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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맨션 Apr 15. 2022

관상어 죽이기

선인장의 꿈 

선인장의 꿈 연재 -01 

* 짧은 단편 소설 



관상어 죽이기 


   한참 전에 울린 알람을 끄지 못하고 송장처럼 누워있던 그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욕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여 수조를 바라봤다. 다른 어종의 관상어 여러 마리를 같이 키우면 자기들끼리 서열을 정리한다. 그러다 보면 몇 마리는 죽기도 하는데 투명하고 미끌거리는 작은 생명체가 죽어있는 모습을 보는건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눈을 감지도 못한 물고기는 잘린 지느러미를 수면에 맞닿은 채 빙빙 돌고 있다. 빛을 잃은 눈동자를 바라보는 건 그에게 무섭게 느껴졌다. 죽은 관상어를 건져내는 것보다 거북한 것은 죽인 관상어를 미워하게 되는 일이다. 삶은 양파 껍질처럼 되어버린 물고기를 건져내며 그는 섬뜩한 생각을 했다. 


   그는 요즘 들어 싫어하게 된 사람이 있다. 오가며 만나는 사람의 80% 정도는 싫어했으므로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주변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을 은밀하게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나이를 가지고 자존심을 내세우는 사람을, 누군가의 외모를 쉽게 평가하는 사람을,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을, 돈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을 싫어했다. 그렇지만 그는 적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이 사람이 싫다’라고 말하고 싶어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의 상사 K는 그보다 두 살 어린 남자다. 3년 전 K와 일을 시작했을 때, 아는 것이 많고 매사 열심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거래처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미움을 사지 않으면서도 빠른 마감 일자를 받아왔으며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떼왔다. 그는 거래처 직원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것을 힘들어했기에 K를 닮고 싶다고 잠시 생각한 적도 있었다. K가 받아오는 마감 일자와 물건가격이 일의 효율성을 높여주었기에 K를 유능하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요즘 K가 부쩍 마음에 안 들었다. 이는 막내직원이 들어온 이후부터였다. 


   자두 맛 사탕 위에 살짝 덮인 흰색 무늬, 그 줄무늬를 지니고 있는 관상어였다. 고작 6마리의 관상어 사이에서 서열 1위를 차지하기 위해서일까, 모두를 죽이고 수조에 혼자 남고 싶은 걸까, 먹이가 부족했던 걸까 되새기던 그는 예뻐했던 자두색 물고기가 징그러워 보였다. 자두색 관상어는 다른 관상어를 쫓아다니며 주둥이로 쪼아댄다. 처음엔 지느러미를 물어뜯어 헤엄치지 못하게 한 뒤 치명상을 입힌다. 죽어버린 물고기를 몇 번이고 뜯어 먹는다. 이는 사실 그의 추측이고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발견'뿐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지느러미를 잃고 뒤집어진 채 수조를 빙빙 도는 관상어를 보는 것, 끔찍한 일은 대부분 밤에 이루어지니까. 


   1년 전, 4명으로 구성된 그의 팀에 막내 직원이 들어왔다. 어깨를 조금 넘는 머리를 주황색 끈으로 묶고 다니던 그녀는 어느 날 묶이지 않을 정도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출근했다. 작은 키의 그녀는 어디서 사기라도 당하지 않을까 순진해 보였지만 누구보다 눈치가 빨랐고, 좋고 싫음이 애매해서 사람들에게 끌려다니지 않을까 싶었지만, 타인의 기분을 망치지 않고 의견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남들보다 사용하는 뇌의 용량이 큰지 사소한 것 하나까지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는 점심을 먹은 뒤 복도에 걸터앉아 그녀와 주식을 비롯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았다. 묘하게 입을 열게 하는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다.


   K는 막내 직원의 주황색 끈 밑으로 튀어나온 꽁지 머리를 자주 건드렸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남자애가 여자애를 괴롭히듯이. 그런 식으로 대하면서 중요하고 번거로운 일들을 무더기로 맡기기도 했다. 사적인 부탁을 하고는 들어주지 않으면 문제없는 그녀의 업무 능력에 딴지를 걸었다. 그녀 앞에서 자주 나이를 들먹이고,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여성을 향해 무례한 외모 평가를 늘어놓은 후 동의를 구하고, 혼자서 밥을 못 먹는다며 쉬는 날 불러냈다. ‘너는 나랑 참 비슷해’ , ‘나처럼 일해’ K는 그녀에게 하루에 몇 번이고 본인처럼 행동하라고 강요했다. 그녀가 머리를 짧게 잘라 버린 후, K는 건드릴 꽁지가 없자 괜히 심통을 부렸다. 


   그가 사는 도시는 한국에서 제일 크지만 죽은 물고기를 묻을 땅과 흙은 없었다. 손바닥만 한 초록색 뜰채에 담긴 엄지손톱 크기의 미끄덩한 물고기 시체를 보며 그는 어릴 적 키우다 죽은 토끼가 생각났다. 토끼를 흙에 묻으며 죽은 생명은 소름 끼치게 차갑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쩌면 차가운 것이 정상 온도이고 살아있는 게 따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뜰채에 담긴 죽은 물고기 조각을 변기에 넣었다. 돌아와서 수조를 들여다보곤 여전히 다른 관상어들의 지느러미를 쪼아 먹는 자두색 물고기를 홧김에 뜰채로 건져냈다. 그리고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그는 돌아와 자두색 물고기가 사라진 수조를 바라봤다. K를 뜰채로 건져내서 산채로 변기에 내려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곧 죽어버리고 말 것이고, 그것을 건져내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두색 관상어를 변기에 버리고 난 뒤 며칠 동안 그의 꿈엔 물고기들이 나왔다. 쓸려 내려가는 물살에 지느러미를 퍼덕이며 거스르려는 모습들이. 그리고 주황색 끈으로 묶인 머리카락 뭉치가 걸음 속도에 맞춰 흔들리는 모습이. 복잡하지만 모난 데 없는 이 생물은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지느러미를 잘랐다. 바닥에 흩어지는 머리카락들을 보며 살아있는 물고기를 변기에 내리는 일과 죽은 그녀를 수조에서 건져내는 것 중 무엇이 끔찍한지 한참을 생각하다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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