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조카를 남다르다고 표현한 것은 한국인 여동생과 일본인 제부 사이의 '혼혈아'이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 때 태어나 이제 곧 만 한 살을 앞둔 꼬물이는 결혼 후 일본에서 보금자리를 꾸린 동생과 함께 바다 건너 타국에 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넉넉 잡아도 비행기로 2시간이면 충분한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안타깝게도 아직 실물을 영접하지 못했다. 동생이 간간히 보내주는 사진과 짤막한 동영상 속에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조카를 보며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날로 커지는데,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리운 마음에 아빠 엄마는 온 집을 조카 사진으로 도배를 하셨다.
어려서부터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동생은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일본으로 위킹홀리를 떠나 체류하던 중 제부를 소개받아 결혼까지 골인했다. 동생을 보러 일 년에 한두 번씩은 일본에 다녀오곤 했는데, 어느 날 남자 친구를 소개해 준다고 해서 별생각 없이 따라가 보니 웃는 얼굴이 해사한 제부가 있었다. 당시 30살의 내게, 27살 동갑내기 동생 커플은 마냥 애기같았다. 특히 여성들의 평균 신장이 165cm는 가뿐히 넘는 장신 집안의 일원으로서, 얼핏 봐도 나랑 엇비슷한 신장과 보통의 체구를 가진 제부가 듬직하다기보다는 그저 귀엽게만 느껴져 배우자감으로 그다지 미더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더듬더듬 연습해온 한국말로 나와 소통하려 노력하고 동생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 결정적으로 구김살 없이 맑은 인상이 마음을 슬쩍 움직였다. 나중에 '체격이 좀 왜소한 것 같은데?'라고 했다가 동생이 발끈하며 일본인 치고는 장신(?)이라며, 퉁박을 날렸다. 그래, 체격이 전부는 아니니까.
부모님이 반대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엄마 아빠가 일본으로 건너가 정식으로 제부를 소개받고, 양가 상견례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솔직히 처음 제부만 봤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의 새로운 구성원감으로 긴가민가 했는데, 온화하고 정감 넘치는 시어른들과 다른 가족 구성원들까지 만나 뵈니 불안했던 마음이 확 누그러들었다. 사람 보는 눈이 다 비슷비슷하다고, 부모님도 예비 사돈어른들을 뵙자 마음이 확실히 놓이시는 듯했다. 그렇게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결혼식을 2번이나 한 동생은 도쿄를 떠나 제부의 고향마을에 정착한 지 2년여 만에 임신 소식을 전했다.
한국에서 출산하고 친정엄마의 돌봄을 받으며 산모들의 천국이라는 K-산후조리원까지 스트레이트로 누리고자 했던 동생의 꿈은, 코로나와 나의 암수술이라는 더블 악재로 한국에 입국조차 하지 못하고 산산조각 났다. 다행히 시어른들과 제부의 돌봄이 있었지만 그래도 멀리 타국에서, 코로나 때문에 분만실에서도 제부와도 격리되어 거의 혼자 조카를 낳았다. 그런 동생이 참 대견하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짠하고 한없이 안쓰러웠다. 그나마 어릴 때부터 비실이였던 나와 달리 건강 체질인 동생이 별 탈없이 잘 회복해서 천만다행이다.
제자리에 누워 버둥거리기만 했던 조카는 어느덧 뒤집기도 하고 국민 육아 템 체육관? 에서 퐁퐁 뛰며 한 눈에도 숨길 수 없는 '장꾸 스멜'을 풍긴다. 뒤통수 쿵 방지 쿠션을 매 준 것이 무색하게 앞으로 고꾸라지는 아방함과 동생이 애써 만들었을 이유식을 한눈에도 '애미야, 입에 안 맞는구나'라는 찡그린 표정을 짓는 모습이 내 최애 사진이다. 나날이 성장하는 조카를 보며 직접 보러 갈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만큼이나 '혼혈아라는 남다름'이 행여 조카의 앞날에 문제가 될까 걱정도 점점 커진다.
요즘 우리는 '다르다'라는 것이 '틀렸다'라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고 교육받은 세대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문화는 앞으로 교육을 통해 더 강화될 것인데 뭐가 그리 걱정일까, 싶지만 다른 나라도 아닌 일본이지 않은가. 굳이 줄줄 설명하지 않아도 한일 양국 간 뿌리 깊은 역사적 갈등과 현재 진행형인 이슈들까지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답답해진다. 또 다른다는 것은 틀리다는 것이 아니지만, 경험상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사실 '꽤나 위험'할 수 있다. 의도치 않게 주목받고 굳이 듣지 않아도 될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며, 심하면 이유 없이 해코지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동생에게 '나중에 꼭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도록 어릴 때부터 운동 하나쯤 꼭 가르치라고' 넌지시 오지랖을 떤다.
반면에 '남들과 다른 것'은 오히려 'unique, 특별함'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 같다. 한일 혼혈아라는 특별함을 가진 나의 조카가 부디 앞으로 '남들과 다르다'고 차별받지 않고, '고유의 특별함'을 가진 사람으로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한국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이중 언어 능력자로 양국에서 정체성을 의심받고 배척받는 존재가 아니라, 누구보다 균형 잡힌 시선으로 양국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너무 원대한 바람인가? 실은 그냥 건강하고 바르게만 자라면 충분한데 부디 제발 그럴 수 있도록 여러 제반 환경들이 잘 받쳐줬으면 좋겠다. 행여 남들과 다르다고 차별받아도 굳건한 자존감과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으로 툭 털어버리고 단단히 자랐으면 좋겠다. 이런 이모의 마음을 아느지 모르는지, 오늘도 침을 질질 흘리며 귀여운 앞니 두 개를 내비치고 방긋 웃는 조카를 보면 그저 웃음만 난다.
에효, 미리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나중에 조카랑 수다 떨어야 하니까 저 멀리 치워둔 일본어 책이나 꺼내본다. 아직 기본 생활 회화도 안 되는 왕초보 수준의 일본어지만 또 누가 알까, 나중에 K-pop에 심취한 조카가 한국의 아이돌 트레이닝 받으러 온다면 로드 매니저라도 해줘야 하니까 운전도 더 열심히 연습해야지. 아무리 요리조리 보아도 아이돌 상은 아닌 것 같다고 팩폭을 날리는 내게, 아기들 얼굴은 크면서 열두 번도 더 바뀐다며 팽팽하게 물러서지 않는 동생을 보며 오늘도 웃는다.
나의 첫 조카, 하루(Haru)가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길.
-From 철딱서니 없는 큰이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