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코너리를 추모하며 (2020년 10월 31일)
숀 코너리를 이야기하면, 많은 분들이 <007>의 제임스 본드를 가장 먼저 떠올리실 것 같다. 그런데 나에게 그는 <인디아나 존스 3편 : 최후의 십자군> 속 인디아나 존스의 아버지, '헨리 존스 시니어'로 기억되어 있다.
"숀 코너리가 연기하면 숀 코너리가 그 배역이 되는 게 아니라 그 배역이 숀 코너리가 된다"는 말도 있듯이, 내게도 숀 코너리는 헨리 존스 시니어 그 자체였다. (물론 <장미의 이름>의 주인공 윌리엄도 그냥 숀 코너리의 모습으로 내 머릿속에는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 가운데 내가 가장 감정이입(?)을 많이 하는 캐릭터인 만큼, 숀 코너리는 내게도 언제나 '아버지' 같은 느낌으로 남아 있었다.
숀 코너리와 해리슨 포드가 함께 출연한 <인디아나 존스 3편>에는 내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인데, 그 장면은 숀 코너리를 떠올리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그대로 재생된다. (의외로 이 장면에서 해리슨 포드는 잘 안 떠오른다.) 이런 장면이다.
여차여차해서 인디아나 존스는 '성배'를 찾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성배가 모셔지던 사원 속에서 누군가가 규약 같은 것을 어겼고, 결국 지진이 일어나 사원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성배 역시도 갈라지는 땅 틈 사이로 굴러 떨어졌다. 영화의 히로인이자 악역이었던 엘사 슈나이더는 그 성배를 잡으려다가 떨어져 결국 땅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인디아나 존스 역시도 (아마도 학자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떨어진 성배를 주으려고 한다. 갈라지는 땅 사이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 인디의 팔을 아버지인 헨리 존스가 잡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2세야, 다른 한 팔도 나한테 내밀어라. 더 이상 잡고 있기가 힘들다.
Junior, give me your other hand! I can’t hold on."
여기에 인디가 대답한다.
"아버지, (성배를) 거의 다 잡았어요.
I can almost reach it, Dad."
이렇게 대화를 나누며 인디는 계속해서 집착하며 성배 쪽으로 손을 내밀고, 헨리의 팔 힘은 자꾸만 떨어져 간다. 그때 헨리 존스가 나긋한 목소리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Indiana, Indiana, let it go.
인디아나, 인디아나, 그냥 놔두렴.”
[영화사 속에서 'Let it go'는 이쪽이 원조다!]
드디어 헨리가 아들을 '인디아나'라고 부른 것이다.
인디아나 존스의 본명은 아버지와 같은 '헨리 존스 2세'였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썩 사이가 좋지 않았을뿐더러(뛰어난 중세사학자였던 아버지는 아들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교육시켰다), 아버지의 그림자 속에 머무는 듯한 느낌이 나는 것이 싫었던 인디는, 자기가 키우던 강아지 이름을 따서 자기 이름을 '인디아나'로 바꿨다. 그렇지만 아버지 헨리는 아들의 '독립'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영화 속에서 단 한 번도 아들을 '인디아나'라고 불러주지 않고, 계속해서 '2세 Junior'라고 부른다. 그럴 때마다 인디는 어쩐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린다. 그런데, 결국 가장 위기의 순간에 드디어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이 그토록 원했던 '인디아나'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아들을 인정한 것이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물론이고 그 후로도 여러 차례, 그리고 요즘에도 가끔 이 장면을 볼 때면 눈물이 글썽여질 정도로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그 장면은 언제나 숀 코너리의 얼굴과 함께 내 머릿속에 각인이 된다.
지난 10월 31일 숀 코너리가 세상을 떠났다. 2008년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4편: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는 아쉽게도 출연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2022년 개봉을 목표로 현재 제작 중인 <인디아나 존스 5편>에는 어쩌면 잠깐이라도 출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다. 물론 해리슨 포드도 칠순이 넘은 마당에 은퇴까지 선언한 90세의 숀 코너리가 출연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할 것이라고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이라는 '비합리적인' 마음으로 내심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별세가 더 아쉽다.
내세를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숀 코너리 경께서 평안한 안식을 취하시기를 빈다. Requiescat In P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