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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지 Oct 14. 2021

깊은 밤을 날아서

오리역 부근에 좋아하는 카페가 있다. 커피 맛과 분위기가 좋고 주차도 가능해서 분당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 자주 가는 곳이다. 며칠 전에도 그곳에 갔다. 지하에 주차를 하고 올라가니 경비아저씨께서 카페가 문을 닫았으니 차를 빼 달라고 말씀하셨다. 저녁 시간인데 벌써 닫았다니. 아쉽지만 차를 빼러 내려간다. 만나기로 한 사람과 길이 엇갈릴까 봐 함께 내려갔다. 상대는 길가에 차를 대놨다고 했다. 그곳으로 가기로 한다.


옆좌석에 요가 매트와 운동화가 있어서 황급히 뒷좌석으로 치우며 말했다.

'아잇, 먹고살려고...'

상대는 대꾸 없이 옆 자석에 앉았다. 짧게 기도하고 시동을 켜 지상으로 올라간다.


어두침침한 골목에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적당한 곳에 나도 차를 댔다. 상대와 나는 곧바로 내려 좀 걷기로 한다. 다른 카페에 들어가자고 제안하는 말을 거절했다. 다른 카페에 가고 싶지 않았다. 다만 너무 추우니 따뜻한 음료를 한 잔 산다. 앉을만한 곳을 찾으며 걸었다. 저녁 7시였다.


우연히 상대도 나처럼 피자를 시켜먹고 나왔다고 한다. 서로 아주 배불러하며 벤치에 앉았다.

'아이고 읏차차'

앉자마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근육통이 오랜만에 찾아왔다. 빳빳하게 굳은 뒷목 때문에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 듯했다. 심한 두통에 눈을 찡그렸다. 언제부터였지, 운전하면서도 이랬던 것 같은데 머리가 왜 이렇게 아프지. 놀라는 기색의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픈지 몰랐다며 변명했다. 그랬다면 약속을 미뤘을 텐데.


상대의 말을 들으며 가만히 있는데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호흡이 빠르다. 상대와 나는 황급히 차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이거 이거 심각한데 정말.이라고 생각하면서  허벅지에  손을 올려 기댄  신호등을 기다렸다.



옆자리에 탄 상대가 마스크를 벗으라며 일러주었다. 싫다며 거절했지만 천천히 호흡하라며 마스크를 벗겨주었다. 콧물이 났었는데, 민망하다. 이후로는 상태가 좋아졌다. 남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상대는 떠나고 나는 그 자리에 남았다. 앞 뒤로 차가 주차되어 있는 어둑한 골목에서 내일 출근하지 않아도 됨에 감사하며 이 순간을 보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모습을 마주 보고 성장하는 일렬의 과정 속엔 살갗을 떼어내는 만큼의 고통이 있다고 들었다. 이 고통이 그 고통인가 헤아려봤다.


그날, 오리역 어둑한 골목에서 나의 차는 배터리가 나갔다. 배터리가 나갈 정도로 오래 차 안에 있어본 적이 처음이었고, 사이드 미러가 접혀 있지 않은 차 문을 무작정 열어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살갗을 떼어내는 고통이라니. 살아오는 동안 반복하며 나를 공격했던 것들을 막기 위해 세운 방어막, 살갗에 붙은 나의 트라우마를 떼어내기 때문인 걸까. 그 고통이 무서워 내가 세운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나는 평생 그 안에 갇혀서 살아야 한다. 똑같은 기준을 타인에게 세우기도 한다. 그 안은 진정 자유로워 보여도 누군가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기는 힘들다. 창틀 사이로 손을 뻗어 잡으며 그쪽으로 가지도, 내쪽으로 안지도 못하는 격이다. 이미 시작이다. 천천히 무너뜨린다.


보험회사의 차가 도착했다. 마침 어슬렁 거리며 나의 차 문을 열기 위해 다가오는 얼빠진 남자를 향해 빵-하고 경적을 울리려는 참이었다. 담배를 문채로 꽁무니를 뺀다. 보험회사의 차에선 나보다 어려 보이는 남성분이 내렸다. 새벽 2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얼마나 피곤할까. 덕분에 나의 차는 다시 시동이 걸렸다. 40분을 더 시동을 켜놓고 있으라는 말을 따라 나는 오리역 주변을 뱅뱅 돌다가 집으로 향했다. 초보운전 딱지가 민망할 정도로 운전이 늘었다. 작년 나의 소망이었던 '안전 운전'이 이제 나의 주특기라니. 시간이 그런 식의 해결을 해주는 것이라면 이번 것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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