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를 붙잡고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냐 묻는다면 대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연애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애틋하게 여긴다는 건 마음의 영역이고 느낌의 영역이며 감각의 영역이기에 그걸 어떠한 형식으로 정의 내린다는 게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묻는다면 고민 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 사람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되는 것”.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내어놓거나 혹은 손해를 좀 보더라도 기꺼이 그것을 감수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사랑하는 이가 행복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국에는 나의 기쁨과 행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나는 효도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자신의 기쁨과 행복으로 이어지니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엄마가 기쁘면 나도 기뻤다. 엄마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했다.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엄마의 행복이 나의 행복으로 연결된 게 내가 엄마를 사랑했기 때문이란 걸 나는 엄마를 잃고 나서야 새삼스레 알게 됐다. 이 깨달음은 엄마에 대해 가졌던 감정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감정 사이의 극명한 차이를 통해서 왔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나면 나는 당연히 기쁜 마음으로 축하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것이 내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정말 너무나 잘됐다고 진심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이 나의 행복이 되진 못했다.
엄마가 정말 자주 했던 말이 있다. “엄마는 너 없으면 못 살아.”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엄마의 삶의 이유이자 행복의 근원이 나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만약 아프다면, 나한테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면, 혹시 죽는다면, 엄마가 얼마나 슬퍼할까. 그 생각만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죽거나 아프거나 하면 안 돼. 나의 슬픔은 엄마의 슬픔. 엄마의 슬픔은 나의 슬픔. 내 슬픔으로 슬퍼하는 엄마의 슬픔은 나의 슬픔. 내 행복이 엄마의 행복. 내 행복을 보는 엄마의 행복을 보는 것이 결국 나의 행복. 서로의 행복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의 슬픔 또한 상호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내 행복한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럼 엄마가 행복해질 테니까. 엄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행복해지니까.
나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중 엄마를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가장 사랑한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유일하게 사랑한 사람이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정말 좋아하고 늘 고마운 사람들이 있고 나는 그들이 참 소중하다. 하지만 그들을 좋아라 하고 소중히 여기는 감정과 엄마를 사랑했던 감정은 별개의 종류였다. 감정의 농도나 양이 달랐던 게 아니라, 아예 다른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공허함이 나를 덮쳤다. 마음에 아주 큰 구멍이 생겼고 그 구멍은 앞으로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거란 걸 직감했다. 그렇게나 애틋하게 사랑했던 단 한 명의 사람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그로 인해 나의 삶이 무미건조해졌으며 사는 의미도 먼지처럼 공중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날, 어떤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엄마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 사랑하는 이의 행복이 내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게 내가 결론 내린 사랑의 근거라면 더 이상 엄마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나는, 엄마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질 일 없는 나는 이제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나는 지금 엄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나? 내가 지금 엄마에 대해 품고 있는 감정은 뭘까.
엄마가 그립다. 하지만 그립다 라는 것이 사랑한다 라는 말의 동의어, 아니 하다못해 유의어가 될 수 있을까. 그립다 라는 건 사랑한다 에 포함되는 개념인 것 같긴 하지만, 그립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그리움은 대상이 곁에 없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고, 엄마를 잃은 내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사랑이란 건 대상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대상이 존재하질 않는데 사랑하고 있기는 한 걸까. 엄마에 대한 내 마음은 전부 과거형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사랑했었다. 정말 많이 사랑했었다. 정말 많이 사랑했다는 말로는 그 마음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사랑했었다. 그런데 그 감정이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엄마를 향해 끝도 없이 넘쳐흘렀던 그 따뜻하기 그지없던 마음 같은 건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난 순간 같이 죽어버렸다. 그런 건 한때 있었던 추억 속의 감정이 됐다. 그렇다면, 대상 없이 흔적만 남아버린 이 감정에는 뭐라 이름을 붙여야 할까.
이런 소릴 하고 앉아 있다니, 진짜 괘씸하기 짝이 없는 딸이다. 여기 살아 있는 내가 엄마를 사랑하고 있는 건가 물음표를 던지고 있는 이 순간에도, 더 이상 여기 없는 엄마의 사랑은 지금도 나를 지키고 있는데. 설령 이곳에, 아니 어디에도 없는 존재가 돼버렸어도 엄마의 그 사랑은 영원히 나를 향하고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나는 뭘 하고 있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