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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Mar 11. 2024

당연해지기 싫었다

3월 10일 일요일은 영국의 어머니 날 (Mother’s day)였다.


영국은 어머니 날 (Mother’s day)과 아버지 날 (Father’s day)이 나눠져 있는데, 아버지 날은 매해 6월 세 번째 일요일로 정해져 있는 반면 어머니 날은 부활절 3주일 전 일요일이라서 매해 날짜가 바뀐다 (그래도 보통 3월 초에 있는 편이다).


영국의 연중행사는 대충 슈퍼마켓에서 주종을 차지하는 품목들만 해도 짐작할 수 있는데, 1월에는 2월에 있을 발렌타인즈 데이 준비, 2월에는 3월에 있는 어머니 날을 대상으로 한 각종 여성 선물 용품들과 꽃, 초콜릿 등, 동시에 3월 말/4월 초에 있는 부활절 준비를 위한 각종 달걀, 토끼, 닭 같은 종류의 장식품과 음식들, 그 후에는 6월에 있는 아버지 날과 7/8월 여름휴가 용품, 그다음에는 9월 새 학기 준비, 10월 Halloween, 11월 불꽃놀이 (Guy Fawkes Night), 12월 크리스마스 식이다.


이렇게 떠들어 대는데도 작년에는 어머니 날인 것도 모르고 있다가 점심때쯤 되어서 친구들이 “Happy Mother’s Day!”하고 단톡방에 올려서야 알았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오늘이 어머니 날이라는데 알았어? 하고 묻자, 다들 “Really?”하고는 자기들도 몰랐다는 표정을 짓는 거다.

그때는 어이없기도 했지만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넘어갔는데..

그날 오후 예정 되어 있던 다른 친구의 집에 방문했을 때부터 기분이 묘해지기 시작했다.


주방은 물론 거실에 까지 장식되어 있던 다양한 꽃다발과 카드들.

어머니 날인데 우리가 와서 방해한 거 아니냐, 하고 물으니 이미 다른 지방에 사는 자식들은 어제 들려서 같이 파티를 하고 갔다고, 괜찮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우리 부부와 10살 이상 차이나는 이 친구 부부는 재혼 커플이기 때문에 자식들이 예전 파트너와도 있고, 지금 파트너와도 있었는데, 가장 막내는 대학생인데 잠시 외출 갔다가 조금 있으면 돌아온다고 했다.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한참 대화하는 도중 그 집의 막내가 돌아왔다. 역시 손에는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서.

친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들, 어제 나한테 선물도 주고 카드도 줬는데 또 뭘 이렇게 가지고 왔어?’하고 핀잔 아닌 핀잔을 줬고, 아들은 ’그래도 오늘이 진짜 어머니 날이니까요 ‘라는 훈훈한 대답을 하며 자신의 엄마를 안아줬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오는 길.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다 못해 저녁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속상하고 야속했다.


이전까지는 학교에서 알아서 어머니 날, 아버지 날, 무슨 날마다 꼬박꼬박 아이들과 함께 뭘 만들어서 집으로 보내주니 아이들이 챙기기라도 했지, 학교에서 그런 거 안 했다고 금세 이렇게 까마득하게 잊어버릴 줄이야.

날짜 관련해서는 기념일도 제대로 기억 못 하는 남편에게도 야속해졌다. 아이들에게 언질이라도 미리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다가 울어버린 나를 보고 남편과 아이들은 당황해하며 나를 달래고, 미안하다고 했지만, 의외로 그 일의 여파는 꽤 오래갔다.




솔직히 나는 챙김을 받는데 익숙한 사람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뭘 요구했다가 핀잔받거나, 거절당하거나 야단맞는 게 더 익숙했기 때문에 도리어 기대를 억누르는 것에 익숙하다.


오빠와 생일이 고작 보름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도, 오빠는 음력 양력 생일을 다 챙겨 받고, 친구들 초대해 생일파티까지 하면서도 내 생일은 그냥 넘어가거나, 내가 싫어하는 콩밥으로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한 번은 나도 오빠 생일 때처럼 이단 케이크까지는 아니더라도 초콜릿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했다. 생일 당일에도 케이크가 없어서 정말 용기 내서 말했는데, 결국 내 앞에 나타난 건 가장 작은 흰색 아이싱 케이크였다. 아이싱 케이크를 싫어했던 나는 초콜릿 케이크가 먹고 싶었다고 소심하게 투정을 부렸는데, 사줘도 지랄을 한다며 결국 욕만 잔뜩 들어 먹었다.


또 한 번은 오빠 생일 선물을 사는 길에 나한테도 웬일인지 뭐 갖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서, 남들 다 가지고 있다는 바비 인형을 말했다가 어떻게 됐더라.

바비 인형이 오긴 했다. 문구점에서 파는 정식 바비인형은 아니었고, 보기에도 뭔가 비율이 어설퍼 보이는 바비 인형이긴 했는데..

집안 생각 안 하고 이딴 거나 사달라고 한다고, 온갖 욕과 함께 인형이 바닥에 던져졌다.


그 외에는 가끔 내 생일을 잊고 지나가기도 했다. 그냥 나만 속으로 조용히 날짜를 세어보다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가면 섭섭하다는 마음보다 차라리 다행이다,라고 생각했고, 혹시 내 생일을 기억하면 더 숨을 죽였다. 축하는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오늘만은 야단맞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고 싶다고 빌면서.


그러다 보니 나는 한국을 나와서도 꽤 오랫동안 생일이 찾아오면 혼자 숨을 죽였다. 어쩌다 내 생일이 알려져서 친구들이 파티를 해준다고 하면 어색하게 웃으며 넘어갔고, 그나마 생일이 비슷한 친구들과 합동 파티를 열면 마지못해 참석했다. 누군가 내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Thank you’라는 말과 함께 입꼬리를 올리는 게 힘이 부쳤고, 파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면 몸살이라도 날 것처럼 온몸이 처지고 무거웠다.


그러다 26살의 생일. 나는 처음으로 내게 생일 선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거창한 것도 아니었고, 세일 중이던 35파운드짜리 가방이었지만 내게 첫 선물을 해주던 그때의 기분이 생생하다.

그 후 그 가방을 매일같이 들고 다니며 나는 내내 다짐했었다.

굳이 누군가에게 생일을 축하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누군가가 나를 축하해주지 않아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나는 이제 내게 스스로 축하를 건넬 수 있다고.


아직도 나는 내 생일이 되면 살짝 우울해지지만, 그보다 내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며 온전히 나를 위해 보낼 계획을 짜느라 설레기도 한다.


그렇게 한 단계 진화를 이루어냈는데..

어머니 날이 되었을 때 나는 그때의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떠올린 거다.

예전 가족들이야 내가 선택할 수도 없었다지만, 지금 내가 일궈낸 가족은 다르지 않은가.

내가 낳아 키운 아이들, 내가 선택한 남편.

어떻게 이들마저 나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는가, 뭐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잠식해 들어왔었다.


나는 내 가족들에게 챙기지 않아도 괜찮은, 그래도 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엄마니까’ 이해하고, 희생하고, 괜찮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들과 가족들을 우선해서 더 좋은 걸 먹이고, 입히고, 양보하고 했더니 나중에 자식들이 커서는 ‘우리 엄마는 이런 비싼 거 안 좋아해’라고 했다는 씁쓸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아이들이 내년에도 그 후에도 ‘우리 엄마는 어머니 날 안 챙겨도 괜찮아’라는 소릴 하지 않길 바랐다.

나는 챙기지 않아도 괜찮고, 그런 무관심도 당연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작년에 나는 아이들과 남편을 앉혀놓고 진지한 대화를 했었다.

그들이 잊은 걸 탓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속상하고 서운했다고.

그들에게 거창한 걸 바라는 건 아니지만, 나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고. 내게 ‘Happy Mother’s day’라고 말해주길 원한다고.


그리고 올해.

아이들은 아침부터 소란을 떨며 내 아침을 준비하고, 손수 만든 카드를 건네고, 초콜릿과 선물마저 챙겼다.

아이들은 내가 자신들이 준비한 걸 마음에 들어 하는지에 대해 더 궁금해했지만, 나는 아이들이 아침에 나를 보고 인사를 건네며 안아줬을 때 이미 행복했다고 말했다.


(덧)

한국을 나오기 전에는 몰랐는데, 영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을 따로 챙긴다는 걸 알았다. 유례를 보면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어머니 날은 부활절 전 사순절 (Lent) 전에 있는 행사와, 아버지 날은 천주교의 Saint Joseph 날에게 비롯되었다고 한다.

종교에서 비롯된 게 이젠 상업화된 민간 행사로 굳어진 거니 뭐라 할 수 없지만, 매해 차라리 한국처럼 어버이날로 묶기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 편모/편부 가정이든, 조부만 있는 가정이든 그런 결핍을 느끼지 않고 묻어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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