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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솔아 Apr 09. 2020

힘들 때 왜 미신에 의지할까?

사주나 타로, MBTI를 바라보다


얼마 전 사주를 봤다. 올해 초부터 되는 일이 없는 것 같고, 기분이 안 좋을 때가 많아서 언제 한번 사주를 보고 싶었다.


예전에는 내가 사주나 타로 같이 비과학적인 분야를 좋아한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이성과 논리, 과학을 좀 더 '쳐주는' 사회에서 '미신이나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과 대화할 때 사주나 타로 같은 얘기가 나오면 "재미로 봤었는데~" 혹은 "좋으면 믿고 안 좋으면 안 믿는 거지 뭐~"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내 마음속에서 나 스스로 정한 품위의 기준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요즘은 예전보다 한결 편하게 타로나 사주에 대해서 말을 한다. 내가 사주를 보는 관점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관점을 정리하니 요즘 유행하는 MBTI나 사주나 다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심적으로 힘들 때 사주나 타로를 갑자기 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유독 현실이 힘들거나 잘 안 풀리고 답답하면 사주나 타로 같은 '미신'의 세계로 도피한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사주나 타로가 나를 '대신' 정의해 주기 때문이라고 깨달았다. 내가 살면서 정의해온 자아상이 흔들리고 있을 때 사주나 타로가 정의하는 '나'를 나의 패턴으로 믿어버리면,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스스로의 형태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관점 속에서 사주나 타로 (MBTI, 애니어그램 도 포함)는 나의 일부분을 비춤으로써 나를 설명(정의)한다.

'나를 비춰준다'의 의미는 고차원의'나'를 설명하기 쉽게 저차원의 정보로 사영시킨다는 뜻이다.


사주나 타로, MBTI 등 각종 도구들은 정보의 집합체인 나를 그들만의 공간에 사영시킨다. 그들만의 방식대로 '나'를 저차원의 정보로 만들어 설명한다. 아주 복잡하고 고차원의 존재인 나를 그보다 한참 떨어지는 차원으로 사영시켜버리니 정보의 손실과 왜곡이 생겨 결코 나의 전부를 설명할 수 없다. 다만 나를 비춘 결과이기에 사영된 상에는 나의 일부가 담겨 있긴 하다.



사영된 상은 기존에 내가 그려왔던 나의 형태와 부분 일치되는 게 있기 때문에 나를 정말 잘 설명해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사주나 타로, MBTI에서 나온 결과를 맹신하는 건 좋지 않다. 그 말은 사영된 상으로 얼기설기 얽힌 나를 믿는다는 말이다.


사영된 상으로 이루어진 '나'는 절대 나의 전부를 설명할 수 없기에 난 사주나 타로, MBTI 등등을 '그들의 방식대로 나의 일부분을 설명한 정보'라고 받아들인다.


가끔씩 이 관점을 역으로 써먹기도 한다. '아 너무 힘들어! 사주나 타로 볼까?' 생각하고 순간적으로 나를 재정의 함으로써 오는 만족감으로 불안한 나를 잠재우는 거다.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닌 걸 알지만, 때때로 이 도구들을 통해 얻은 믿음이 '다시 제대로 해보자!' 마음먹는데 도움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나를 설명하는 도구'들을 맹신하지는 말되 단순히 재미 취급하여 버리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그들만의 방식으로 '나'를 정의한 정보를 적절히 활용하여, 각자 자신들의 형태를 구성하는데 도움이 되게 써먹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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