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받아들이는 사람
나이 듦을 무서워하는 감정 인정하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이 든다는 게 좋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너네 나이가 얼마나 좋은 지 아니?’ 혹은 ‘뭐든지 할 수 있는 나이야!’
선생님이 교실 안에 앉아있는 우리들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줄 때마다 나는 오히려 나이에 얽매여갔다. ‘어리기’ 때문에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 처음에야 나의 가능성에 가슴이 뛰었지만 자주 듣다 보니 그 표현의 이면에 더 관심이 쏠렸다. 그럼 더 이상 ‘어리지’ 않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20대가 되고 나면 ‘나이’에 대한 집착을 부추기는 말을 더욱 자주 듣는다. 스무 살을 지나 한 살 한 살 먹어갈 때마다 나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받침이 ㅅ이면 중반이래"
"(25살에 다가가기 시작할 때)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던데~"
"(25살이 넘어가는 시점부터) 우리도 이제 꺾였네"
"(20대 후반)아.. 우리 이제 곧 서른이야"
나이를 먹는 매 순간마다 세밀하게 젊음의 무게를 재고, ‘너는 나이 들고 있어!’를 인지시키는 표현을 듣는다.
나는 이런 표현에 노출될수록 사람이 나이에 얽매이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이 나이를 먹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인만큼 ‘나이 듦을 걱정하고 생소해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사람의 감정이라는 뜻이다. 애초에 사회가 그렇게 느끼도록 흘러가고 있으니.
나이 듦을 걱정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이 감정을 드러내는 데 아직 엄격한 것 같다.
“내가 벌써 00 살인 게 믿기지 않아요”라고 말할 때마다 “아이고 어린 게 무슨 그런 말이야!” 혹은 “야 나는 00+α 살이야! 내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 혹은 “내가 그 나이로 돌아가면 더 열심히 살 텐데!”라는 말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도대체 몇 살이 되어야 “내가 00살이라니!”라는 말을 당당히 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이 말을 하는 상황에 발화자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발화자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꺼낼 수 없는 말이라는 거다.
나는 사람들이 ‘나이 듦을 걱정하는 말’에 대해 발화자의 ‘나이’보다 그 사람의 ‘감정’에 더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 자기 나이를 생소하게 여기는 건 그 사람의 나이가 적고 많음과 상관없이 그 사람의 인지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니.
잘 살다가 문득 “내가 벌써 00살인가?”하고 내 나이가 믿기지 않는 이유는 내가 살아오면서 보고 느꼈던 ‘00살’에 대한 기대상이 막상 그 나이에 도달한 나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에 대한 기대상의 생성과 비교도 온전히 각자의 시간축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사람들은 비교의 생산물인 ‘감정’에 집중하지 않고 단지 시간의 하나 인 ‘00살’에 관심을 둔다. 그리고 본인의 시간대인 ‘00살+α살’에서의 감정 생산물이 더 중하다고 여긴다.
감정은 비교하여 더 중요하다/아니다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이해해줘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 “내가 벌써 00 살인 게 믿기지 않아요.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을 때 타박하거나 제 나이에 대한 감정을 앞세우기보단 공감이 먼저 필요한 일이다.
나는 나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내 나이에 불안해해도 ‘사람이면 당연한 일이지!’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내게 마냥 어른스러워 보이는 사람도 나와 같이 자신의 나이에 생소해하고 걱정하는 ‘사람’이라는 걸 인지하고,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이 “제가 벌써 00 살인 게 믿기지 않아요” 할 때 “맞아, 충분히 그럴 수 있어.” 하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