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보호전문기관 잔류에 실패한 어느 사회복지사의 회고담
일반적으로 '아동'이라고 하면 보통 영유아나 어린이로 일컬어지는 나이대의 아이들을 특정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행 아동복지법은 만 18세 미만을 법으로 보호해야 하는 아동으로 명시하고 있다. 우리가 청소년이라 여기는 연령의 아이들도 아동학대의 피해자로 분류된다는 뜻이다.
아동학대에 관여하는 복지 체계 중 하나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이 있다. 나는 사회복지사의 자격을 가지고 아보전의 아동학대 조사 상담원으로 일했다. 맡은 직무는 아동학대로 신고된 사례의 학대 의심 정황을 조사하고 추가 피해나 과거 학대 정황은 없었는지, 발견되지 않은 피해 아동과 학대 행위(의심)자는 없는지 등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동과 학대 행위(의심)자를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조사를 진행했던 사례 중 아보전의 개입 거부가 심했던 사례가 있었다. 아동이 밤을 새우다시피 게임을 하느라 다음 날 온라인 수업에 출석하지 못해 담임교사가 부모에게 해당 사실을 알렸다. 이런 식의 결석이 반복되자 화가 난 아동의 친모가 버릇을 고치겠다며 아동에게 욕설을 하고 신체부위를 수 차례 때렸다. 갑자기 집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아동의 나이는 만 17세, 아동 자신이 친모에게 맞고 난 뒤 경찰에 직접 신고를 했다.
이 사례는 나에게 아주 절망적인 사례였다. '학업 소홀'은 부모가 자녀를 훈계해도 괜찮은 사유로 인식되어 부모가 자녀에게 욕을 하고 때려도 정당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피해 아동의 친모가 도리어 내게 따지고 들었다. 코로나라고 학교도 안 가는데 게임만 하고, 그나마 수업이랍시고 온라인에서 하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꼬라지를 그냥 보고 있을 수 있냐고 말이다. TV에 나오는 것처럼 내가 애를 죽이기라도 했냐며 상대적으로 자신의 학대 행위의 강도를 낮추고 합리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피해 아동도 별 반 다르지 않았다. 머리가 제법 굵은 아동들은 자신이 신고를 해놓고도 아보전 상담원의 대면 요청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자주 보인다. 엄마랑 다투는 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이번에 좀 심하게 맞은 것 같아서 학교에서 배운 대로 112를 눌렀고 경찰이 오게 되었을 뿐인 것이다. 며칠간은 엄마랑 어색하겠지만 그것도 금방 풀릴 일이다. 근데 뭔 놈의 어쩌구 기관에서 고등학생인 나더러 '아동'이라 하고, 엄마랑 싸운 얘기를 해달라고 하더니 예전에 또 맞은 적은 없는지 물어본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인데. 아동은 일이 커지는 것 같다고 여겼는지 바쁘다며 내가 연락해오는 모든 경로를 차단했다.
전화 한 통이면 됩니다. 10분만 내주시면 안 될까요? 시간 더 뺏지 않을게요.
구걸하는 심정으로 매달려 전화 한 통의 기회를 겨우 얻어냈다. 짜증 섞인 목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때린 부모나, 맞은 자식이나 "제3자가 가정사에 끼어들어 괜한 일을 키우지 말라"라고 한다. 수화기 너머의 분통을 고스란히 받아내다 보니 자기 보호를 위해 112를 누른 아동에게도 행위의 책임을 묻고 싶어 졌다. 너는 무엇을 위해 신고를 했느냐고, 만 17세쯤 되었으면 너의 행동에 어떤 책임이 따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냐고. 온전히 아동의 안전과 건강한 성장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일개 사회복지사가 절대 뱉어서는 안 될 문장이 머릿속을 콱콱 메웠다. 그럼에도 모욕을 감수했던 이유는 부모에게 최초로 맞았던 어느 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고 고백하며 소리 내어 제대로 울지도 못하던, 몸만 다 큰 열여덟 살도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때린 부모도 맞은 아동도 아니며, 또한 그들의 가족 구성원도 아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이해관계로도 얽혀있지 않아 그들이 나를 비난할 때 사용했던 '제3자'라는 단어가 아주 정확한 표현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당신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협박이 아니다. 당신들이 나를 끝까지 배제하더라도 나는 당신들의 안온한 일상을 위해 그 앎을 활용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부모에게 맞은 기억으로 일곱 살에 사로잡혀있는 열여덟 살의 상처입은 영혼의 해방을 위해 기꺼이 제3자로 남길 희망했다. 아주 가깝고도 먼 거리에서 말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사회복지사의 평균 근속 연수는 2.6년, 열렬하게 장기 근속을 꿈궜으나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럼에도 제3자로 남겠다는 나의 선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디서든 누군가들의 곁에 계속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