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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적인 인간이 손에 쥔 핵, 파멸은 예정된 미래다


*지금부터는 이 글은  <오펜하이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의 일대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고 싶은 분들은 관람 후 읽는 걸 권유드립니다.




놀란이 오펜하이머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




놀란의 영화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모순'이라는 키워드로 엮입니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은 10분 밖에 기억을 못 하지만, 자신의 몸에 새겨둔 단어를 추리해 범인을 잡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다크나이트>의 주인공은 고담의 정의를 수호하겠다고 나서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정의를 끝없이 의심하는 인물이며, 고담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악당이 되는 걸 자처하는 인물입니다.  


<테넷>의 주인공 역시 자신이 모든 일을 기획한 '주도자'지만 정작 자신의 주도자라는 걸 모른 채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죠.


놀란은 복잡한 속내를 가진 캐릭터를 딜레마에 빠트리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그가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이유는 놀란이 인간을 결점투성이자 모순 덩이리로 보기 때문인데요.


놀란은 우리 모두가 그렇듯 인간은 변덕스럽고 논리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존재이기에, 흔들림 없는 정의감을 가진 평면적인 주인공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파괴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채널 디글


이런 놀란의 관점에서 보면 오펜하이머는 굳이 각색을 할 필요 없는 완벽한 주인공입니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만들었지만 수소폭탄 개발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미국 정부와 투쟁한 사람이고,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입니다.


또 천재적인 머리를 가졌지만 대인관계에서는 문제가 많았던 사람이고 물리학자이면서도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던 사람이었죠.


오펜하이머야 말로 모순과 결점을 가진 인간의 결정체이고, 불완전하고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주인공입니다.


물론 이게 끝이었다면 오펜하이머는 한 명의 특이한 천재 과학자로 남았을 것입니다.


오펜하이머의 삶이 더 특별한 건 그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큰 모순이 만들어지는 순간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오차 없는 논리로 만들어지는 핵폭탄과

그걸 다루는 비논리적인 인간




영화 <오펜하이머>는 오펜하이머라는 물리학자의 삶을 빌려 인류 역사상 최고의 모순이 만들어진 순간을 조명하는 영화입니다.


원자폭탄 개발의 성공은 한치 오차 없는 궁극의 논리로 만들어지는 파멸의 무기가 비논리적인 인간들의 손에 쥐어지는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원자폭탄은 근대부터 시작한 과학혁명의 최종적인 결과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16세기부터 시작된 과학혁명은 "일단 믿으라"라고 말하는 종교가 지배하던 시대에서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하며 끝없는 물음을 던지고 논리적 검증을 시도하는 과학이 지배하는 시대로 전환을 의미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과학혁명의 시작을 알린 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의 주인공 코페르니쿠스였습니다.


폴란드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년 2월 19일 - 1543년 5월 24일)



그는 저녁 하늘을 관측하면서 모은 자신의 관측 자료들이 지구가 아라 태양을 세상의 중심으로 둘 때 설명 가능하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와 함께 태양을 중심으로 다른 행성들의 운동을 계산해 보면서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며 모든 행성이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확신에 다가섰죠.


이어서 등장한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이용해 코페르니쿠스의 결론이 옳았음을 다시 증명했고, 케플러는 태양이 자력과 같은 힘으로 행성을 잡아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의 논의를 이어받은 뉴튼은 1687년 출판한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태양의 자력을 중력이란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뉴튼은 수학적 계산을 통해 행성들의 움직임을 완벽히 계산해냄으로써 인간은 신 없이도 이 세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과학자들은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쓴 책의 출판인인 '안드레아스 오지안더'는 책의 서문에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음을 말하는 이 이론이 오직 하나의 가설이라는 말을 덧붙여 교황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년 2월 15일 ~ 1642년 1월 8일)는 이탈리아의 철학자, 과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갈릴레이 역시 목숨을 빼앗길 위기에서 자신이 발견한 진리를 포기했고, 케플러는 그동안 쌓은 명성으로 살아남았지만 황실 수학자라는 직위만 가지고 있었을 뿐 봉급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하지만 관찰과 계산만 할 수 있다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과학적 사실은 감춰지지 않았습니다.


명백한 논리로 무장한 근대 천문학의 발전은 "이 세상은 신이 인간을 위해 만든 세계다"라는 신학적 세계관 뒤집었습니다.


다음으로 무너진 건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생물학에서 다원의 진화론은 인간이 '창세기'에 등장하는 신의 창조 행위를 통해 세상에 등장한 게 아니라, 자연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의 번영을 통해 등장했음을 알아냈죠.


찰스 로버트 다윈(영어: Charles Robert Darwin, 문화어: 찰스 다윈, FRS, 1809년 2월 12일 ~ 1882년 4월 19일)은 영국의 생물학자이자 지질학자


진화론은 신의 피조물로서 누리던 인간의 지위를 동물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존재로 격하시키면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진화론에 허점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의 새로운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서 19세기에만 와도 동식물종의 진화는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공식 학설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거의 모든 국가의 생물학 교과서에서 정설로 채택하고 있죠.


의학에서도 과학의 약진은 눈부셨습니다.


신학이 주름잡던 시대에는 종교적 미신에 근거해 자의적인 의술이 행해졌습니다.


"인간 몸에 대한 인위적인 행위는 신성모독이다"라는 성직자들의 엄포는 생리학, 해부학, 예방접종의 발전의 큰 걸림돌이 되었죠.


하지만 관찰과 실험을 바탕으로 한 의학의 발전은 몸에 관한 성직자들의 믿음을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근대 의학을 통해 인간의 수명은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삶의 질 역시 전과 비교할 수 없는 만큼 좋아졌습니다.


믿음이 지배하던 종교의 시대는 이성과 합리로 무장한 과학의 발전으로 끝이 났고, 발전하는 과학과 기술은 인류의 지식과 역량을 점점 더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발전한 과학 기술을 통해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찬 미래를 그리게 해 주었죠.


하지만 발전한 과학과 기술의 종착지는 모순적이게도 문명의 발전이 아니라 파멸이었습니다.


과학과 기술을 선점해 막강한 힘을 갖게 된 유럽의 강대국들은 그 힘을 식민지를 만드는 데 사용했고, 그들의 부딪침 속에서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정교한 과학기술은 기관총, 탱크, 잠수함, 비행기와 같은 재래식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됐고,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군인과 민간인 포함 약 4,000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잠깐의 소강상태 이후 다시 발발한 두 번째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중 자연의 원리에서 세상을 끝장 낼 수 있는 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그동안 쌓아온 인류의 과학적-기술적 역량은 이 무기를 만드는 데 쓰였습니다.


그렇게 트리니티 실험으로 세상에 등장한 원자폭탄은 단 1발만으로도 도시 전체를 박살 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는 철저한 계산과 논리를 통해 만들어지는 파멸의 무기가 그릇된 믿음과 이기적인 욕망으로 서로를 스스럼없이 죽이는 비합리적인 인간들의 손에 쥐어졌음을 보여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오펜하이머라는 사람에게 모순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건 단순히 그가 가진 성격 때문이 아니라, 그가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큰 모순이 만들어지는 그 순간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순으로 가득 찬 주인공을 창조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놀란이 이번엔 오펜하이머라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든 건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겁니다.




0%의 확률에서 100%의 확률로,

파멸을 직감하는 오펜하이머




영화 <오펜하이머>에서는 물리학자들이 원자폭탄 실험 시 대기에서 연쇄폭발이 일어나 지구 전체가 멸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듭된 계산을 통해 원자폭탄 실험으로 세상이 멸망할 확률은 0%에 가깝다는 걸 확인한 오펜하이머는 실험을 강행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원자폭탄보다 더 강력한 수소폭탄을 개발하려는 미국 정부의 결정, 이를 두고 분열하는 과학 공동체의 모습,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권력자들과 마주하면서 파멸을 상상하는 오펜하이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끝이 납니다.


이 영화는 관객들을 영화관에 앉혀놓고 핵폭탄의 압도적인 파괴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핵폭탄을 두고 갈등하는 모순적인 인간들을 조명하면서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세련된 방식으로 핵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더 나아가 영화 끝에 핵폭탄으로 지구 곳곳이 불타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감독은 이 모든 모순의 끝은 파멸로 결정돼 있다는 비관적인 시선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다뤄봐야 할 질문은 "비논리적인 인간들의 손에 지구를 날려 버릴 무기가 주어졌다면 인류에겐 어떤 해결책이 남았는가?" 하는 물음인데요.


바로 이 지점에서 오펜하이머와 함께 핵을 만들었던,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과학자 중 한 명인 리처드 파인만은 과학의 시대에서 종교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추후에 이 글에 이어서 리처드 파인만이 말하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한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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