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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명 Jul 26. 2024

집과 대바구니

이규보의 『이옥설(理屋說)』이 말하는 백신


집에 오래 지탱할 수 없이 퇴락한 행랑채 세 칸이 있어서 나는 부득이 그것을 모두 수리하게 되었다. 이때 앞서 그중 두 칸은 비가 샌 지 오래 되었는데, 나는 그것을 알고도 어물어물하다가 미처 수리하지 못하였고, 다른 한 칸은 한 번밖에 비를 맞지 않았기 때문에 급히 기와를 갈게 하였다. 

 그런데 수리하고 보니, 비가 샌 지 오래된 것은 서까래, 추녀, 기둥, 들보가 모두 썩어서 못 쓰게 되었으므로 경비가 많이 들었고, 한 번밖에 비를 맞지 않은 것은 재목들이 모두 완전하여 다시 쓸 수 있었기 때문에 경비가 적게 들었다.  


        


 위 글은 고려 고종(高宗) 때의 문인 이규보(1168~1241)의 『이옥설(理屋說)』 중 일부이다. 

 이규보에 대해서는 예전 ‘이규보의 거울’의 『경설(鏡說)』을 통해 잠시 살펴본 바가 있는데, 그는 광세(曠世)의 문인이거나 시대의 아부꾼이라는 양 극단의 평가가 가능한 문제적 인물로 요약될 수 있다. 어렸을 적부터 시를 지어 김시습과 같은 신동으로 불리었으며, 일찍이 술을 즐기면서 방종한 시기를 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강화문학관에 가면 이규보에 대한 자료를 볼 수 있다.   월요일 휴무이며, 화~일 오전9시~18시. 관람 무료.   그런데 내가 왜 강화문학관을 홍보하고 있지? 



 이렇듯 풍운의 소년시절을 보내고 그는 본격적인 입신양명의 길을 모색하게 되는데, 고려 무신정권의 동향을 유심히 살피다가 최충헌(1149~1219)에게 시문(時文)을 지어보내 등용하게 된 것은 가히 ‘모수자천(毛遂自薦)’이라 할 수 있겠다. 몽골군의 침입을 진정표(陳情表)로써 격퇴한 것이 대표적인 그의 업적으로 볼 수 있겠고, 명문장가로서 시·술·거문고를 즐겨 삼혹호 선생이라 자칭했으며, 만년에는 불교에 귀의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백운소설(白雲小說)>, <국선생전(麴先生傳)> 정도를 들 수 있다. 


권력에 아부하는 '어용 지식인'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나는 자신을 알고, 자신이 가야할 길을 스스로 개척한 이규보를 높이 평가한다. 무엇보다 그는 훌륭한 수필가였다. 



 『이옥설(理屋說)』이라는 제목은 ‘집(屋)을 수리(理)하며 깨달은 생각’이라는 의미이다. 이규보는 이 글에서 자신의 집을 수리했던 경험을 통해 올바른 삶의 자세와 태도를 밝히며, 이를 나라의 정치에까지 확대하여 유추적용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의 몸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잘못을 알고서도 곧 고치지 않으면 몸의 패망하는 것이 나무가 썩어서 못 쓰게 되는 이상으로 될 것이고, 잘못이 있더라도 고치기를 꺼려하지 않으면 다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집의 재목이 다시 쓰일 수 있는 이상으로 될 것이다.     


                                                                 


 설(說)은 고전 수필의 한 종류로, 구체적인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2단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비유나 우의(寓意)적 표현이 많으며 깨달음을 통해 교훈을 얻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스스로를 경계하는 췌언(揣言)의 형식, 비판을 바탕으로 한 비평(批評)의 형식, 문답(問答)의 형식, 견문(見聞)의 형식 등으로 구성될 수 있는데, 일상에서 비공식적인 관용구로 쓰이는 ‘설을 풀다’에서의 ‘설(說)’로 이해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이규보는 설(說)이라는 장르답게, 의견을 서술하여 주장하는 한문 문체인 ‘논(論)’에 비하여 형식이 유연하고 문학적 감수성을 가미한 문체로 자신의 생각을 이곳 저곳에 전이시키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나라의 정사도 이와 마찬가지다. 모든 일에 있어서 백성에게 심한 해가 될 것을 머뭇거리고 개혁하지 않다가 백성이 못살게 되고 나라가 위태하게 된 뒤에 갑자기 변경하려 하면, 곧 붙잡아 일으키기가 어렵다.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실 『이옥설(理屋說)』에서 이규보가 깨달은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자신의 집에서 망가진 부분을 제 때에 수리하지 않아, 나중에 더 큰 비용이 들게 된 일화를 인간사와 연결하여 잘못은 바로 고쳐야 함을 피력한다. 그리고 이를 국가의 정치에까지 확대 적용하여 때에 맞는 개혁의 필요성을 설의적 표현을 통하여서까지 강조하고 있다.      


 집(屋)과 관련하여 깨달음을 얻는 주체는 비단 선인(先人)들만이 아닐 것이다. 고려의 이규보는 집을 수리하는 실생활의 체험을 통해 위와 같은 의견을 내게 되었고, 조선 후기의 박지원(1737~1805)은 『염재기(念齎記)』를 통해 선비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말 것을 집에 붙인 이름과 연관지어 말하고 있으며, 정약용(1762~1836)은 『수오재기(守吾齋記 )』에서 큰 형인 ‘정약현’의 집 이름의 연유를 생각하다가 깨달음을 얻는다. ‘수오재기’는 ‘나를 지키는(守吾)’, ‘집(齋)’이라는 제목의 해석처럼, 세상의 표면, 즉 속세에만 몰두하는 현상적 자아로만 살아가다가, 자신의 본 모습인 본질적 자아를 잃어버리는 우를 범치 않기를 당부하고 있다.


조상들은 '집'을 보며 마음과 태도를 성찰하였는데, 지금은 '집값'을 보며 집을 사지못한 자신을 구박하거나, 영끌로 집을 사면서까지 자신을 학대하곤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선인들이 ‘집’이라는 대표적인 사물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며, 국가라는 공동체에까지 관심을 가짐에 비해 우리는 ‘집’을 ‘움직이지 않는 재산’이라는 의미의 부동산(不動産)으로만 바라보며, 



‘왜 내가 수년 전에 아파트를 매입하지 않았을까’,  


‘왜 내가 그 때 집을 그 가격에 팔았을까’,  


‘경매로 돈을 벌 수 있다는데...’


와 같이 자본주의 경제적 성찰만을 하지 않던가? 

 이는 동일한 제재를 놓고도 판이한 수필이 나오는 격인데, 시대적 차이를 내세우며 변명만 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우리의 관심사가 ‘마음’과 ‘정신’에 있는지, ‘물질’과 ‘풍요’에 있는지를 반성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문명의 이기(利器)’라는 측면에서는 선인들이 살았던 시대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이 발전하여 궁극의 편리함을 추구하고 있지만, 누리고 있는 편리함 만큼 과연 선인들보다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선인들이 ‘집’을 생각하며 자신의 마음을 성찰했다면, 우리는 ‘집값’을 생각하며 자신의 선택을 성찰한다.      


 『이옥설(理屋說)』을 집필했을 당시는 고려 말 무신들이 집권하는 가운데 외세(몽고)의 침략이 있었고, 이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매우 피폐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이규보는 행랑채를 수리한 경험을, 사람을 거쳐 나라의 정사에까지 확대 적용하면서 개혁의 필요성과 백성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였던 것이다.

 


강화에 있는 이규보의 묘역.  고려 무신정권의 실세였던 최충헌과의 만남이 지금의 이규보를 있게 하였다.  모든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집’이라는 사물의 구체적 현상과 개인의 ‘경험’을,  ‘통찰’과 ‘깨달음’이라는 추상적 교훈과 공동체의 ‘본질’이라는 가치로 승화시킨 이규보를 생각하며 현대인의 골다공증에 걸린 듯한 마음의 구멍들을 바라본다.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아닌 기승전(起承轉)으로 수렴하는 자본주의를 거쳐 이미 AI(인공지능) 정보화 시대에 진입해버린 마당에, ‘마음’이니 ‘정신적 가치’이니 외치며 미련을 갖는 것은 큰 빌딩의 대형마트 한 구석에서 ‘담양 대바구니’를 쭈그려 앉아 파는 할머니와 같은 모습인 걸까?  아니다. 인간성이 상실되어가며 마음의 병이 법정 전염병보다 무섭게 전파되고 있는 지금, 할머니의 대바구니는 유일한 백신일 수 있다. 

우리가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전남 담양의 대바구니 만드는 모습.  플라스틱 바구니에 밀려 대바구니의 수요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바구니도 기계로 대량생산을 하기에 특히 수공예로 만든 대바구니는 매우 귀하다.



인류를 구할 수 있는 백신을 품에 안고있는 주인공.  팬데믹의 절정은 생물학적 감염이 아닌, 정신의 붕괴가 전파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우리의 마음에도 면역체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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