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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현 Oct 03. 2021

내 앞의 문을 열기

우주형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될지 알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자고로 꿈이 있어야 한다며, 어른들은 아이에게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나의 장래희망은 자주 바뀌었다. 과학자, 선생님, 대통령, 화가... 여러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과학 점수는 늘 최하점이었고 선생님은 힘들어보였고 대통령은 어려워 보였으며 화가는 돈을 못 버는 직업 같았다. (결국 화가 비슷한 직업을 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대기업 회사원, 카페 직원, 출판사 편집자 같은 구체적인 직업을 장래 희망이라 한 적은 없었다. 장래희망은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었으니까.


서른 여섯의 나는 단 한번도 꿈꿔본 적 없던 작가라는 직업으로 살고 있다. 어차피 꿈이었다면 우주 비행사나 공룡 화석 연구가, 경비행기 조종사, 국제 구호협회 대표 같은 거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까.


모로코를 여행할 때 매일 밤 은하수를 보면서, 전자책에 담아간 ‘우주형제’ 라는 만화책을 자기 전에 읽었다. 어린 시절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우리 꼭 달에 가자' 라고 약속했던 두 형제가 우주 비행사가 되서 달에 가는 이야기다. 우주를 꿈꾸는 두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어느 강연장에서, 현직 우주비행사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주 비행사라는 꿈은 아주아주,
거대하고  문으로 보입니다.
절대로   없을  같이 크고 무거운 문이죠.
 문은 절대   없을  같아서 많은 사람들이 포기합니다.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니까요.

하지만 사실,
 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우리는   하나를 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문을 계속해서 열어야 하는 걸지도 몰라요.

내가   있는 만큼의 문이  앞에 있고,
 문을 열고 나면  다른 문이 있고,
 다른 문이 나오면 그걸  열어요.

그렇게 문을 계속 열다보면
어느새 내가 우주 한가운데 있을지도 모르죠.


<우주형제>의 두 사람은 서류 시험, 체력 테스트, 팀워크 테스트, 무중력 훈련 등 그 외에도 예상치 못한 수많은 고난을 지나- 결국 우주에 간다. 작은 문과 작은 문이 더해져 큰 문이 된, 꿈의 실현이었다.


내가 열었던 문은 몇개였을까. 학창시절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능, 미대 입시, 입학 시험, 대학 과제, 실기 과제, 카페 아르바이트, 첫 그림 외주, 첫번째 글 쓰기, 세계 여행, 첫 책의 원고, 소설 삽화 작업, 두번째 책의 원고, 세번째 책의 원고, 매일 매일의 글쓰기... 수없이, 수없이 많은 문을 열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다들 그렇다. 문의 모양도, 여는 방식과 속도도 제각기 다르겠지만 모두 저마다의 문을 열고 있다. 이루고 싶은 것이 있고 잘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간절하면 할 수록 더욱 어렵고 막막하다. 하지만 결과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낫다. 사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 거 없으니까.


그저 나는 한 시간 더 글을 쓰고, 내일 또 일어나 글을 쓰고. 밥을 챙겨먹고 일을 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또 글을 쓴다. 한 글자 한 문장이 모여 수백 수만자의 글이 되었고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었다. 의미없던 단어가 시간을 따라 차곡히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놀랍고 새로운 가치의 무언가 되는 것을 이미 겪어보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짧고 사소한 순간 순간이라도 어떤 의미로든 남으리라 믿는다.


지금 내 앞의 문이 꼼짝도 않고 멈춰있더라도,

잘못된 문을 열려는 허튼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두렵더라도.

그래도, 내가 여기 가만히 서서 뭘 하겠는가.

문을 열기 위해 노력할 뿐.


아직도 열어야 할 문이 많겠지만

당장은 바로 앞의 문을 열어보기로 한다.

힘에 겨우면 잠시 쉬기도 하면서,

계속, 계속 밀어 본다.



宇宙兄弟, Chuya Koyama

알고 싶은 것의 대략 절반쯤은 
인터넷이나 책을 찾아보면   있어.
하지만 어디에도 실려있지 않은 ‘나머지 절반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해 내든지, 체험하는  밖에 없어.


최하위든 뭐든 상관없다.  결승점까지 걸어간다.
1위와 최하위의 차이 따위   아니야.
결승점까지 들어가는 것과 그러지 못하는 것의 차이에 비한다면.


/ 우주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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