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일기장아. 바빠서 본체만체하던 너를 이럴 때나 돼야 찾다니 미안하네. 커피가 대접으로 나왔는데 반이나 마셔버렸거든. 하는 수 없이 끄적끄적.
얼마 전에 방의 구조를 바꿨더니 침대가 더 편안한 느낌이야. 잘 때 빼곤 누워있지 않았는데 요즘은 자주 벌러덩 누워버려. 신기하네, 침대나 침구는 변함없이 그대론데 왜 이렇게 편하고 아늑한지. 머리 두는 방향이 그렇게 중요한가.
12월이라서 괜히 한 해를 정리해보자면 너무나도 힘들었다. 멋없게 한 단어로 정리해서 일기장 체면이 말이 아니겠지만 그냥 힘들었어. 안전장치를 하고 넘어지는 편인데 이번엔 그냥 나체로 산 꼭대기에서 굴러 내려온 느낌이야. 살갗이 다 까지고 멈추려고 안간힘을 준 손바닥과 무릎엔 뼈가 드러날 지경으로 말이야. 어쩔 수 없더라 무방비로 산 정상에서 야호를 부르는데 바람에 밀려 떨어진 거라. 다행히 이젠 손바닥에도 무르팍에도 마음에도 새살이 돋아서 이렇게 글도 쓰고, 사람도 만나고 웃고 살아. 행복하고 감사해. 많이 배웠거든. 실수를 통해 성장하고, 못남을 보며 반성하는 게 내 주특긴가 봐.
내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참 많더라. 이게 다 무슨 복일까 싶을 정도로 많아서 놀라움의 연속이었어. 해준 것도 없는데 말이야. 그들을 위해서라도 꼭 성공하겠다고 오늘 기도했지 뭐야. 나의 어떤 성공이 그들에게 좋을지 방법은 생각해 봐야겠지만 결과는 이미 받았다고 생각하려고.
아까 말한 침대 말이야. 본질은 그대론데 더 아늑해지는 거. 설마 내가 힘들게 뻘뻘거리면서 옮겼으니까 그 전보다 더 아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가? 정말 확실히 편한데 말이야…
글을 쓰는 와중에 사랑이가 열심히 전기장판을 긁더니 겨우 걷어내서 그 속으로 들어가. 전기장판 아래에 있는 토퍼 위에 누우면 더 따뜻할 거라고 생각하나 봐. 전기장판의 특성을 파악했다면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있는 게 가장 따뜻한 방법이란 걸 알았을 텐데 안타까워. 토퍼는 그냥 토펀데.
엄청 졸린데 잠이 안 와. 내일 할 일이 많은데 큰일이네. 다들 이런 밤이 오면 어떻게 보낼까. 유튜브에 잠 오는 음악을 검색하고 그런 건가. 통화하거나 톡도 하고, 일어나서 잠을 포기하기도 하고 그럴 거야. 나는 머리 서기를 일단 해야겠어. 설마 혹시 설마, 생각이 많아서 잠이 안 오는 거라면 생각을 비우는 방법을 택해야지 뭐. 좀 힘들어도 가자 벽으로, 요가매트로.
침대를 잠깐 떠난다 해도 침대는 여기 그대로 있을 거야. 3분만 부들거리다 오자. 여전히 전기매트 아래에서 따뜻해하는 사랑이도 그대로 있을 거고, 침대도 여전히 아늑할 거야. 변하는 건 없을 거야. 있다 해도 뭐 어때. 구조를 또 바꿔버리면 되지. 각을 틀어서 새롭게 보면 되지. 침대도, 나도, 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