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선영이
# 안녕, 나의 천사 - 나흘의 기록
‘그날 아기는 엄마 배를 가르고 세상의 빛을 보았다.
이 경이로운 일은 내 나이 만 27세 11개월 때 일어났다.’
1989. 6. 23(금)
아침 일찍 병원에 도착하니 아내는 벌써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실 앞에서 한참이나 기다렸다. 오전 7시 50분쯤 간호사가 곧 수술한다고 알려주었다. 눈을 감고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았다. 심장이 뛰고 숨소리마저 느낄 정도로 주위는 고요했다. 산모와 아기가 무사하기를 기도했다. 지금까지 그리 간절해 본 적이 없었다. 8시 20분쯤 의사가 나왔다. “예쁜 공주님입니다. 축하합니다.”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한 귀여운 아기의 아빠가 된 것이다. 눈물겹도록 기쁜 일이다.
아내는 의식 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고 저만치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기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얼마 후 의식이 돌아온 아내는 가끔 신음을 내는 걸 보니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빨리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AM 10:00)
내 아기는 1989년 6월 23일 금요일 오전 8시에 태어났다. 무게는 3.4kg, 키는 49cm이고 혈액형은 A형 RH+이었다.
출생 장소: 김신근 산부인과
소재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라이프 쇼핑센터 2층
의사 이름: 김신근
간호사 이름: 정순이, 현미선, 김복실
이 경이로운 일은 내 나이 만 27세 11개월 때 일어났다.
창문 너머로 우리 아기를 보았다. 갓 태어난 아기는 좀 이상스럽던데 내 아기라 그런지 정말 귀엽기 그지없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아기가 조금 커서 재롱부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행복하다는 느낌이 한없이 밀려왔다. (PM 7:50)
1989. 6. 24(토)
입원실에는 침대가 2개 있고 그사이에는 두 평쯤 공간이 있었다. 아내는 밤새 서너 번 일어났지만, 무사히 밤을 보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불과 하루 지났는데…….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가 들리는 방까지 가 보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저 마음만 아플 수밖엔. (AM 8:00)
오후 6시, 퇴근 후에 다시 병원으로 왔다. 아내는 표정이 없었다. 기운마저도 없어 보였다. 말하거나 웃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나도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간호사에게 부탁하여 아기를 보았다.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모습이었다. 조심스레 안아 보았다.
사랑스러운 나의 아기. (PM 9:00)
1989. 6. 25(일)
어젯밤에도 아내는 여러 번 일어났었다. 열도 좀 있었다. 어제부터는 소변을 보러 직접 화장실에 가곤 했는데 처음에는 몹시 힘들어하더니 몇 번 해보고 나서는 잘하는 것 같았다. 회복실 쪽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내도 이젠 한결 편해진 모양이었다. 심통도 부리니 말이다. (AM 7:00)
오전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셔서 아기를 보시고 저녁 무렵에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오셔서 아기를 보았다. 모두 예쁘다고 말씀하셨다. 예쁜 아기 모습이 항상 눈에 선했다. 자꾸 보고 싶어 졌다. 이 아기가 빨리 자라서 한 번 꽉 안아보고 싶었다.
아내의 회복 속도가 제법 빨라지고 있었다. 이젠 말도 잘하고 평상시와 같이 심술도 부리고 뭐 그렇다. 내일쯤이면 완전히 나아질 것 같았다. 오늘 우리 아기 사진을 찍었다. 잠든 모습을. 그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나의 천사, 나의 아가. (PM 8:00)
1989. 6. 26(월)
어제는 늦게 집에 가서 자고 오늘 아침 일찍 처제와 함께 병원으로 왔다. 처제는 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출근하고 나 혼자 아내 옆에 남았다. 나도 30분 후면 출근을 할 예정이었다. 처제가 가기 전에 아기를 보고 싶어 했지만 볼 수는 없었다.
아내는 오늘 새벽에 드디어 가스가 나왔다고 했다. 어제보다 더 많이 회복될 것 같았다. 우리 아기도 좀 더 컷을 테지. 우유도 제법 잘 먹는 것 같았다. 신생아실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기의 울음소리인지 구분은 안 되었지만 무척 신경이 쓰였다. (AM 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