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종규 Mar 01. 2021

첫 직장에 대한 회고

또한 첫 이직에 대한 이야기

두 번째 직장으로 이직을 했다. 2년 남짓한 시간을 보낸 첫 직장을 돌아보며 몇 자 끄적여 보려 한다.





첫 직장에서 얻은 것


첫 직장은 나에게 불확실한 도전이었다. 멀쩡히 다니고 있던 대학을 뛰쳐나와 디자인이 하고 싶어 이곳저곳 지원을 했다. 꿈을 향한 도전이었는지 하기 싫은 공부로부터의 도피였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래저래 부족한 나에게 손을 내민 회사가 있었고 무작정 디자이너로서의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절박함이 있었기에 회사에서 디자인을 하는 것이 즐거웠고, 늦은 시간까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일을 했다. 처음에는 프로덕트 디자인이 어떤 건지 잘 알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냥 이것저것 회사가 필요로 하는 디자인 또는 산출물을 위해 안간힘을 쓰며 공부하고 부딪혔다. UI 디자인과 기획은 물론 BX에도 시간을 쏟았고 필요에 의해서 마크업 퍼블리싱도 했다. 사실 걱정도 했고, 불만도 가졌다.


나는 UX/UI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데
다른 일을 하면서 전문성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디자이너의 생각법 : 시프트'라는 책에서는 커리어를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무얼 하는 디자이너야"라고 정의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다. 디자이너는 연차가 늘어나고 오랜 기간 디자인을 하면 결국은 모든 면을 아우르고 총지휘해야 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의 단계에 도달해야 한다고 한다.


지금이야 나는 어리고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고 하지만 40대 50대가 되어도 변함없이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어느 직군이든 오래 살아남는 사람은 살아남지 못하는 사람보다 훨씬 적다. 연차가 늘어날수록 연봉은 늘어나는데, 비교적 연봉도 낮고 훨씬 트렌드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젊은 디자이너들과 경쟁이 될 리가 없다. 그래서 더욱 연차가 늘어날수록 업무의 구분과 한계를 넘어서는 또,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지 싶다.


그런 관점에서 첫 직장에서의 다양한 경험은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주도적으로 기획부터 디자인, 마크업을 하면서 프로덕트 전체에 대한 시야가 조금이나마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단순히 한 분야의 디자이너로 부분적인 디자인만 깨작깨작했다면 얻지 못했을 문제 해결에 대한 인사이트도 얻었을 거다. 필요하니까 어쩔 수 없이 생활코딩 뒤져가며 공부했던 마크업 덕분에 웹 개발에 대한 이해도 주섬주섬 챙겼다. 지금 보면 다 조금씩 맛만 본 수준이겠지만 이것저것 주워 담다 보니 어설프지만 그럴듯한 디자인 가치관도 생기지 않았나 싶다.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던 이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았기 때문에 매일매일 성장하는 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신입 디자이너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새로운 인사이트를 획득하고 어제보다 나은 나를 보면 뿌듯해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 성장이 멈춘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열심히 디자인을 해도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처음엔 좋은 동료들에게 물어보며 피드백도 받고 확신도 가질 수 있었다. 덕분에 러닝 커브도 많이 줄일 수 있었지만 동료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하고 1인 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하면서 문제가 몸에 와 닿기 시작했다. 혼자이기 때문에 아티클을 읽으며 알게 된 여러 방법론이나 시도들을 바로바로 적용해 볼 수는 있었지만, 항상 잘하고 있는지 검증하지 못했다.


회사에 함께할 디자이너가 필요하다고 요청도 했지만 연봉을 올려줄 테니 조금 더 버텨달라는 말만 돌아올 뿐 묵묵부답이었다. 그럼에도 회사는 한 번에 많은 것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조직은 항상 시간에 쫓겨 이도 저도 못하고 아무런 결과물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내 디자인이 최종 결과물로 나오는 일이 점점 줄어 성취감도 떨어지고, 시간에 쫓겨 만족스럽지 못한 아웃풋을 만들어 내는 나 자신에게도 조금씩 화가 났다. 이 또한 내가 부족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성장은 멈추고 스트레스만 무럭무럭 자라나 조급해진 나는 회사가 아닌 외주나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로 에너지를 쏟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기여하고 나를 성장시키는 대상이 더 이상 회사가 아니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떠나야겠다



새로운 곳으로


지금 문제를 느끼는 부분이 어떤 부분이고 해결하려면 어떤 곳을 가야 하는지 생각했다.


내가 판단한 내 상황의 문제점은 아래와 같았다.

1. 혼자 디자인을 한다.
2. 회사의 프로덕트 로드맵이 그려지지 않는다.
3. 디자인에 대한 충분한 고민을 할 수 없다


그러면 내가 가야 할 곳의 조건은 아주 쉬웠다.

1. 디자인 조직이 있다.
2. 회사가 유의미한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한다.
3. 충분한 리서치 등을 통해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조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충분히 준비된 상태여야 했다. 준비된 상태를 갖추는데 짧지 않은 시간이 들었고 나름 조건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었다. 최소한 입사 3주 정도 지난 지금의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B2B 회사에서 디자인을 시작했기에 이번에는 B2C를 경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이번 둥지도 B2B SaaS 회사다. 아무리 그래도 첫 커리어는 무시할 수 없나 보다.


B2B SaaS 특성상 까다로운 도메인 지식을 정신없이 받아들이고 새로운 환경에 녹아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인사이트들도 열심히 얻어가고 있다. 아직 부족한 만큼 더 빨리 배우고 적응하고 싶어서 늦게까지 남아서 일도 하고 정리도 하는 것 같다. 요즘은 좋다. 매일매일 성장하는 것 같았던 시기와 비슷한 감정도 어렴풋이 느껴진다.


사실 모르겠다. 첫 직장에서처럼 여기서 2~3년이 되었을 때 비슷한 정체를 느끼고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또 좋은 리소스를 잘 지키는 것 또한 회사의 역량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 정체를 뚫어내는 건 내 몫이고 그래야 내가 되고 싶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환경도 중요하지만 항상 성장은 개인의 몫이다. 어디에 있던지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가 그랬다. 입사할 때 내가 어떤 모습인 지보 다는 퇴사할 때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라고. 매번 크게 공감한다. 나를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이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마무리하며,


첫 직장을 떠나고 새로운 시작을 하면서 한번 돌아보는 회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흘러왔는지 아는 건 내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방법이 아닌가 싶다. 글로 끄적여보니 내 나름대로 정리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글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냥 이런 생각을 가진 디자이너도 있구나 하고 읽어줬으면 좋겠다.


커리어를 시작하게 해 준 또, 좋은 경험들과 역경도 선물해준 내 첫 직장은 이래저래 잘 되었으면 좋겠다. 남은 좋은 사람들도 모두 모두 잘 풀렸으면 좋겠다. 아 맞다. 나도!

작가의 이전글 다크 모드 적용기(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