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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되는 철학을 왜 10년 넘게 공부하냐고 물으신다면

철학에세이를 쓰는 이유


때로는 정말 궁금하다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한채, 때로는 정말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을 한채 사람들은 저에게 묻습니다.


뼛속까지 현실 논리를 받아들이는 현실주의자인 네가 왜 철학을 10년 넘게 공부하고 있냐고요.


제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모르는 온라인 속 익명의 사람들은 댓글로 더 거칠게 묻습니다.



"철학 배워도 아무 데도 쓸모없는 거 아님?

"철학과 졸업하면 철학관 여나요?"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 할 시간에 돈 벌 궁리나 해야지"



무례한 댓글에 가끔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표현 방식엔 유감이지만 그들이 하는 말이 꼭 틀리지만은 않으니까요.


철학 전공이 취업에 불리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철학 공부가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 학문적으로도 학부 수준에서 배우는 철학은 "나는 이런 걸 공부해요"라고 확실히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범위를 얕게 공부하는 것도 맞고요.


사실 철학 전공자의 암울한 현실은 이 시대만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유명한 서양 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도 생계를 책임지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구박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더 가까이 근대의 쇼펜하우어나 마르크스 같은 걸출한 철학자의 부모들도 자식이 철학 공부한다는 걸 반기지 않았죠.


칸트, 니체, 비트겐슈타인과 같이 역사에 선명하게 이름을 남긴 철학자들의 삶도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세상의 거대한 물음을 떠안는 철학자의 삶은 여느 시대에서나 돈을 버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죠.


이런 점에서 철학을 할 때 현실적인 풍요로움을 포기해야 하는 건, 축구를 할 때 손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농구를 할 때 발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문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기본 조건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철학과에 오면 굶어 죽기 딱이다"라는 말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게 아닙니다.


그보단 "돈이 되지 않는 철학을 왜 공부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각자의 이유를 찾는 게 중요하겠죠.


제가 철학과에 진학했던 10여 년 전에도 철학의 미래는 똑같이 어두웠고, 주변에서 진학을 만류하는 학과였습니다.


고작 고등학생이었던 저 역시도 철학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하지 않았을 만큼 철학이 처한 현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철학과를 선택했고, 10년 넘게 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제가 삶의 진리나 인간의 본질과 같은 숭고한 가치를 찾기 위해 철학을 공부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저는 철학을 통해 그런 대단한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린 지 오래입니다.


오히려 철학을 통해 그런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 삶을 병들게 한다고까지 생각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럼에도 제가 철학 공부를 계속하는 이유를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여러분들도 스스로 왜 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왜 관심을 두는지 함께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먼저 검토해봐야 할 철학적 질문이니까요!





삶의 궁극적 해답을 찾기 위해서,

가지 말라던 철학과를 선택했던 이유




제가 입시를 치르던 2010년 대 초에는 지금보다 수능 응시생이 더 많았고, 대학 간판이 개인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말이 더 잘 먹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대학에서 어떤 과를 전공할 것이냐가 마치 인생을 결정할 것만 같은 부담감으로 다가왔죠.


그런 상황에서 저는 일찍이 철학과에 진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철학을 열심히 공부하면 이 수수께끼 같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이 기대감은 저를 데카르트,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스피노자와 같이 이성을 강조하는 철학자들의 책으로 이끌었습니다.


도서관에서 펼친 철학자들의 책은 한 장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 틈에서도 이 속에 무언가 대단한 진리가 숨어 있을 것 같다는 건 느낄 수 있었죠.

 

그래서 언젠가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한다면 그 숨은 진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철학을 공부하다가 "안 되겠다, 대학에 가서 제대로 철학 공부를 해 봐야지!" 하는 결심을 하고 수능 공부를 시작해서 철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철학과에 입학해 제대로 공부해 본 철학은 제 생각과 너무나 많이 달랐습니다.





철학 공부에 회의를 느낀 두 가지 이유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저는 현실적인 이유와 학문적인 이유에서 철학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첫 번째 현실적인 이유는 철학은 인간과 세상을 다루는 학문인데, 실제로는 우리 삶과 동떨어진 학문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사회에 대한 철학의 비판적 탐구는 강의실 밖으로 걸어 나오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복잡하게 꼬여있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교실에서 배운 철학은 너무나 한가해 보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지식인이 몰락하는 시대적 흐름과 맞물려 철학을 배운 사람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딱히 없다는 사실도 목격할 수 있었죠.


미시적인 개인의 문제에 대해서도, 거시적인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철학적 논의가 파고들 여지는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모든 대학교 철학과에 퍼져있는 무기력함은 단순히 취업을 걱정하며 다른 과를 기웃거리는 학생에게서 출발하는 문제가 아니라, 현실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는 철학이라는 학문 그 자체가 가진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죠.


철학에 대한 이러한 회의감은 어쩌면 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불평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고등학생 시절에 품었던 철학에 대한 기대를 놓은 건 현실적인 이유보다는 학문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제가 철학에 대해 회의를 품었던 두 번째, 학문적인 이유는 철학을 통해 인간 삶의 문제에 대한 궁극적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거란 저의 기대가 헛됨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철학자들이 세상의 궁극적 진리를 찾기 위해 탐구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남긴 책 속에는 인간이 부여잡고 살아갈 삶의 정답이 있는 줄 알았죠.


하지만 현대로 가까워질수록 철학자들의 작업은 궁극적 진리를 찾는 게 아니라, 이전 철학자들이 퍼트린 철학적 진리를 무너트리는 데 집중돼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를 거쳐오는 동안 이어진 철학자들의 비판적인 탐구 속에서 철학은 수없이 많은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이 변화에는 이전 철학자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의 작업을 파괴하는 과정도 포함습니다.


철학은 스스로의 생존 위기를 자처하면서도 자신의 존재 이유에 끝없는 물음을 던지는 그런 학문이었습니다.


그 물음의 결론이 "철학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로 이어지더라도 말이죠.


사실 하나의 간단한 사고 실험만 해봐도 고전의 반열에 오른 철학 책을 읽어도 삶의 진리를 얻을 수 없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철학자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안에 갇힐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의 질서가 지구와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지식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에서 태어난 철학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철학자는 지구와 인간을 세상의 중심에 두고 철학적 탐구를 해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가진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설명하는 철학적 세계관을 만들어내겠죠.


그렇다면 그 철학자가 만든 철학적 세계관이 우주에서 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티끌만 한 먼지 정도밖에 안된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우리 시대에도 충분한 설명력을 가질까요?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지점에선 그 철학자의 통찰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철학자에게 그가 보지 못했던 세계까지 포함하는 시대를 초월한 궁극적 해답이 있을 거란 기대를 하는 건 지나친 일이겠죠.


마찬가지로 만약 미래의 인류가 우주 밖에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아낸다면, 그들 역시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인간이란 존재를 이해할 겁니다.


모든 시대의 철학자는 자신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시하고자 열중했습니다.


특히 이 흐름은 근대의 과학혁명과 엮이며 더 역동적으로 진행되었죠.


철학자들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과학적 지식을 품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앞선 철학자들이 남긴 유산은 수정되고, 보완되고, 혁명적인 변화를 거쳐왔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때마다 그 새로운 시대를 설명하려는 새로운 철학이 등장해 왔던 것이죠.


가까운 현대에도 들뢰즈와 같은 철학자가 자신의 철학에 리만 기하학, 양자역학을 끌어안으려고 했던 것처럼요.


이렇게 철학이 끊임없는 변화 속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사실은 곧 어떤 위대한 철학자도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철학적 진리를 갖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동안 저는 철학을 통해 세상의 이치나 세계를 아우르는 원리를 알 수 있을 거란 어린 시절 품었던 기대를 놓았습니다.


나아가 철학이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는 생각에 더 가까워졌죠.





그럼에도 철학 공부하는 하는 이유




철학적인 고민에 빠져 사는 건 꿀통에 빠진 파리처럼, 언어로 하는 달콤한 장난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는 걸지도 모릅니다.


공부하면 할수록 이 세상은 내가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허무하고 고통스러운 결말로 향해 가는 여정일 수도 있고요.


이럴 바에야 차라리 심플하게 돈의 논리를 따르면서 속 편하게 사는 게 더 현명한 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제가 철학을 계속 공부하는 이유는 제 눈으로만 보는 세상이 따분해서입니다.


지금 저에게 철학은 '세상을 새롭게 보는 안경을 수집하는 일'과 같습니다.


니체라는 안경으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믿지만 능력에 따라 갑과 을이 나뉘는 능력주의가 상식이 돼버린 현대 민주주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푸코라는 안경으로는 상식과 비상식,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그 많은 기준들이 원래 있었던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만들어져 왔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 할 수 있습니다.


또 니콜라스 루만이라는 안경으로는 한 인간은 변하지 않는 본질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어떤 상황과 집단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변화무쌍한 존재라는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철학자들의 안경을 수집하면 우리의 삶에 보이지 않는 면들을 발견하며 조금 더 풍성하게 삶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마치 수많은 영화를 본 영화평론가가 영화의 숨겨진 의미까지 찾아내며 재미있게 즐기는 것처럼요.


어떤 이는 가장 성능 좋은 철학자의 안경을 찾아 그 안경으로 보는 세상정답이라 말하고 싶어 하지만, 저는 그런 안경을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인류의 역사에 남은 그 많은 비극들은 누군가가 자신이 이 세상의 진리를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했으니까요.


자신이 보는 세상만을 정답이라 여기지 않고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삶을 만끽하는 것.


저는 이것이 다른 것들에선 얻을 수 없는 철학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돈이 되지 않는 철학을 지금도 공부하는 이유이고, '진리'나 '본질'과 같은 개념에서 벗어나 사유하는 현대 철학자들의 작업을 주로 다루는 이유입니다.


"삶의 이정표를 얻기 위해", "명확한 삶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큰 기대를 안고 철학에 관심을 기울이는 분들에제가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너무나 사소하게 드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재미가 있어야 꾸준히 하고, 꾸준히 해야 변화가 생기는 걸 고려한다면, 일상의 재미를 위해 철학을 공부한다는 이 말이 그렇게 사소하게 들리지 만은 않을 겁니다.


앞으로 저는 철학자들이 남긴 책을 들춰 2023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시선들을 수집해보려고 합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철학자들의 의견에 반기를 들고 삐딱하게 비판해 보면서 그들의 책을 지금 우리 시대로 끌어오는 발칙한 글쓰기도 해볼 예정입니다.


이 작업은 오랫동안 상식으로 여겨지던 '진정한 나', '현실과 가상', '인간의 본성'과 같은 철학적 가치들을 뒤집고 비판해 봤던 저의 책 <현실주의자를 위한 철학>의 논의를 이어나갑니다.



저의 이전 논의가 궁금하신 분은 한번 둘러봐 주시고, 앞으로 업로드할 생활밀착형 철학에세이에도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북스토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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