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을 쓰자는 다짐이 지겹지만

다시 글을 쓴다.

또, '매일' 글을 써야겠다고 또, 다짐했다.

(인간은 매번 다짐하지만 또 그걸 못하고 또 다짐을 반복한다..)

그간 글을 아예 안 쓴 것 아니지만, 글을 썼다고 하기도 좀 그렇다. 계획된, 계약된 책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으면서 아무 것도 쓰지 않는 죄책감 때문만은 아니다. 집에 새 책은 계속 쌓이고 이런 저런 책들을 펼쳤지만, 잘 읽히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구절만 쏙쏙 골라가며 페이지를 휘적휘적 넘겼다. 책을 읽다보면 글을 쓰고 싶어지는데, 막상 노트북을 키고 앉으면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또 책을 펼치는데 또 집중이 안되서 이거 읽었다가 저거 읽었다가.. 그럴 때 완벽하게 집중해서 읽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이 있다. 바로 내가 쓴 글.

내가 쓴 글에는 내가 있다.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이 이전의 내가 했던 고민이었음이 반갑고, 초라하고 무료한 상황에 신나고 흥미진진했던 과거의 장면들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혼란스러운 감정을 마주하는 게 낯설 때, 사실 이전에도 겪었던 일이었음을 내 글에서 발견하고 안도한다. 아, 나는 아직도 정답을 모르는구나. 그래도 어떻게 잘 지나갔네. 그렇게 인정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결국 우울과 절망으로 치달으면, 말이 안되는 온갖 감정을 텍스트로 나열해본다. 쓰고 지우고 삭제하고 다시 쓰고 또 쓰고 또 읽는다. 그러면 점점 형태가 생긴다. 정신적 노동과 함께 육체적 피로도 함께 온다. 수영장 네 바퀴를 돈 기분이 들만큼. 그러다 보면 내 감정이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지나치게 심취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세상의 관념에만 의존해서 섣불리 판단한 것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거냐는 질문도 함께.

평정심을 가지고 싶으면서, 완전히 슬퍼하고 완전히 기뻐하고 싶다. 흔들리지 않는 우아함을 가지는 동시에 주체할 수 없을만큼 강렬한 감정에 완전히 빠져들고 싶다. 아프기 싫지만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평온이 너무 지루하다. 사는 게 벅차지만 지독하게 살고 싶다.

이 무슨, 유명해지고 싶지만 아무도 나를 몰랐으면 좋겠다는 식의 농담인가.. 어쩜 이렇게 모순덩어리인지. 이러니 엉망진창일 수 밖에 없지 하고 보니 헛웃음이 나오고 오히려 마음이 가볍다.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그렇게 양가적인 감정을 인정하면 오히려 편안해진다. 완벽한 인간이 아닌 나이기에, 나아지고 싶다는,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글을 쓰게 한다.

잘 팔리는 작가가 되기 위해 남들이 읽고 싶어하는 글을 써보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안되더라. 다들 읽어주기를 노리며 쓴 글인데 나한테도 읽히지 않더라. 완전 망한 글이었다. 나는 글렀다. 그냥 하던데로 하자. 나라도 읽을만한 내 글을 쓰자.

지금도 뭘 써야할지 몰라, 내 머릿속에 맴도는 말을 나열해본다.

나를 세상에 전시하지 말것.

나의 잘못을 기꺼이 인정하며 변화를 기쁘게 받아들일 것.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일.

누군가 나를 알아주기를 당연히 여기지 말 것.

말을 줄일 것.

길고 느리게 삶을 바라볼 것.

글을 쓸 것.

글을 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