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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살아남기

1. 이야기의 시작이자 요약

by 민토리


원래부터 영국에 올 계획 따윈 없었다. 내 가족들은 흔한 제주도도 안 가본 사람들이었고, 나는 여행을 좋아하긴 하지만 '여자가 혼자서 어딜!' 하는 다소 가부장적이고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집안 환경 때문에 몰래몰래 도서관 간다는 핑계를 대고 새벽에 나가 당일치기로 혼자 싸돌아 다니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여자가 별로 없는 공대에서 교직이수까지 하며 학과 차석, 수석을 차지하긴 했지만, 한국에서 지방 국립대 출신의 여자 공대생에게 열린 길은 별로 없었고, 그러다 대학교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개인적인 일이 생겨서 몇 달 술에 절어 살다가 이대로면 알코올 중독으로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어디로든 떠나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어찌 인연이 되어 오게 된 게 영국이다. 그리고 그게 벌써 2002년의 이야기.


생전 처음 타본 비행기, 그리고 처음 도착한 히드로 공항에서 마주친 입국 검사대의 첫 영국인은 내 첫 '영국인과 대화하기'의 시도를 무색하게 깨고 그냥 손짓 하나로 날 다수의 유색인종들이 몰려있는 줄에 넣어버렸다. 거기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리다가 내가 처음 들은 말은 상의를 벗고 엑스레이를 찍으라는 것 (요즘은 이게 없는데 그때는 보안용이 아니라 진짜 '결핵'을 체크하기 위해 병원에서 하는 것과 같이 엑스레이를 찍었다;;). 그렇게 나와 한산해진 공항에 다행스럽게도 남아있던 픽업 기사 아저씨.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체 두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브라이튼이란 도시의 작고 낯선 집, 강한 억양의 집주인 할머니. 그게 내 영국 생활의 첫 시작이었다. 그렇게 '어학연수'라는 명목으로 대략 10개월가량 지내면서 이사를 세 번 했고, 아주 많이 걸었고, 펍에서 알바를 했고, 혼자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파리까지 다녀왔고, 1개월 동안 유럽 8개국을 여행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외로웠고, 햇빛이 그리웠고, 방은 늘 추웠고, 1파운드를 아끼느라 밥을 자주 굶어 위궤양을 얻었고, 단것 중독에 걸려 8킬로가 쪘으며, 아주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형태의 집적거림과 무시, 차별을 받기도 했다.


반복된 것만 배우던 어학원 생활이 지겨워 뭐라도 목적을 가지자 하는 마음에 중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ILETS 시험 준비반에 들어갔고, 이왕 공부하는 거 시험도 쳐보자 하는 마음에 했는데, 첫 번째 시험에서 5.5를 받고 나니 오기가 생겨 다시 공부해 7점을 받고 나니 그럼 웬만한 영국 대학원은 다 진학 가능하단 말에 생각만 하고 일단 한국에 돌아갔다. 복학을 하고 나니 졸업반 수석인데도 내게 돌아오는 취업 추천서나 원서 따윈 없었고, 집에서는 그럼 교사나 해라 하는 반응이고, 그래서 아예 전공을 바꿔서 영국 대학 입학 조건들을 찾아본 다음에 혼자 서류를 준비해서 딱 세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 이왕 유학 나올 거 좋은 데 가고, 안되면 때려치우자, 뭐 그런 마음으로.... 그런데 처음으로 합격 연락이 온 곳이 케임브리지 대학이었다. 그 소식에 아버지는 아무 감흥 없이, “어, 뭐 왔나” 한마디 하셨다.

가지 말라고 하신 건 아니니 그럼 가라는 소리인가 보다 하고 마지막 준비를 다했고, 그렇게 2004년 9월에 다시 영국에 도착했다. 최대 2년이면 올게요, 했던 나는 이듬해 박사 과정을 시작했고 박사를 마치고 컨설팅 회사에 취업했다가 다시 연구/강의직으로 다른 대학으로 이직했고, 현재 남편과 결혼을 했고, 육아 휴직을 했고, 다른 대학으로 정규 교수로 다시 취업해 3년을 다닌 뒤, 작년 영국 중앙 정부 기관에 공무원으로 이직했다. 그동안 이사를 11번 했고, 하나였던 아이는 둘이 되었고, 그 작던 아기들도 이제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니, 지금은 풀타임 워킹맘에, 학부모에, 영국 공무원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나 오래 살았으니 이제 영국 사람 다 되었겠네,라고 말한다면 그건 아니다. 남편도 영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각자의 국민성이 희석되었지만 그렇다고 영국인도 아닌 모호한 경계에 위치한 체 살고 있고... 그럼 이제 완전 현지인 같겠네,라고 한다면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여전히 나는 내 생김새만으로도 종종 이방인 취급을 받고, 드문드문 어이없는 차별을 받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서 둥글둥글 해졌다기보다는 도리어 선이 확실하게 잡힌 여러 면을 가진 입체도형이 된 것 같고, 오랜 영국 생활 동안 얻게 된 좌우명 같은 게 있느냐고 묻는다면... "If you make my life hard, I will make your life harder" (네가 내 일생 고달프게 하면, 난 네 일생을 더 고달프게 해 줄 거야) 이런 좀 살벌한 생각 정도랄까... 하하하...


앞으로 내가 쓸 이야기는 그런 것들이다. 그냥 그렇게 영국이란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남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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