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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Mar 17. 2024

10살짜리가 자긴 스킨케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말에 둘째 아이의 친구가 Sleepover (하루 잠자고 가는 것)를 하기 위해 집으로 놀러 왔다.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간식까지 먹이고, 그럼 영화를 틀어줄까, 뭘 할래, 하고 묻는데, 둘째의 친구가 말했다.

"Later I need sometime to do my skincare" (나중에 피부관리할 시간이 필요해요)


9살/10살짜리가 무슨 스킨케어를 하겠다고 그렇게 거창하게 말하는지 의아했지만, 그래, 나중에 하려무나, 하고는 넘어갔다.


대략 2시간짜리의 영화가 끝나고 이제 잘 준비를 하라며 위층으로 올려 보냈는데, 이만 닦고 나올 줄 알았던 두 여자아이는 욕실 안으로 들어가서 뭐라 뭐라 떠들면서는 10분이 넘어가도록 나오지를 않는 거다.


얘들아, 괜찮니? 하고 밖에서 조심스레 물으니, 둘째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She's still doing her skincare"

하더니 다시 사라진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자기들끼리 키득키득거리며 웃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고, 둘째의 친구가 그건 이거 다음에 바르는 거다, 뭐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이 모이면 같이 누워서 이야기나 하고 놀 줄 알았는데, 의외의 모습이다 싶었다. 여자아이들이 모여서 같이 화장도 하고, 쇼핑도 하는 게 자연스럽다긴 하지만 그래도 좀 이른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다. 아직도 아이들은 욕실 안에서 나오질 않았다. 다시 괜찮냐고 묻자 이번에는 문을 열어준다.


온갖 화장품들이 늘어선 욕실 안에 기다란 머리카락을 잡고서 낑낑거리는 두 아이가 보였다.

도대체 이 밤중에 머릴 가지고 뭘 하는 건가 싶어 괜찮냐고, 도움이라도 필요한 거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밤에 자기 전에 양 머리 (캐릭터 뿌 모 양처럼 양갈래의 머리를 번으로 돌돌 말아 올리는 것)를 해야 되는데 못하겠다고. 도대체 왜 밤에 자기 전에 양머리를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아예 욕실에서 잠을 잘 기세라서 도와줬다.


양갈래로 돌돌 머리를 말아주고 나자, 둘째의 친구는 빗으로 꼼꼼하게 앞머리까지 정리한 뒤 마침내 방으로 들어갔다.


잘 자라고 인사를 한 뒤 내 방으로 올라왔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참 신기하다 싶은 거다.


11살짜리 딸이 있는 친구는 최근에 딸의 장래 희망이 'Beautician' (미용사?)가 되었다고 했다. 매일 폰으로 보는 게 유투버들의 뷰티 채널이다 보니 그쪽으로 관심이 부쩍 생겼다고.


친구의 딸 학교 가방에는 딱 3가지가 들어간다고 했다. 물병, 껌, 그리고 화장품 파우치. 학교에서는 화장이 금지된 거 아니냐고 물으니, 금지라고 해도 색조 화장 정도만 안 할 뿐이지 다들 파우더에 마스카라, 립글로스는 하고 다닌단다.


그뿐이랴, 10살짜리 딸이 있는 친구는 요즘 딸 얼굴에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는데 아이가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해서 영국에서는 흔하지도 않은 Beauty therapy를 찾아 거금을 들여가며 관리를 받고 있다고 했다.


친구네 가족들과 일 년에 몇 번씩 모여 같이 여행을 하거나 서로의 집에서 자고 가는 일들이 있는데, 대략 작년쯤부터 10살/11살이 되기 시작한 여자 아이들이 화장품 파우치를 가지고 와서 클렌징이며 마사지팩을 나누는 모습이 신기하고 귀엽기도 했다.


아기들이 소꿉놀이 하는 걸 보는 게 귀여운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점점 갈수록 이게 소꿉놀이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아이들은 진심으로 저런 스킨케어 제품들이나 메이크업이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오죽했으면 BBC에서 점차 늘어가는 어린아이들의 스킨케어가 위험하다,라는 기사까지 냈겠는가. (https://www.bbc.co.uk/news/health-67993618 - Growing skincare use by children is dangerous, say dermatologists) 그 기사에 인터뷰한 아이는 고작 8살이었고, 자신만의 화장품 냉장고마저 가지고 있었다.


기사의 요점은 어떤 스킨케어의 성분은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라는 것이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어리게는 8살 때부터 많은 여자아이들이 스킨케어를 쓰고 있고, 그 종류 또한 5가지가 넘을 정도라는 거다.


이런 트렌드 뒤에는 틱톡과 유튜브를 포함한 여러 Social influencer들이 존재한다.

'Oh my God!'으로 말을 시작하는 유튜버가 호들갑을 떨면서 알록달록 예쁘게 포장된 화장품의 성능과 효과를 설명하고, 비슷한 영상들이 십 대 아이들이 자주 보는 채널에 몇 번이고 유입되어 되풀이된다.


예전에는 고작해야 어떤 게임, 티브이 프로그램으로 비롯된 캐릭터 상품 정도가 유행을 탔는데, 이제는 아주 노골적이고 수익을 노리는 마케팅 수준의 특정 상품으로 아이들 사이의 유행이 바뀐다.


특정 상품이 아니라 아예 아이들의 행동 패턴을 바꾸기도 한다.

11살짜리 딸을 둔 친구가 방과 후가 되면 여자아이들이 Poundland처럼 저가의 잡다한 물품을 파는 슈퍼마켓으로 우르르 몰려가 1파운드짜리 마사지팩이나 싼 메이크업 제품들을 산다고 했던 것처럼.  


예전에는 고작해야 엄마의 화장품을 훔쳐 바르는 해프닝 정도로 그쳤던 일들이 이제는 아예 새로운 성장 과정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모양이다.


아직 또래보다는 작고 어린 티가 남아 있는 내 둘째 아이는 그런 친구의 모습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며 웃었지만, 아이는 요즘 들어 부쩍 자신의 피부색이 어둡니, 자기 볼살이 좀 많은 것 같다느니 그런 소릴 한다.

그럴 때마다 심장이 철렁한다.


내 정원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나무에게, 내가 초대하지도 않은 정원 전문가니 뭐니 하는 인간들이 찾아와 나도 모르는 새 내 나무에게 이파리가 조금 시들었니 어쩌니 품평을 쏟아낸 것만 같아서.

그 결과로 내 아이가 스스로의 눈이 아니라 남의 눈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게 될까 봐.


아무리 너는 예쁘고 귀하다,라고 해도 내가 자기 엄마라는 이유로 한 귀로 흘려듣고 말 아이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아찔하긴 하다.


아직 한 3-4년은 더 있어도 될 줄 알았는데, 아이 키우기가 갈수록 만만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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