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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호박피자 Feb 22. 2020

엄마 말이 맞았어. 그치만 말야,

산 사람은 살아지더라.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천근보다도 더 무겁게 보이는 병의 무게에 짓눌려있던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가입했던  투병 카페에는 환자뿐 아니라 나처럼 환자를 간병하는 가족의 글도 적잖이 있었다. 그리고 종종 간병하는 가족'이었던' 이의 이야기도 있었다.  사람도 딸이었다. 나처럼. 어머니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고 했다.   속에서 일상의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는  사람을 쉬이 떠올릴  있었다. 두려웠다. 나의 앞날 같아서. 엄마를 잃게 되면 내가 분명 이렇게 되겠지.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겠지.

 한부모가정의 외동딸. 엄마는 가족이면서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다. 매일 닭살 돋는 애정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잠들기 전에는 누가  사랑하는지 경쟁하듯 사랑한다고 말했다. 전화 통화할 때도 어차피  집에 돌아가면 만날 텐데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끊었다. 조금이라도 다투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해의 말을 건넸다. 엄마가 없는 상황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보다 상상 자체가 어려웠다. '기본값',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은 그냥 나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기본값이었다. 물론 사람이 영원히   없고 이별의 순간이야 필연적으로 오겠지만, 적어도 그건   미래의 일이라 생각했고, 최소한 지금은 아니었어야 했다.
아니, 말이 ??
엄마가 없는데 어떻게 살아?
내가?

  엄마 없으면 제대로 살지 못할 거야 라는  말에 엄마가 말했다. " 사람은 살아지더라." 그건 아버지를 잃어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아버지,  나의 외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번도  적이 없었지만, 엄마가 가끔 들려줬던 이야기 속에서 할아버지가 얼마나 당신의 딸을 아꼈는지 어렴풋이   있었다. 그토록 커다란 사랑을 주고받았던 아버지를 보내고도 엄마의 인생은 계속됐으니, 엄마 본인이 '살아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부정했다. '나는 엄마 없으면 제대로 살지 못할 거야.'



엄마와 찍은 사진을 그렸다. 젊은 시절의 엄마는 스타일 좋은 멋쟁이였는데, 사진 속에서도 예쁜 청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 옆에 선 어린 나는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어릴 때, 어딘가에 머리를 아주 세게 부딪친 적이 있었다. 순간 얼얼해서 통증이 바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프다는 감각은 그 얼얼함이 가시고서야 왔다. 엄마를 잃었을 때도 그랬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지금 내가 감각하는 이 감정이 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처음 며칠은 의식적으로 씩씩하게 굴었다. 나는 내가 괜찮은 건가 싶었다. 엄마의 사후 정리를 마치고 취준생의 신분으로 돌아온 나는, 졸업한 학교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다시 토익 공부를 시작해야지. 읽히지도 않는 문제집을 펴고 공부를 했고, 점심도 사 먹었다. 그리고 잠깐 쉬려고 간 학교 건물 테라스에서 나는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뛰어내리고 싶었다. 엄마 곁으로 가고 싶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가 더 이상 없다는 현실이 피부로 느껴졌다. 알게 됐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나는 죽고 싶었다. 아니다. 죽고 싶은 건 아니었다. 정확히는 그만 살고 싶었다. 죽고 싶은 게 그만 살고 싶은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 나도 그 차이를 뭐라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어쨌든 그 무렵의 나는 사는 걸 그만두고 싶었다. 이게 게임이라면 종료 버튼을 누르고 나오고 싶었다. 공허함. 그냥 나는 껍데기만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이 잿빛으로 보였다. 취업은 제대로 풀리지도 않고, 취업이 안 돼 외갓집에 신세 지고 있는 것도 싫고.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너무 괴로웠다. 깜깜한 터널에 들어왔는데, 끝이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을 맛이 간 듯 아닌 듯 흔들리는 상태로 어영부영 버텼다. 그리고, 정말 운 좋게도, 감사하게도, 취업이 됐다. 작은 원룸으로 독립을 했고, 큰 벌이는 아니지만 내가 번 돈으로 나를 위해 쓰고 있다. 그렇게 서서히 일상이, 내 마음이,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죽는 방법은 열심히 궁리했던 거 같은데. 근데 난 왜 죽지 않았을까. 왜겠어, 죽는 게 두려워서지. 그치만 이게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나를 자주 붙잡아 준 어느 생각이 있었다. 엄마. 엄마가 어떻게 나를 키웠는데. 인생의 절반은 그저 나를 위해서만 썼던 엄마. 내가 본 엄마의 생에 엄마를 위한 시간은 정말 단 한순간도 없었다. 그저 내가 밖에서 훨훨 날기를 바랐다. 내가 죽으면, 나를 위해서만 살아온 엄마 인생의 절반을 날려버리는 거잖아. 엄마의 삶이 헛되지 않도록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내야 한다,라고.

 요즘 나는 종종 체감한다. '행복하다'라고. 엄마를 보내고 한동안은 느낄 수 없던 감정. '즐겁다', '재미있네'라고 생각할 때는 있었지만 행복하진 않았다. 엄마랑 있었을 땐 둘이서 맑은 하늘만 봐도 참 행복했는데. 이름도 모르는 들꽃만 봐도 행복했는데. 산책하다 벌레가 몸에 붙었을까 서로 털어주면서도 행복했는데. 그 잃어버렸던 행복의 감각이 돌아왔다. 엄마, 엄마 말이 맞았어. 산 사람은 그래도 살아지더라. 그치만 말야 엄마. 나는 그래도 여전히 엄마를 생각해. 언제나 그리워해. 텅 빈 것 같은 기분이 밀려오는 게 싫어서 눈 돌리며 살고 있어. 힘껏 살아내고 있어.




 대체로 즐겁고, 자주 웃고, 가끔은 행복하고, 그렇지만 실은 공허하며 외롭고, 그럼에도 다시 대체로 즐겁고 자주 웃고 종종 행복하다. 그렇게 살고 있다. 그냥,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그냥저냥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약간의 위안이 된다면 좋겠다는 바람 섞인 마음으로.


 암 카페에서 읽었던 그 글을 쓴 따님 분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분도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고 있겠지. 나처럼. 그러기를 바란다, 마음 깊이 진심을 다해 응원과 용기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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