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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남 Feb 10. 2020

열쇠를 목에 걸고 다니는 아이

내 딸 선영이

열쇠를 목에 걸고 다니는 아이                                         


아, 정말 힘들다는 생각을 하며 내 집 현관에 도착했다. 자정이 다 되어 있었다. 그래도 오늘 안에 퇴근하니 참 다행이라 생각하며 아내와 아이가 깰까 조심스럽게 열쇠를 꺼내 현관문을 열었다. 


문을 여니 거실에 불이 켜져 있어 아내가 아직 깨어 있다고 생각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윤정아, 나 왔어. 좀 늦었어. 미안해”라고 했는데 아내의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거실 쪽을 둘러보다 이내 나는 심장이 찢기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볼을 따라 흘렀다. 


아내는 아직 회사에 있었고 나의 두 딸은 꾀죄죄한 모습으로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잠이 들어 있었다. 마른 밥알 몇 개가 붙은 두 개의 밥공기와 숟가락은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고 반찬 그릇들 또한 거실 바닥 여기저기 엎어져 있었다. 아침에 입혀준 옷은 많이 더럽혀져 있어 초라해 보였다. 테이블 위의 TV는 아이들이 꽂아 놓은 디즈니 만화 비디오테이프가 다 돌아 화면이 찌지직거리고 있었다. 잠깐 내 머릿속은 하얗게 되어 버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기 싫어 찡찡거리는 아이들을 깨워 씻기고 양치를 시킨 뒤 잠옷을 입혀 침대에 눕혔다. 아이들 볼에 입을 맞추며 잘 자라고 속삭여 주었으나 아이들은 내 속삭임을 들은 둥 만 둥 그대로 꿈나라로 떠나 버렸다. 


아이들을 재운 후 나는 거실에 쭈그리고 앉아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큰딸 선영은 아직도 한참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7살 어린아이였다. 그 시절 선영은 우리 부부가 둘 다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목에 걸린 열쇠로 문을 열고 혼자 지내다 저녁 시간이 되면 동생을 돌봐 주던 집으로 가서 3살짜리 어린 동생을 데리고 왔다. 7살짜리 치고 야무지고 의젓한 맏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오늘의 장면은 너무 슬펐다. 


선영이는 초등학교에 진학하고도 언니의 역할을 계속해야 했고 재영이도 그러한 환경을 잘 견뎌야 했다. 우리 부부 또한 가능하면 곧바로 퇴근해서 아이들을 돌보려 애썼고 주말에는 반드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우리 가족 네 명의 삶은 늘 그렇게 치열한 것이었다. 


지금 와서 다시 돌이켜보면 우리 아이들은 너무 어렸다. 그 어린아이들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지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이라도 해 보고 싶지만, 육아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전혀 없던 그 시절 그것은 아내의 직장 포기와 아이들의 희생을 놓고 늘 고민하던 딜레마였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아이들은 다행스럽게도 잘 적응하고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아이들이 다 자라 대학생이 되었을 때 아이들과 그 시절 얘기를 했다. “그때는 엄마 아빠가 너무 어려서 잘 몰랐어.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잘 몰라서 그랬는데 너희가 사고 없이 잘 자란 게 고맙고도 미안하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별 얘기 다 듣는다는 표정으로 “그때 애들이 나 부러워했어요. 부모님께 잔소리 안 듣는다고. 엄마 아빠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우리 잘 먹고 잘살았잖아.” 그러며 픽 웃었다. 


7살 아이가 열쇠로 문을 따고 빈집에 들어오고 3살짜리 동생을 데리고 와서 저녁을 먹여야 했던 가슴 아픈 장면을 아이들은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부모의 노고로 받아들여 준 것이 여전히 미안하면서도 퍽이나 위로가 되었다. 너희 보기에도 최선을 다해 성실히 사는 모습이었다면, 무식해서 용감했던 나의 과오도 내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좋은 모습으로 기억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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