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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지 Jan 31. 2022

일 년을 재는 법

오십이만 오천육백 분. 일 년의 시간이다.

뮤지컬 렌트의 넘버 <Seasons Of Love> 중엔 일 년을 어떻게 잴 것인지 묻는 가사가 있다. 낮과 밤 혹은 커피잔, 웃음과 다툼으로? 일 년뿐만 아니라 반복되는 일 년이 쌓인 인생을 우리는 어떻게 측정할까. 노래의 가사처럼 사랑으로 채워서, 사랑으로 재고, 사랑을 기억하면 될까.





How do you measure a year in the life?


How about love?

How about love?

How about love?


Measure in love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아사코 1&2> 속 한 인물이 말했다.


‘형태가 있는 것들은 언젠가 망가진다.’


 대사를 들은 직후에 뜨끔하며 옆에 앉아있던 사람을 쳐다봤다.  뜨끔했으며,  쳐다봤을까. 순간이라 잊었었는데, 달리는  안에서 <Seasons Of Love> 들을  뜨끔했던 어제가 문득 생각났다. 영화  인물의 대사 직후에 나는 ‘사랑은 형태가 없으니 영영 망가지지 않을  있을까?’ 생각했고, 곧이어 순진하게 생각한 내가 부끄러웠고, 부끄럽다고 느낀  미안해서 같이 영화를 보던 상대를 쳐다봤다. 사랑은 형태가 없으니 너의 사랑은 증명할  없다는 영화 <클로져>  앨리스의 대사는 곧이곧대로 믿었으면서. 결국 똑같은 말인데도 불행은 받아들이고 행복은 무시하는 전형적인 똥멍청이. 언제부터 영원을 믿는  부끄러워진 걸까.



일 년의 시간을 성과나 목표로 재보는 것이 당연했다. 꼭 그렇지 않아도 그 전과 달라진 점들 중 성장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수치화할 수 있는 것들로 정말 ‘측정’해봤다. 그런데 사랑으로 재보라니. 그래, 재보자. 2021년 나의 사랑은 어디에 가닿았으며, 어디에서 채워졌으며 누구와 나누고 누구에게서 깨졌을까. 마이너스일까 플러스일까.


2021년, 꽃을 기다리던 이른 봄에, 에어컨이 망가졌던 여름에, 하늘이 높아졌을 때, 옷장 속 가디건을 꺼내 입었을 때, 첫눈이 내렸을 때, 코트로 버티기는 추워졌을 때, 그리고 지금. 이 모든 때의 사랑을 일 년 치로 합하여 계산해 봤을 때 영원을 믿는 것이 부끄러움으로 남았다면 역시 마이너스려나. 사랑을 재는 법에 사칙연산이 말이 되나. 어떤 계산법이 맞으려나.



<Seasons Of Love>는 해남에서도 땅 끝 해변을 향해 땅의 끝으로, 끝으로 가던 중에 흘러나왔다. 노래의 가사대로 2021년 사랑 연말정산을 하다 보니 일 년 중 어느 순간을 사랑으로, 또 어느 순간은 고통으로 분류해야 하나 혼란스러웠다. 사랑으로 인한 무기력과 상처도 사랑으로 칠 수 있을까,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가졌던 열정도 사랑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2022년 올해를 사랑으로 기억하기 위해 지금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성급한 결론을 냈다.(해변에 도착하기도 했거니와 행복한 지금을 망치고 싶지 않았어서) 그러기 위해 영원을 꿈꾸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울고 싶을 때 우는 것. 상처는 상처로 남겨두는 것으로 새해맞이 가벼운 목표를 정한다. 다 지키지 못하더라도 마지막 것은 꼭 지키기로. 상처를 메꾸기 위해 지금을 쏟아붇지는 말자.


연말이나 내년쯤 돌아봐야지, 정말 사랑으로 잴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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