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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지 Sep 19. 2021

소아과에서 보낸 20분

개월 수로 쪼개지는 나이를 가진 아기들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키가 비슷한데도 하는 행동이 미세하게 다른 아기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엉아와 어(너)로 서로를 구분했다. 엄마들은 뒤엉켜 노는 아이들을 보며 허허하고 웃거나, 자신의 아이보다 몇 개월 더 산 엉아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아이의 근미래를 추측하기도 또 반대로 회상에 빠지기도 한다.


아기들 무리의 뒤편엔 백신 주사를 맞으러 오신 어르신 분들이 여럿 계셨다. 분명 자녀들의 도움을 받아 백신 예약을 하고 오셨을 테다. 이른 시간 병원을 찾아오신 어르신들의 두려움이 마스크를 뚫는다. 나의 부모님의 근미래를 나도 보았다.


소아과에 있는 아이 중엔 코를 훌쩍이며 아픈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개월 수에 따라 필수로 맞아야 하는 예방 주사를 맞기 위해 찾아온 듯했다. 그중 한 아빠가 육아수첩 같은 것을 들고 아이를 눕힌 채 몸무게를 재고 있었다. 맞은편 간호사가 물었다.

- 아이 개월 수랑 키가 어떻게 돼요?

- 키요...?

- 키 모르세요? 서서 잴 수가 없으니까...

- 아 잠시만요, (전화를 건다) 키, 키 알려달래.


내가 머쓱해서 차마 엔딩은 보지 못했다. 대부분 엄마와 찾아온 아이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아이의 엉덩이를 두드리던 아빠는 아이의 키를 몰라 적잖이 당황해 보였고, 간호사 선생님은 태연했다. 아예 전화를 바꿔 받아 엄마와 통화를 하고 싶은 눈으로 아버지께 빠르게 몇 가지를 더 묻고는 데스크로 향하셨고, 아빠는... 아빠였다.


 차례가 됐다. 아기들도   있는 로션을 처방받기 위해 이곳 소아과를 찾아온 나였다. 로션과 크림을 하나씩 처방받고 빠르게 계산  빠르게 병원을 나왔다.

홀 몸으로 이 병원을 오고 가는 유일한 사람이 아닐까 하면서, 백신 예약을 나도 이곳으로 예약해야겠다 하면서, 아직은 익숙한 인터넷이 내가 늙었을 땐 신경 시냅스로 연결하는 둥 컴퓨터 언어를 배워야 하는 둥의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날 세상에서 소외시키지 않길 바라면서, 새로운 가정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미래의 남편은 어떤 아빠가 될까 생각하면서.


20분 동안 시간과 정신의 방을 갔다 온 기분이었다. 코끝에서 알코올 냄새와 아가 냄새가 각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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