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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무 Mar 13. 2021

등을 마주하고 앉는 사이

무엇이 사랑일까

국희는 가끔 내가 잠깐 방심한 틈에 나보다 내 이불 위에 먼저 몸을 누이곤 한다. 국희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 이불 귀퉁이에 몸을 구겨 넣은 내 시야에 잠든 국희 얼굴이 들어온다. 내 인기척으로 자기가 누운 자리 근처가 들썩거리면 금방 눈을 뜰 법도 한데, 제법 깊이 잠이 들었나 보다. 국희의 배가 호흡 박자에 맞춰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 한다. 


고양이는 호기심이 많은 동시에 겁이 많고, 경계가 제법 있는 동물이다. 그런 특징을 가진 고양이 국희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다. 잠에 취해 살짝 벌어진 입에 송곳니 일부가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고, 하얗고 통통한 배는 천장을 향해있다. 국희는 나의 무엇을 믿고 이렇게 배를 드러내고 깊이 잠들어 있는 걸까.


국희의 자는 숨소리를 듣다 보면 고양이인가, 사람인가 기가 찰 때가 있다. 너도 자면서 색색 숨소리를 내는구나, 하고 말이다. 잠이 들어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는 것은 사람이나 고양이나 다 똑같더라. 고양이와 함께 살지 않았으면 모를 일이다. 사람 숨이나 고양이 숨이나 다 똑같다는 것. 이런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다 보면 나에겐 무한히 작고, 남들에겐 생각보다 커다란 이 고양이 한 마리의 존재가 참 경이롭다. 국희는 어째서 나를 믿고 이렇게 깊이 잠들어 있는 걸까.


같이 살자고 국희를 초대한 것은 나다. 아니, 사실 그냥 데리고 왔다. 서울 구로 어느 골목의 고양이 밥을 챙겨주던 분이 처음 만나는 인간인 자신에게 배를 발라당 내보이는 이 고양이는 길에서 살면 절대 안 되겠다고 생각하셨단다. 부지런히 올리신 입양 공고에 그만 사로잡혀 어린 고양이를 데려오게 되었다. 오자마자 어디 구석에 숨지도 않고, 낯가림도 없이 뒹굴뒹굴 앞으로 뒤로 몸을 뒤집더니 내 머리맡에서 잠을 잘 잤다.


아픈 곳도 없이 국희는 무럭무럭 성장했다.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 병원에 같이 처음 갔을 때 또래 고양이들보다 체구가 작은 편에 속한다던 의사 선생님 말만 철썩같이 믿고 나는 만 5년 동안 국희가 작은 고양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사진의 크기만큼 앙증맞게 나온 국희를 영상으로 보거나 실제로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큰 고양이였냐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렇게 큰 국희는 세상 편안하게 내 시야의 앞과 옆, 이제는 시야가 닿지 않는 뒷편에서 등을 보인채로 날마다 식빵을 굽는다. 경계심이 많은 특성을 가진 고양이가 잘 드러내지 않는 신체의 영역이 배와 등인데 국희는 배도 잘 까뒤집고, 이제는 내가 보거나 말거나 우람한 등짝을 내보이며 그르렁 거리며 한참을 앉아있는다.


까맣고 하얀 국희의 등을 도닥이며 이따금씩 국희의 골목 생활을 그려보곤 한다. 엄마 고양이랑 아빠 고양이 둘 다 까맣고 하얀 얼룩무늬였을까? 아니면 한 쪽에서 온 무늬일까. 형제자매는 얼마나 있었을까. 걔들은 길에 있을까, 아니면 또 마음씨 좋은 어느 사람들의 집으로 옮겨 갔을까. 가족 고양이들과 함께 있었다면, 밥 주던 사람이 국희를 데려가서 영문 모를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상처받지는 않았을까.


국희는 인간의 집에서 생활하는 것에 만족할까. 사방이 벽으로 막힌 곳의 길고 가느다란 삶보다 거칠 것 없는 골목에서의 짧고 굵게 타오르는 삶을 원할 수도 있지 않을까(솔직히 그럴 성격은 못될 거 같지만). 해석할 수 없는 국희의 마음께를 혼자 헤집어본다. 그러다 이내 곧 오르락내리락하는 국희의 하얀 배를 보노라면 동거인으로 너무 과분하고 벅찬 신뢰를 받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불쑥 솟는다. 해준 것도, 해줄 것도 별로 없어 이것만으로도 괜찮은가 마음이 어지럽다. 


국희가 다니는 동물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여러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계신다. 갑자기 다쳐서 온 길고양이를 치료해주기도 하고, 병원 한 켠에 자리를 내어주고 오래 데리고 있기도 하신다. 그러다 함께 살게 된 고양이도 있어서 숫자가 여럿이 되었겠지 싶다. 길에서 데려온 고양이라고 국희를 소개하며 진료를 받던 날, 의사 선생님은 고양이가 갑자기 죽게 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하셨다. 고양이는 갑자기 돌연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아직 멍멍이들보다 연구가 덜 되어서 죽음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영역이 많다고. 그건 당신의 책임이 아니니 당신과 함께 사는 동안은 잘 살다 간 것이라고, 그러니 혹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너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누군가는 등 따뜻하게 누울 자리 있고, 굶을 걱정 없이 늘 밥그릇을 채워주니 그것으로도 족한 삶의 여건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한다. 하지만 조금 더 즐거웠으면,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4년 전 너를 나와 내 가족과 사는 집으로 데려온 게 너의 행복을 좀 더 담보하는 삶으로 맺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 너와 같이할 수 없게 되는 날이 오면, 나는 조금 울게 되더라도 너는 삶을 만족스러웠다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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