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어떤 생각이 드나요?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글을 읽으며 그 내용에만 몰입하는, 글 자체에만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배움이나 정보를 목적으로 하는 글이라던가 관심 있고 흥미로운 주제라던가 그런 것들. 소설을 예로 들자면- 작가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등장인물과 사건들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런데 에세이의 경우 작가의 실제적인 경험과 생각, 생활, 가치관 등등- 글을 쓴 사람 그 자체의 이야기다.
그런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이 궁금해진다. 그 사람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심지어 매우 흥미롭고 공감이 되었다면, 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거나 이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 사람은 왜 이런 생각을 했고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런 글을 쓴 걸까? 그리고 앞으로 어떤 글을 쓸까? 그리고 어떤 사람일까? 글로 인해 사람이 궁금해지고, 사람이 궁금하기에 그 사람의 글을 계속 읽게 되는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어떤 작가의 팬이었다. 대부분 알 법한, 이전엔 뮤지션이었으나 지금은 작가로써 더 유명한 어떤 사람을 오랫동안 흠모했었다. 인연이 될 연결고리도 없었고 일방적인 마음이었다. 유년시절 그 사람의 음악을 좋아했고, 우연히 홈페이지를 알게 되면서 아무런 소통도 없는 고요한 웹페이지를 즐겨찾기 해두고선 글이 올라왔는지를 매일매일 확인했다. 그분이 하는 가게에도 여러 번 혼자 가서 조용히 있다 왔다. 그분이 있어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한 친밀감이 있었다. 마치 남의 일기장을 읽으며 그 마음에 공감하면서 그 사람을 걱정하고 응원하게 되는, 전혀 모르는 타인에 대해 자주 곱씹게 되는 그 기분은 참 묘했었다.
그러나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깨달은 건 그분의 책이 나왔을 때였다. 홈페이지에서 읽었던 글을 종이책으로 읽는 날을 비밀스럽게 한껏 고대했는데, 순식간에 책은 베스트셀러로 수많은 사람들 손에 들려있었다. 나 혼자만의 연정이 알고 보니 모두의 연예인 덕질 같은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고백도 안 하고 차인 기분으로 마음의 온도는 낮게 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분의 글을 읽는다. 지금은 존경하는 작가님으로 남아있다. 그분은 여전히 나를 모른다.
그랬던 내가, 어쩌다 보니 나도 작가라는 명칭을 달고 살고 있다. 가끔 내 글을 읽은 독자분들이 감상의 메시지를 메일이나 SNS로 전해온다. 친해지고 싶다는 은근한 마음을 내비치는 경우도 있다. 어찌 보면 나의 내밀한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인데, 그래서인지 나 또한 오히려 더욱 벽을 치고 대면한다. (그 작가님께 괜스레 질척이지 않았던 것을 매우 다행으로 여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아니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줘야 내가 계속 글을 쓸 수 있음이 자명하다.
지금까지 에세이 4권을 냈는데 하나씩 살펴보면 여행-반려동물-그림-연애였다. 명확한 주제가 정해진, 그래서 주제에 국한해서 선별한 글들의 모음이었다. 그래서 넣지 못한 글이 꽤 많다. 애매하고 불분명하다고 취급된 이야기들. 사소하고 일상적인 기록이기에 언제든 읽어도 좋은 글. 대화로는 채워지지 않는 내밀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 어떤 것을 품을 여력도 기운도 없을 때 그저 등을 토닥여주는 정도의 따스함 만을 바라고 읽는 글. 누군가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나만 이런 것이 아니라는 위로를 얻는 미지근한 온도의 책. 나를 잘 아는 주위 사람들이 자주 물어봤다. 왜 이런 이야기는 책으로 안 내는 거야?라고.
굳이 표현하자면 '일상 에세이'라고 부르는 책일까. 나는 그런 글을 가장 많이 쓰고 그런 글을 가장 많이 읽는다. 내고 싶었지만, 제안도 있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봉현'이라는 사람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봉현 작가'의 글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그 사람의 삶이, 생각이 궁금한 것부터가 먼저 아닐까 하고. 내 글을 읽음으로써 위로든 응원이든 공감이든 얻고자 한다면, 나라는 사람에게 신뢰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만 누구에게든 감히 그런 말들을 전할 수 있지 않겠냐고. 아직 사람들은 나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신뢰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를, 어떤 때를 기다렸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에게 흥미를 갖게 하고 나에게 믿음을 갖게 하는 방법이 도대체 뭔지 아무런 감이 없었다. 책 한 권 홍보하는 것도 영 소질이 없는 나인데, 나 자체를 알리는 법에 능숙할 리가 없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자연스럽게 여러 기회로 작품 활동을 하고, 팟캐스트나 라디오에 출연하기도 하고 트위터에서 이런저런 기록을 남기고, 일러스트레이터로써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면서- 주제가 명확하지 않은 나의 일기 같은 글에도 공감과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차곡히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건- 정말 최근의 일이다.
이쯤에서 두 가지 생각이 든다.
단기간에 영리한 방식의 어필은 오히려 역효과.
사람의 마음은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내비치는 빛을 느꼈을 때 기꺼이 열린다.
하지만 운명에 맞기고, 기회를 기다리고, 언젠가는 나를 알아주기를 당연하게 바라는 건 오만이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세계는 멈춘다.
며칠 전에 다시 '매일'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고 난 후 아무리 일이 많거나 종일 무기력해도 썼다. 오늘도 카페에 와서 혼자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오늘 정말 정말 생각이 많다. 꾸준히 매일 글쓰기는 그저 디폴트 값으로 가져가야 하는 것뿐. 이제는, 나를, 내 글을 어떻게 더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또 그걸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매일 글을 써서 노션 개인 페이지만 쌓아두고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나는 이슬아 작가님처럼 꾸준하고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며 정세랑 작가님처럼 일 년 동안 그분의 신작을 기다리는 독자층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나를 '작가'로써 살게 할 것인가.
이렇게까지 생각해야 하는 걸 보면, 글을 쓰는 것이 더 이상 취미가 아니라 직업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 글자 한 문장을 쓰면서 백원 오백원 천원 만원 이렇게 돈이 쫘르륵 쌓이는 것도 아니고, 일 년에 책 한 권 내면 연봉 정도의 인세를 받는 것도 아니지만, 일러스트레이터가 나의 본업이지만- 명벽하게 글쓰기 또한 내 직업이기에 더욱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글쓰기의 원동력을 생각해 본다. 계속하지 않으면 나의 존재감이 바스스 무너져 버릴 것이라는 두려움. 누군가 나의 글을 읽고 싶어하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책을 내기로 한 출간 계약서 도장을 찍은 사람의 책임감. 버티는 삶에 유일하게 나 스스로 노력할 수 있는 능동적인 행위. 그리고 계속 글을 쓰면서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야만 하는 기약 없는 생.
내가 궁금한,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생각한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또 다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