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6
기존의 룰을 바꾸려고 할 때는 상당한 고민의 시간을 갖는다. 그건 지금의 룰이 가지는 단점을 다른 룰에서는 보완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지금에 없는 다른 단점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가보지 않았으므로 단언할 수 없는 불확실이 오랜 고민의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사실 고민을 오래 해보고 시물레이션 해봐야 달라질 건 없다. 그냥 그런 시간을 보내며 고민이 고달픔으로 깊어질 뿐이다. 그렇다고 시간의 낭비라고는 이제 생각하지 않는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고민의 시간도 이제 보니 한도가 있다. 한도에 가까워지면 용기가 생긴다. 룰을 바꾸던 바꾸지 않던 선택할 용기말이다. 그건 어떤 결과도 덤덤히 수용할 수 있다는 나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뭐든 괜찮다' 이런.
그렇게 타협하든 고수하든 선택을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고 그동안 그렇지 못했던 건 그 선택이 최종이라 단정 짓지 않는 것이다. 늘 경험하고 생각하는 가운데 마음은 항상 변하니까. 또 다른 선택을 할수 있고 그 순간의 최선임을 의심하지 않으나 또 최종이라 단정하지 않는 여지를 남겨둔다. 그래야 나는 언제든 변할 수 있고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유연할 수 있는 것이다. 대쪽 같아야 하는 것의 반대가 아니다.
자영업을 하는 지금도 하지 않은 과거도 모두 나의 삶이고, 어느 삶에도 선택과 책임은 나의 몫인데 나는 밥집을 하면서 더 극명히 이것이 알아진다. 예전엔 내가 책임감 없이 살았나,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질문이지만 '어떻게' 사는것이 인생에 책임지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결이 달랐음을 시인한다. '꼭 어떻게 살아야‘ 만했다.' 그래야만 잘 사는 인생같고 줏대있는 삶갖고. '내 인생은 뭐든 괜찮다'는 태도와는 전혀 다른. 꼭 어떠해야만 하므로 선택은 어렵고 결과는 성공아니면 실패로 양분되어지는 그런 인생. 삶의 자세가 달랐다.
어려운 시절에 대중적이지 않은 지향을 가지고 밥집을 꾸려가는 것은 비록 규모가 작지만 (그래서 다행이지만)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걸 실감할 때면 그만큼 책임의 무게도 더해간다. 어느 때에는 버겁기도 하지만 바꿔 생각해 보면 죽고 살 일은 아니므로 '뭐든 괜찮다'는 쿠션을 남은 절반의 인생을 위해 더해가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