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더는 못할 것 같아요
작년에 짜맞춘 듯 소개팅 몇 개를 동시에 제안 받았던 적이 있다. 감염병 창궐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랑하고자 하는구나. 하겠다고 응해놓고선 마치 제3자의 소개팅을 관찰하는 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몰입하기 싫어 거리를 두고 멀찍이 있고 싶었다. 사진으로 얼추 얼굴 다 봐놓고 마스크 내린 진짜 얼굴을 흐린 눈으로 살펴야 했던 순간의 기분을 오래 잊지 못했다. 좀 모른체 하고 싶었던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민망함이랄까.
어차피 소개팅 잘 될 확률 낮은 거 알잖아, 싶다가도 이왕 시간 냈으니까 잘 됐으면 좋겠는 마음이 있었다.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까. 그때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기 보다는 좋은 접촉을 하고 싶었다. 오로지 결핍된 애정을 채우고 싶은 마음. 누군가 꽉 안아주는 무게감이 종종 그리웠다. 어떤 사람은 꽉 들어차게 안아줄 것 같았고, 어떤 사람은 내가 안아주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옹졸함이 보여 대화에 집중이 잘 안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잘 안됐다.
무안했다. 하기로 한 일에는 최선을 다 하는 편이라 소개팅에도 최선을 다 했다. 괜히 지나간 시간을 곱씹었다. 내가 별로였나? 그때 그 말을 하지 말 걸 그랬나? 하잘데기 없는 혹시나, 만약에의 연속. 솔직히 상대방들 다 내 취향은 아니었는데.
화장하는 걸 싫어하진 않았지만 소개팅을 위해 화장을 해야 하는 건 되게 피곤한 일이었다. 마치 구애를 하기 위해 몸을 부풀리고 화려한 깃털을 뽐내는 공작새가 된 것 같았다. 두 번은 보고 싶거나 스킨십이 연상 가능한 상대로 보여야 한다는 게 좀 그렇다고 해야하나. 자리에 나와있는 목적 뻔한데, 그건 정작 숨긴채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게 왜 그리 어색한지. 가진 옷 중에 가장 소개팅에 어울릴 법한 옷을 골라입는 것도 곤욕이었다. 어쨌거나 최선을 다해 꾸민 얼굴과 옷 매무새가 나쁘진 않았나 보다. 당시 다니던 직장의 동료들이 "평소같지 않다"거나 "예쁘다"는 말을 칭찬으로 해줬다. 평소 내 모습이 어땠길래? 이렇게 오래 꾸며낸 모습은 예쁘다는 평을 듣는구나. 계속 이렇게 얼굴과 옷에 공을 들여야 하는 걸까.
연애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어필하기 위한 겉치레가 왜 나쁘겠나. 시각적인 정보에 무디기만 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서. 그런데 그냥 평소와 다르다는 말이, 그래서 예쁘다는 말이 다음 날의 복장과 다음 날의 얼굴을 살피게 되는 검열이 되는 게 싫었다. 평소 같다는 게 후줄근 하다는 말로 들리고, 평소같지 않아 예쁘다는 말은 평소에 안 예쁘다는 말로 남았다. 특별히 예쁜 적이 없어 안 예쁘면 어때 싶다가 '예쁜 적이 없다'는 스스로에 관한 무의식의 오랜 평가에 놀랐다.
누굴 만나고 싶으면 노력을 해야 된다고들 한다. 부던하게 사람 만나는 자라에 나가고, 단장하고, 웃기는 웃되 박장대소 하지 말라는 등의 암묵적인 지침을 지키면서. 목적은 한 마디도 티를 내지 않면서 서로 간 보고 앉아 있는 거 이상하지 않냐는 말에 네가 덜 외롭거나 세상 물정 모른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고. 그냥 나는 나인대로 있으면 안되나? 여성스럽지 않잖아. 아니야 너 여성스러워. 켜켜이 학습된 전형적인 여성성을 향한 고정관념이 또 나를 검열한다. '여성스럽지 않은' 나.
내 마음에 안 들었어도 상대방의 마음엔 들길 바랐던 것 같다. 너를 갖고 싶었던 건 아니고, 그 알량한 우월감을 더 갖고 싶었던 거지. 불현듯 누구 마음에 안 들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 마음에 안 들어해도 돼. 내 마음 있으니까, 네 마음도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