상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그믐달이 뜨는 시기이다. 별을 보기에 최적의 달 상태였다.

그다음으로 달의 위상만큼 중요한 날씨를 확인했다. 설 연휴 전날이 수요일에 날이 좋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구름이 껴있다. 대신에 화요일이 구름 없이 맑은 날이 예상되었다.
다음날 회사를 가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그래도 가고 싶단 생각이 든 김에 빨리 가기로 정했다.

마지막으로 어디에서 볼 것인가를 정해야 했다. 지난번에 다녀왔던, '나 혼자 산다'의 화사 덕에 널리 유명해진 화악터널을 다시 갈 것인가, 새로운 곳을 갈 것인가.
검색해보니 양평에 벗고개라는 곳이 별을 보기 좋다는 평이 많아 최종 목적지로 '벗고개'를 선택했다.

이렇게 해서 순식간에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따뜻하게 입고 가는 일만 남았다.

요즘에 오랜 기간 여행을 못 가서 그런가 이렇게 별 보러 간다는 것 자체에도 뭔가 맘이 설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저녁 6시 30분. 퇴근과 동시에 차를 몰고 벗고개로 출발하였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소떡소떡을 하나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어두운 길을 1시간 반넘게 달려 드디어 벗고개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와~' 하는 감탄사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새어 나왔다.
정말 하늘에 별이 쏟아진다. 이렇게 별이 많은데 그동안 잊고 지냈구나 새삼 깨닫는다.

수많은 별을 보고 있자니, 칼 세이건이 저서 코스모스에서 얘기한 '저 거대한 우주에 생명체가 지구에만 존재하는 것은 얼마나 거대한 공간적 낭비인가?'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한 시간여의 별멍.
뒷목이 아파올 때까지 생각 없이 하늘만 바라봤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슬슬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진짜 문제 역시 이제부터 시작되었다.



시계를 보기 위해 핸드폰을 보는데, 이상하게 핸드폰 전원이 꺼져있다.
의아해하며 핸드폰 전원을 켜는데, 잔여 배터리는 0%라는 표시와 함께 몇 초 후 자동으로 전원이 꺼졌다. 분명 도착했을 때 배터리가 52% 였던 것을 기억하는데, 갑자기 0%라니 황당했다.
핸드폰이 너무 차가워져서 배터리가 방전이 되었을 수도 있단 생각에 핫팩으로 따뜻하게 만들어 보고, 흔들어 보고, 때려보고 별짓을 다해봤지만 여전히 켜지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핸드폰에 집착하는 이유는 내 차에는 장착된 내비게이션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매립된 내비게이션은 고장 나서 켜지지 않은지 2년도 넘었다. 그 말인즉슨 핸드폰이 없으면 내비게이션이 없다는 의미이다.
이 외딴곳에서 집까지 내비게이션 없이 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어떻게 해서든 충전을 해야 한다는 일념 하에 차에 비치해둔 충전기를 찾았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막 사용하던 케이블이라 끝부분이 접촉이 불량해 충전이 되질 않는다.
슬슬 멘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별을 보며 힐링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이제는 '집에 어떻게 가야 하지?' 하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핸드폰이 될 때까지 시간을 계속 지체할 수는 없으니, 일단 고속도로까지만 어떻게든 가면 집 까지 찾아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우선 길을 나섰다.
머릿속으로 왔던 길을 돌이켜 본다. 고속도로에서 나와서 짧게 몇 번 회전을 하고, 어두컴컴한 시골길 5킬로 정도를 쭉 직진해서 와서 좌회전을 한번 해 언덕을 올라왔던 게 생각이 난다.
그럼 반대로 언덕을 내려가다 우회전 후 직진해서 간다. 나의 1차 목표였다.

예상대로 언덕을 내려오니 삼거리가 나왔고, 계획대로 우회전을 했다. 그리고 한 3분여를 가는데 갑자기 예상에 없던 삼거리가 또 나온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내 기억이 틀린 건가?' '여기서 길을 잘못 들면 어디가 나오는 거지' '오늘 안에 집에는 갈 수 있을까' 별별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일단 최대한 직진에서 가까운 길로 차를 몰아갔다.

맞는지 틀렸는지 모르는 어두컴컴한 시골길을 달리는 순간의 그 느낌은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긴장되고 긴박한 느낌이었다.
길을 좀 더 달리다 보니 갓길이 나왔다. 불안감에 나는 일단 차를 세웠다. 그리고 아까 꽂아 놓은 핸드폰을 봤다. 달리는 동안 접선이 되었는지 무려 2%가 충전되어 있었다.

나는 바로 핸드폰을 켰다. 얼마 충전이 안되어 또다시 꺼질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확인하는 게 무엇보다 더 중요했다. 빠른 손놀림으로 내비게이션을 켜고 집을 목적지로 선택했다.

다행히 지금 가고 있던 길이 맞았다. 언제 또 꺼질지 모르니 네비가 안내하는 길을 최대한 외우려고 시도한다. 3.6킬로미터 앞에서 양동면사무소 방향 회전교차로에서 양동면사무소 2시 방향 회전 후, 600미터 앞에서 다시 우회전, 그리고 3킬로미터 앞 회전교차로에서 직진, 그리고 300미터 앞에서 좌회전 후 고속도로 진입.

2시 방향. 우회전. 직진. 좌회전 계속 외우며 어둡디 어두운 길을 달렸다.
다행히도 핸드폰은 충전이 되다 말다를 반복하며 1~2%를 왔다 갔다 하며 고속도로를 진입할 때까지 켜져 있었다.
동양평 IC 간판을 보는 순간 얼마나 안도가 되던지..
톨게이트가 이렇게 반가웠던 적은 단연코 이번이 처음인 듯했다.



그리고는 한 시간여를 더 달려 밤 12시가 다되어서야 겨우 집에 도착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나는 도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이 야밤에 혼자 뭔 쑈를 하고 있는 건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안에서는 에너지가 넘쳤다. 요즘에 나에게서는 느낄 수 없던 에너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긴장감 속에서 이상하게도 솟아난 에너지.

그리고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요즘처럼 무기력이 되풀이되는 나에게 필요한 건 지금 무엇이든 액션이 필요하단 것이다.

혼자 별 보러 가서 시트콤을 찍고 왔지만 생각보다 얻은 것이 많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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