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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은 Oct 16. 2023

요즘 교포가 주인공인 영화가 많다지

영화 <past lives> 단상

 어릴 땐 영화를 늘 혼자 봤다. 하지만 대학생 때부턴 이 좋은 걸 같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면서 항상 누군가와 같이 봤다. 주로 내가 고른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이랑 이 영화를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특히 나보다 이 영화를 더 잘 이해할 것 같은 사람과 보면, 나는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이 사람은 느끼고 있는 게 느껴져서, 덩달아 그 아우라를 느끼기도 했다. <로렌스 애니웨이> 같은 영화들. <Past Lives>도 그래서 조이와 보고 싶었다. 조이는 윌리엄의 절친인데, 교포이고, 둘은 대학교 태권도 동아리에서 만났다. 조이는 한국어를 할 줄 알지만 읽지는 못했다. 글자가 이상하게 생겨서 배우기 싫다나. 그렇게 셋이 조이의 스튜디오(미국에선 원룸을 이렇게 불렀다.)에서 유튜브 영화로 결제해 보았다. 참고로 둘은 한 번도 같이 영화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렸을 적 캐나다로 이민 갔다 뉴욕으로 넘어와 작가가 된 여자와, 한국에 남은 남자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였다. 여자 주인공은 우리가 흔히 교포 하면 떠올리는 사람처럼 보였고, 유태오도 역할에 잘 어울렸다. 만약 박서준이나 강하늘 같은 한국 토종 배우였다면 낼 수 없는 분위기를, 유태오라는 사람의 배경과 영화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절정의 순간에 영화가... 끝이 났다. 뭐야... 이제 시작인데... 아아... 노트북으로 할 일을 하면서 곁눈질로 영화를 보던 조이는 영화가 끝나자 갑자기 흥분해서 ‘뭐야. 이렇게는 못 끝내요. 우리 영화 하나 더 볼까?’ 했다. 그 역시 이 영화의 성취겠지. 영화를 보고 나면 진짜 영화가 보고 싶어지는.


 조이는 <미나리>라도 틀 태세였다. 윌리엄도 보지 않았단다. 하지만 교포 영화를 두 개나 연달아 보는 건 너무 좀 그래. 우리 자극적인 거 볼까? <미드소마> 같은... ‘그게 뭐예요. 무서운 거 못 봐요.’ ‘그럼 우리 셋 다 보지 않은... 개 명작을 보자.’ 그래서 내가 고른 영화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였다. 예전부터 대단하다 들었지만 미국 서부 보안관 이야기엔 영 손이 안 가 안 봤는데... 이번 기회에 봐보자.


 틀었고 5분 만에 끄고 싶었지만 (차라리 이럴 거면 <파수꾼>을 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졌다.) 참고 보기로 했다. 왠지 마음속엔 ‘미국에서 자란 남자들이니 이런 걸 좋아할 거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30분 정도 흐르자, 96년생인 조이는 말했다. ‘나는 솔직히 이런 영화 취향 아니에요. <바비>가 더 재밌어.’ 한 살 어린 윌리엄도 말했다. ‘나도. 이거 몇 년도 영화냐?’ 2007년이었다. 결국 보다 나는 잠들었고, 윌리엄은 다 본 뒤 ‘유명한 영화를 오늘 두 개나 봤다’며 시네필 됐음에 뿌듯해했다.


 그리고 오늘 새벽, 자고 있는데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거기서 뭐 하는데.’ ‘몰라...’ ‘메일링 마지막 이야기 솔직히 쓸 때 안 됐나.’ ‘맞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얘기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얘기가 나왔다. ‘나는 노인들의 뭔가를 위한 사회적인 영화인 줄 알았지...’ ‘아니 그 영화는 개 미친 단발머리가  2시간 동안 사람들 긴장시키는 게 일품인 영화잖아.’ ‘그니까… 슈퍼에서 너무 싸한 게...’ ‘동전 던져서 죽을지 안 죽을지 정하는 게 그 영화의 무서움이잖아.’ ‘근데 요즘 애들이랑 보니 후아암 이더라...’ ‘요즘은 사람들이 2시간 동안 긴장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20분 안에 결론 내고 그 안에 좋은 거 다 보여주길 원하지.’ ‘근데 잔인한 건 넷플릭스 같은 데서 많이 나오잖아.’ ‘근데 잔인함과 별개로 긴장감을 오래 끌길 원하진 않는 거 같아. 우리가 영화관에서 보던 영화들은 러닝타임 내내 쫄깃하다 마지막 10분에 솨~ 하며 해결 및 감동이었는데 말이지. 그래서 <Past Lives>는 <만추> 같은 영화가?’ ‘어? 그런가...’ 비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만추>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가 떠올라 그 시절이 조금 그리워졌다.


 ‘그래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보고 확실하게 느낀 게 있다.’ ‘뭔데.’ ‘나를 죽이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것만으로 내 삶은 행복이다...’ 근데 코엔 형제는 어떻게 그런 미친놈을 캐릭터로 만든 걸까. 찾아보니 소설이 원작이다. 창작을 핑계로 신의 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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