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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Jan 07. 2021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나는 물고기, 엄마는 미역

패륜 여행기, 호주편EP3





세 번째 패륜 : 엄마 버리고 나 혼자 놀기


이건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패륜의 끝이다. 엄마에게 두고두고 소리 듣고 싶은 자라면 따라 해 보아도 좋을 듯싶다.


레저스포츠 천국, 케언즈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는 BBC가 선정한 죽기 전에 가보아야 할 장소 2위에 선정된 세계 최대 산호초 군락이다. 퀸즐랜드 해안을 따라 무려 2,600km나 뻗어있는 이 방대한 산호초는 우주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스노클링이랑 스쿠버다이빙이 생애 처음이었고, 이거하러 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건 마치 소고기 처음 먹는 사람이 한우 등심 1++오마카세를 먼저 먹는 것과 같은 경우다. 나는 이 곳에서의 스쿠버다이빙 이후로 국내, 해외 어떤 스폿에서 워터 스포츠를 하든 만족하지 못하는 몸이 돼버리고 말았다.




본격적인 호주 여행 첫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한국에서 미리 예약 결제한 리프 매직 크루즈에 승선했다. 선택지가 몇 개 더 있었지만 한국인 크루가 있었고 가장 비싼 투어였기 때문에 선택했다. 우리는 둘 다 스노클링이나 스쿠버다이빙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영어보다는 한국어로 설명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가성비보단 안전과 편의를 선택했다.



정말 큰 배를 탔지만 멀미하는 사람이 많았다. 여기저기서 토를 해댔지만 다행히 엄마와 나는 심하게 멀미를 하지 않았다. 원래 나는 멀미가 아주 심한 사람인데 워터 스포츠를 향한 설렘으로 이겨낸 듯싶다. 그래도 멀미약 한 알도 준비하지 않은 이 안일함. 과연 우리 엄마는 나를 믿고 온 것이 잘한 선택인가.......



서로 다이빙 슈트 입은 모습 보고 비율 똥망이라고 한차례 웃어대다가 물안경을 끼고 입수했다. 초반에는 자꾸 물이 코로 넘어오거나 물을 먹어서 적응 못하다가, 금세 나는 적응해서 물 만난 물고기가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난 뒤, 보게 된 수중 환경은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찬란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 물결 사이로 들어온 빛에 비치는 색색의 무질서한데 어우러지는 산호초들이 내 아래 있고... 그림 같은 물고기들이 내 옆으로 스쳐 지나가고... 유유히 떠다니는 바다거북의 뒤를 쫓아 바다 조금 더 깊은 곳으로 유영하고...


태어나서 느껴보지 못한 고요한 순간. 바닷속에 들어가면 고요한 물결소리, 나의 숨소리만 들려온다. 물속 무중력 속에서의 안락함 그리고 모든 걸 잊는 편안함이 있다.




Tip)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다릅니다. 액티비티 시 동행자가 못하게 될 변수를 항상 대비해야 합니다. 옆에서 계속 케어해 주거나, 함께 할 수 있는 액티비티를 선택합시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물 밖으로 고개를 드니, 엄마가 갑판에서 밥 먹으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올라가서 엄청 흥분된 말투로 너무너무 재밌고 너무너무 좋았다고 엄마는 어땠어?라고 다가가서  물으니


아뿔싸 엄마가 화난 얼굴이었다.  


알고 보니 엄마는 물에 들어간 이후, 물안경 사이로 계속 물이 들어오고 물을 먹어서 즐기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딸한테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더니 몇 번 알려주더니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고. 딸이랑 같이 놀고 싶었는데 어디 갔는지 몰라서 걱정도 되고 스노클링도 제뜻대로 안되니 짜증이 나서 물에서 나를 계속 찾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내가 너무 늦게 나와서 점심밥으로 제공된 뷔페 음식이 많이 고갈돼있었다.


나는 물놀이를 해서 남은 거라도 맛있게 먹었는데, 엄마는 다 식은 음식 거의 먹지도 못하셨다.



엄마한테 사과하고 이다음부터는 엄마랑 계속 같이 다니겠다고 약속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체험 스쿠버다이빙에 도전했다. 분명 한국인 크루즈가 있다고 해서 체험을 신청했었는데, 중국인 스태프한테 영어로 교육을 듣게 돼서 열심히 통역해주었다. 엄마도 다이빙을 해보고 싶었다면서 호기롭게 물에 뛰어들었다. 근데 이십 초도 안돼서 올라가셨다. 이퀄라이징을 못해서 수압 때문에 귀가 너무 아파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나중에 물어보니 더 내려가면 귀가 터져버릴까 봐 겁나서 못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포기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너라도 하라면서 자기는 반잠수함이라도 타고 있겠다고 슬픈 눈과 밝은 목소리로 등을 떠밀어주셨다. 덕분에 나는 황홀 그 자체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해저를 해파리처럼 지유로이 헤엄치고 지금 사진에 나와있는 '월리'라는 마스코트 물고기랑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끝나고 나와서 엄마를 찾으니 잠수함도 안 타고 계셨다. 그래서 마지막 타임에 부랴부랴 함께 잠수함을 같이 타고 해저로 내려가서 "엄마 다이빙하면서 내가 저것도 아까 봤어! 저 물고기랑 사진도 찍었어!" 하니 엄마도 "밑에는 이렇게 생겼구나! 이렇게라도 보니까 좋다" 하셨다.


엄마는 뭍으로 돌아가면서 바다에서 물만 먹고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라면서 내 뒤꽁무니만 쫓아다녔다고 장난스레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 혼자 물속에서 행복한 경험을 하는 동안 엄마는 망망대해 말도 하나 안 통하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무엇을 하셨을까 싶다.




혼자 갖는 즐거움은 퇴색되고 둘이 하는 추억은 미화된다. 둘이 함께 있는 순간도 혼자만 누린다면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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