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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Nov 07. 2021

Truthiness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

몇 해전 지병으로 오래 누워계시던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언제 샀는지 모를 만큼 낡은 손가방을 들고 쭈글거리는 구두를 신고 구부정한 등을 한 백발의 노인이 들어섰다. 한눈에 보아도 알아볼 그 노인은 외할머니의 셋째 동생, 그러니까 내게는 외삼촌 할아버지였다. 치매인 외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한참인가 무언가를 말하던 외삼촌 할아버지.


한때는 사업가로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줄기세포니 생명공학이니 지금은 거의 사기꾼으로 매장되어버린 이의 이름 석자를 주문처럼 읊고 다니기 시작했고 잘하던 사업도 접었다. 눈에 핏대를 세우며 그 이름을 부정하는 집안의 어른들과 설전을 벌였다. 어린 내 눈에도 그 맹목적인 믿음은 너무나 강력했고 승자가 없던 설전의 끝에는 외삼촌 할아버지가 늘 외롭게 남아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결국 재산과 가족을 잃게 되었어도 돈 많고 명망 있는 이들 중 모르는 이가 없었고 돈 되고 이름난 것들 중 모르는 법이 없었던 그분은 집안의 행사나 모임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누구도 그 분과 말을 섞고 싶어 하지 안 않고 점점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어쩌다가 한 테이블에 앉게 된 그 분과 나와 내 동생은 그렇게 한 끼니를 때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세월이 많이 지난 탓인지 우리 남매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어린 우리 남매를 그렇게 예뻐하시고 용돈도 두둑이 주셨던 분이셨기에 기꺼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했다. 아이들의 엄마가 된 나, 얼굴이 까칠한 내 동생의 근황을 물어오셨고 동생은 허허 웃으며 대강대강 응수했다.


내 동생. 나보다 세 살이 어린 내 동생. 어렸을 때부터 나와는 다르게 진득한 면이 있어 공부도 곧잘 했다. 똑똑했고 냉철하며 부지런했고 성실했다. 용돈을 받으면 나는 다 써버리기 일쑤였고 동생은 그걸 차곡차곡 모았다. 군대에서 제대를 할 때는 월급을 고스란히 모아 왔고 취직해서는 깨알 같은 투자를 해서 자산을 쌓기도 했다.


토익 만점을 받고 이름만 들어도 알 대학에 들어가고 이름만 들어도 알 회사에 들어갔던 내 동생은 취미로 내기 당구를 하더니 언제부턴가 도박에 빠졌고 차곡차곡 불려 온 재산을 전부 탕진했다. 살던 집도 날리고 다니던 회사도 그만둔 채 그렇게, 빚더미에 앉은 도박쟁이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근황을 묻는 어르신에게 이리저리 대답을 돌리는 동생. 외삼촌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내가 관상을 보는데, 너는 마흔이 넘어서 아주 큰 부자가 될 거야. 지금은 힘들 수 있어. 그런데 마흔이 넘어서는 잘 돼.

아주 큰 부자가 될 거야. 돈 많이 벌고 훌륭한 사람 될 거야."


장례식에 집중을 못할 만큼 빚 독촉을 받아 불안과 고단함에 얼굴이 까칠한 동생은 그 말을 듣고 희미하게 다시 허허 웃어 보였다.


오래전에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던 이의 이름을 핏대 세우며 부르시던 외삼촌 할아버지는 그때의 눈을 하고서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동생의 처지를 아는 나도 왠지 목구멍에서 쓴 맛이 느껴져 쓴웃음을 짓고야 말았다.        


그렇게 그날 그 어르신과 헤어진 후에도 동생은 별다를 것 없는 고단한 삶을 산다. 언젠가 연락도 없이 우리 집에 들렀던 어느 저녁, 삼촌이 왔다고 신이 나서 재잘거리는 조카들을 보며 미소를 짓던 동생의 얼굴을 보며 외삼촌 할아버지의 척척한 눈이 기억났다. 그저 오랜만에 보는 조카 손주들에게 쥐어짠 공염불이었는지, 그분이 보신 동생의 미래가 진실로 그리도 빛나는 것이었는지 알 길은 아무래도 없다. 다만 나 또한 지독히도 믿고 싶어졌다. 그렇게 믿다 보면 정말로 그런 날이 오려는지 하릴없이 무작정 믿고 되씹어보고 싶어졌다.


동생아, 너는 괜찮아질 것이다. 지금은 힘들 수 있어. 하지만 꼭 나아질 것이다. 너는 반짝일 것이다.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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