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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두달홍천살이 Mar 19. 2023

더 글로리, 선의의 복수를 위한 판 짜기  

기억되기 위한 권선징악 복수

오늘 드디어

<더 글로리>를 16화까지 모두 봤다.


대사 하나하나에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이

너무 잘 반영되어 있어 감정이입이 잘 됐다.

무고한 피해자였던 동은이

가해자에게 말하듯이 써 내려간 편지가

독백의 목소리로 드라마를 이끌어 간다.


본인은 판만 짰을 뿐

직접 손을 대지 않고도

가해자들이 스스로를

폐허로 이끌고 가는 과정,

복수의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서

나는 쾌락감을 느꼈다.

상상을 뛰어넘는

복수를 위한 판 짜기에

경외감을 느꼈다.


가해를 방관하던 존재들도

피해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가해자이다.


“남의 불행에 웃던 네 입은

네가 불행해지고 나서야

조용해졌구나.

흉터는 시도 때도 없이

가렵고, 아리고, 뜨거울 거야.

나도 그랬거든.”


“내가 복수를 왜 하는지 알아?

18년 동안 너희가 나를 잊었더라.

그래서 하는 거야, 기억되려고.

너도 기억하고 싶은 누군가가 생겼지?“


가해자는 모두 잊어버린

과거 피해자와 그 고통들이

직접 그 고통을 돼로 받으며

가해자에게 소환된다.

피해자는 당시의 경험과 기억으로

남은 인생 전체를 잃었다는 사실을

가해자들은 모르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보는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한다.


또 다른 무고한 피해자인 주여정은

자신의 아버지가 무고하게 살해된 날부터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고 감옥에 있는

그 짐승 때문에 지옥 속에 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동은의 복수를 도왔고

자신에게도 복수를 도울 동운이 다시 찾아온다.

그는 웃으며 짐승에게 복수를 경고한다.


“짐승을 구할 거였으면 수의사가 됐고

악마를 구할 거면 목사를 했어요.

나는 인간만 구해요.

그 선서는 인간을 구할 때만 지키면 되거든요.”


아무리 내 현 삶이 억울한 지옥 같더라도

나를 지켜주는 존재는 주변에 있었음을

지나고 보니 알아간다.


“근데 물이 너무 차다. 우리 봄에 죽자, 봄에.”


“그렇게 18번의 봄이 지났다.

나에게도 좋은 어른들, 친구들,

날씨, 신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을.

봄에 죽자는 말은 봄에 피자는 의미였음을.”


내가 누군가를 지옥에서 꺼내줬을 때

그 상대는 어떻게든 나에게

보답을 해주고 싶어 한다.

그때 그 사람을 나의 선의의 목적에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삶이란 참 희한하다.

모든 관계가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항상 이웃에 대한 따뜻한 마음

기꺼이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


내가 겪고 있고 앞으로 겪을 일들이

누군가에 의해 모두 계획되어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매 순간이 사무치게 불안하고 두려울 거다.

마치 사기를 당하는지도 모르고

사기의 판에 들어가는 것처럼.

가해자는 그 고통을 느낄 의무가 있다.


사회가 주는 형벌은 충분하지 않다.

감옥 안에서도 그 짐승들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자유가

허락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끝이

내가 세상에 있든 없든

너의 세상이 온통 나였으면 좋겠어.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

뼈가 아리게

‘억울’해하면서.”


이 드라마를 본

이 세상 속 망각의 가해자들은

벌벌 떨게 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죄책감의 지옥 속에 가둬야 한다.


복수가 끝나고 피해자가 얻는 건 무얼까.

피해 당시의 자신에게 주는

명예와 영광 같은 것이라고.

드라마 속 주여정은 말한다.

그 복수는 단지 자아를 잃어버리기 직전의 자신으로,

열여덟 살이었던 과거의 자신으로

돌려놓는 일이었음을.


“비로소 시간이 흘러가 소희야.

축하해. 너와 나의 열아홉 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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