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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무 Mar 21. 2021

경멸의 마지노선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삶에서 정말 내가 내 의지로 선택하여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항목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출생부터 자유의지로 결정할 수 없는 존재다. 인간은 부모가 되고자 결정한 이들에 의해 태어'나는' 존재다. 종교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신이 자신을 닮은 모습으로 흙으로 형상을 빚었고, 숨을 불어넣어 인간을 창조한다.


그래서 모두에게 주어진 삶은 우연한 결과의 연속이며, 타이밍의 총합이다. 어떤 성별로, 어떤 외양으로, 어떤 성향과 성격으로 나고 어떤 환경에서 성장할지도 결정할 수 없다. 우리가 스스로 의도를 갖고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고된 일을 습관으로 만드는 영역이다. 꾸준한 운동과 건강한 식단으로 근육을 만들거나 하루 8시간 이상 공부에 매진하여 자격을 얻는 일이라거나. 우연과 타이밍이 난무하는 삶에서 분명한 결과를 얻기 위해 실천한다는 것은 참 많이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대단하다'와 '지독하다'는 수식이 평가로 달리는 걸까.


어찌 되었든, 삶은 랜덤 하다.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 역시도 우연과 타이밍에 의한 결과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싫어하게 될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는 왜 그렇게 O같은가? 그냥 본디 O같은 사람이고 그저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을 뿐인데, 내가 입사하길 결정한 조직에 그 사람이 있었을 뿐이고...  그래서 내 선택의 우연한 결과로 그 O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OO...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이라는 소설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이 구절에 종이가 닳도록 밑줄을 치고, 이곳저곳에 옮겨 적으며 생각했다. 읽은 책에서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을 고르라면 주저 없이 이 문장을 읽어주겠다고.


어지간하면 사람을 싫어하지 않으려고 한다. 성품이 어질고 착해서가 아니라 누굴 싫어하면 너무 많이 싫어하게 되어 내 마음을 너무 괴롭게 하는 탓이다. 그런데도 정말 싫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류의 사람들을 직장에서 만나게 되면 참 곤란하기 그지없어진다. 그가 결재권자라면 상황은 더 구려진다. 결재를 받고 일을 하려면 O같아도  인내해야 한다.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근무 시간에 게임을 해도 감내해야 한다. 자신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어느 과거를 자랑스레 치켜세우며 으스대는 것도 가끔은 들어줘야만 한다.


그는 모른다. 사람들이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그 얘기를 가마니처럼 듣고 있었던 건, 안 들어주면 결재를 반려하겠다는 둥 성질을 부리니까 적당히 들어주고 결재받아 일이나 하자는 심정이었다는 것을.


처음에는 그가 측은하기도 했다. 조직 내 중간 관리자의 역할이 너무 무겁다며 어려움을 자주 호소하던 사람이었다. 인간적으로 이해해볼 만한 구실을 찾다 보면 이 사람을 좋아할 순 없어도 싫어하지는 않은 채로 조직에서 공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가 중간 관리자의 역할이 무겁다고 호소하는 통에 내가 의논하는 거리들은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자주 자신의 부족함을 이야기하고 불안에 떨었으나, 자신이 부족하다 느끼는 영역을 개선하려는 노력보다 주변의 사람들을 후려치는 것으로 자존감을 세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말 수가 적은 직원은 '진지하고 무거워서 다가가기 힘든 성격'이라며 자기는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이 좋다더니, 정작 붙임성이 좋고 살갑게 사람들을 잘 대하는 직원은 '가볍고 진지함이 없는 성격'이라며 까내리곤 했다.


원작은 "자기전에 쉬 했나요?" 라던데


싫음을 넘어서 경멸이라는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도 그가 마냥 악인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어쩔 때는 그가 괜찮게 느껴지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모두에게 존재하는 지나간 어린 시절을 막연하게 추측해보곤 한다. 어린아이로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가 있으니까, 내가 알지 못하는 그의 어린 시절을 감히 상상해보며 한 인간으로의 그에 대한 작은 연민이나마 품어보려 했다. 이쯤 되면 굉장히 애를 쓰고 있는 거라 이 사람과 친구가 되긴 이미 글렀다. 그저 누굴 경멸까지 하며 괴롭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의 마지노선을 세우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의 친구가 아니다.


조직 내에서 모욕적인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는 내가 알아봤자 더 불쾌하고 괴롭기만 한 투 머치한 정보를 발설하고, 나에게 일어난 일을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저기 입방아를 찧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그에게 남겨두려 했던 연민을 구겨버렸고 세워두었던 마지노선도 걷어차버렸다. 구태여 그를 이해하고자 여력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가 그 조직에 입사하겠다는 선택의 우연한 결과로 알게 된 사람이지만, 그 연결고리를 어떻게 할지는 온전히 내 의지로 결정할 수 있다.


싫은 사람에게 대처하는 방법.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했는데도 잘 되지 않으면, 스스로의 인성을 검열하며 자책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자.


그는 어쩔 수 없이 원래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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