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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를 감사한다

by 밀품

25.1.17


주 4일, 마치 주7일이 그런것처럼 오전은 밥집에서 음식을 만들며 보내지만, 낯선식탁이 열리는 날은 그 매일같이 만드는 가정식이지만 그래도 딱 한 번을 위한 식탁인 만큼 처음을 맞는 그런 기분이다. 그러므로 난 3주 전부터 당연히 바뀌고 말 메뉴를 미리 그려보면서 안정을 찾고, 사이사이 메뉴를 수정하면서 이 날을 채워가고, 전날엔 은근한 긴장을 하기도 한다. 이 긴장이 자칫 잠을 방해하지 않을까 우려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어서 참 다행이다. 나의 긴장성은 준비태세와 완결성에 대한 욕심에서 비롯된 나의 기질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더더욱 애써 풀어지려고 하기도 한다. 오늘은 낯이 익은 분들과의 낯선식탁임에도 한 번의 식사를 위한 식탁을 차리는 것이라 언제나와 같은 분주한 오전을 보내지만 미리 그려본 식탁의 진짜 모습에 자칫 아차 하는 것은 없는지 그릇세팅을 해보는 것으로 안정을 찾기도 했다. 5인이 오붓이 앉아 반가움에 안부와 근황을 나누고 음식을 먹고 나누고 싶은 걸 나누며 다음을 기약하는 한 줄로 마무리하기엔 부족한 세 시간을 함께했다. 즐거웠다. 감사했다. 그리고 부랴부랴 그릇정리를 하고선 집에 가 감자의 배변산책을 했다. 밥도 주었지만 다 먹는 걸 보지 못하고 저녁영업을 준비하러 집을 나섰다. 저녁식사를 드시는 도시락손님의 도시락을 싸야 하므로 밥을 어서 짓는 동안 찬과 국을 준비해 도시락을 쌌다. 넉넉한 줄 알았던 당근반찬이 도시락을 싸고 나니 저녁영업하기엔 부족하여 서둘러 만들었다. 한식은 국을 하나 끓여도 밑채소들의 밑작업이 많은 편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를 입 밖으로 뱉으며 바빠하는 속을 알아주었다. 그래야 빨리 갈 수 있으니까. 저녁영업오픈을 하고 나니 되려 한가하다. 순간 허기가 극심이 찾아왔다. 손님이 없는 틈에 오늘은 평소보다 꽤 많이 밥을 먹었다. 물론 천천히, 사진으로 남겨둔 점심의 낯선식탁을 곱씹으며 또 감사하며 밥을 먹었다. 손님이 없을 것 같았는데 마감을 앞두고 금요일 저녁 이 시간에 종종 들르시는 손님이 오셨다. 오늘 하루 중 가장 여유로운 마음으로 밥상을 준비해 내드리고 밥집 앞 카페에 가 라테를 한잔 샀다. 마감이 곧이지만 그전에 이 라테를 다 마시지 못하더라도 오늘은 앉아 라테잔을 비우고 일어나 설거지를 시작할 참이다. 손님이 식사를 천천히 하신다. 뭐랄까, 멍하게 눈을 흐려서가 아니라 속을 멍하게 할 틈이랄까. 오늘은 음식을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고, 식탁을 치우고, 강아지를 돌보고, 다시 음식을 만드는 데 쉴틈이 없었다. 멍할 틈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하루를 감사한다. 바쁜 하루뒤에 따라오는 허기짐과 라테 한잔을 천천히 다 마실 때까지 밥집마무리를 미루기로 한 선택이 반갑다. 그래서 글로 박제하는 지금을 즐긴다. 마지막 손님이 조금 전에 나가셨고 나는 이 글을 마무리하고 아직 남은 라테를 더 마실참이다. 하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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