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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Jan 17. 2021

지구 반대편에서 의절을 외치다

패륜 여행기, 호주편EP5

다섯번 째 패륜 : 주변 외국인 다 쳐다볼정도로 싸우기


그 사건 이후 다음날, 저녁을 먹기 위해 시내로 나왔다.  호주의 케언즈는 뭐랄까 도시라기보다는 휴양을 위한 읍 같은 정도의 사이즈와 편의시설을 갖췄다.


도로 옆으로 나무와 풀들이 나름 계획적이지만 무분별하게 깔려있고 조금만 가면 몇몇 호텔, 작은 시장, 하나의 쇼핑몰, 세네 블록 정도의 번화가 거리가 다인 소박한 액티비티만을 위한 지역 공동체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조금만 나가면 천혜의 자연경관인 배리어리프, 더 나아가면 바다 위에서 스카이다이빙, 더 깊게 들어가면 쿠린다 마을이라고 열대우림도 존재하는 종합과자 선물세트 같은 지역이기도 하지.


마을 분위기도 굉장히 을씨년스러운데, 여러 곳을 여행 가보았지만 이런 느낌을 주는 곳은 처음이다. 해가 지면서 붉고 노랗게 노을이 지기보단, 하늘이 남색으로 그리고 회 보랏빛으로 물감이 섞이듯 어둡게 가라앉는다. 그 하늘 위로는 박쥐 떼가 날아다닌다. 동물원에 갇혀있는 박쥐가 아닌, 말 그대로 야생의 박쥐가 줄지어 새처럼 날아다니고 눈을 조금만 아래로 돌리면 암 청록색 우거진 나무 사이사이 박쥐들이 매달려있다. 바닥에는 박쥐 똥이 가득하다. 흡사 세기말 광경 같달까.......


케언즈 하늘에 보이는 검은 점이 박쥐다



아무튼 이런 광경들에 대해 토로하면서 길을 걷고 걸어 번화가에 있던 피자집 야외 테라스에 앉았다. 피자와 파스타 맥주 1병 에이드 한병 시켜 놓고 바닷바람 맞아가며 오전에 했던 일들은 어땠는지 지금 기분은 어떤지에 대해 사이좋게 도란도란 얘기 나누고 있었다. 분명 그랬는데,



어제 중국인 친구에게 페메가 왔다. "어제 선상에 있던 크루들이랑 지인들도 참여하는 크리스마스이브 파티를 할 건데, 너도 어머니랑 같이 올래?, 다른 한국인들도 와서 재밌을 거야"


나는 엄마한테 얘기했다. "엄마, 얘네 작은 펍을 빌려서 크리스마스이브 파티한대! 사람들도 많이 오고 흥겨울 거라는데 가볼래? 워낙 마을이 작아서 갈 데도 없었는데 바로 호텔 들어가긴 아쉽잖아"


엄마는 갑자기 역정을 내셨다. 너 개랑 아직도 연락하고 있었니? 거기가 위험한 곳일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가도 되는 거니? 너 예전에 여행 다닐 때도 이랬었니? 너 여행 못 보내겠다


아니 나도 갑자기 화가 확 올라오대?


나 친구랑 여행 갔을 땐 이런 경우 한 번도 없었는데 엄마가 어제 인연을 만들어놓아서 그런 거지. 여행 위험하다고 혼자 보내준 적도 없으면서! 하고 나도 소리 질렀다.



화를 꾸역꾸역 참으면서, 그 친구한테 마음은 고맙지만 이브는 엄마랑 보내겠다고 답장을 했다. 그랬더니 "그래 그럼, 내일 시드니로 간다고 했지? 괜찮으면 너랑 어머니 차로 공항 데려다줄게 10분밖에 안 걸리거든" 하고 답이 오는데, 왠지 더 미안해졌다. 이렇게 착한 친군데 엄마가 그런 식으로 오해를 하는 게 속상하고 나를 못믿는다는게 서운하고 막 그랬다.



"엄마, 파티 가는 건 거절했어. 대신 얘가 내일 공항 데려다준대. 어차피 내일 택시 타려 했잖아 이 호의까지는 받아도 되지? 얘 되게 착한 것 같아" 했더니


왜 걔가 우리를 공항까지 데려다 주니!! 그냥 우리끼리 택시 타고 가면 되지! 그러니 갈 거면 너 혼자가라고, 엄마 버리고 개가 좋으면 개랑 놀라고 엄마는 소리 지르며 자리를 벅차고 일어나 무작정 앞으로 걸어 나가셨다.



Tip) 부모님과 싸웠을 때, 화해는 먼저 청합시다. 웬만하면 안 싸우면 더 좋습니다. 골난 감정도 기억도 오래갑니다.


마음 같아서는 안 따라가고 싶었는데 이역만리 타국에서 엄마 잃어버리면 못 찾을 것 같아서 거리를 두고 뒤따라갔다.


바닷가 앞 공원에 서쪽에 내가 동쪽에 엄마가 200m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한 이삼십 분은 그냥 걸어 다녔던 것 같다. 바닷가라고 말하기엔 어려운 갯벌 바다 검은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공원의 음악가가 연주하는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엄마한테 먼저 다가갔다. 엄마는 운 것 같았다.


"엄마 저 사람, 연주 진짜 잘해. 가서 듣자. 운치 있네......." 하니 엄마도 "그래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니 좋네, 동영상으로 좀 찍어놔라"  


 언제 피 터지게 싸웠냐는 듯 백열등 불 빛 아래 에메랄드색으로 빛나는 인공 라군인 '에스플러네이드’앞에서 서로 예쁘게 사진도 찍어주었다.


에스플러네이드 인공 라군 전경


터벅터벅 걷다가 호텔에 다다를 때쯤, 엄마가 얘기했다. 자기는 다른 사람들 말고 딸이랑 둘만 놀고 싶은데 자꾸 누가 끼어드는 게 싫었다고. 그리고 엄마는 말도 안 통하는데 파티 가봤자 답답했을 것 같았다고. 아까는 너무 화가 나서 서울 바로 갈뻔했는데 먼저 다가와줘서 고맙다고



부모님이랑 여행을 하다 보면 정말 예상치도 못한 부분에서 심각하게 어긋나는 경우가 있는데, 가슴으로는 이해 못해도 머리로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하다. 설사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따뜻한 마음, 차가운 이성, 성숙한 감정 컨트롤 그것이 여행의 패시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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