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조각집 - 07
포옹의 감각
사랑하는 사람 간의 스킨십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을 뽑으라면 단연 포옹입니다. 가볍게 서로의 팔을 교차하여 껴안는 포옹이 아니라 서로의 맥박과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로 꽉 껴안는 행위 말입니다.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며 마음에 생채기를 낼때까지 다투다가도 서로를 깊숙이 껴안으면 머리로 알지 못했던 것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껴안는 걸까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니 저는 이유 없이 상대를 끌어안는 것을 좋아합니다.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 거실에서 마주칠 때, 헤어질 때, 자기 전 서로의 가슴을 맞대어 몸을 붙입니다. 서로의 맥박이 교차하여 불규칙적으로 ‘퉁퉁’ 거리는 소리를 듣다 보면 이상한 안정감이 밀려옵니다. 서로의 인생에서 오래도록 존재할 거라는 믿음. 호흡을 나누며 상대방에게 저를 조금 내어줍니다. 포옹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그 행위를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어릴 적부터 우리 모녀는 포옹을 자주 했습니다. 제 기억상으로 스무살 초반까지도 엄마 품에 안기는 걸 좋아했습니다. 대부분 엄마가 두 팔을 벌려 저를 안았고, 그 안에 들어가 얕게 숨을 내쉬며 그녀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그녀를 안아준 적은 드문 것 같습니다. 아니 없는 것 같습니다. 포옹할 수 있다면 20년 전 엄마를 껴안고 싶습니다. 20년 전, 엄마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확실한 건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들만큼이나 아름다웠고, 지금의 나보다 키가 작으며, 두 딸을 어떤 힘으로 키운걸까 의문이 갈만큼 가냘픈 몸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엄했던 엄마가 늘 무서웠지만, 그 당시 엄마의 나이에 가까워진 저로서는 무섭다기보다는 연민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 대부분의 딸이 그렇듯 저 또한 연민과 애틋함이 뒤섞인 채 그 시절을 기억합니다.
저에게 엄마는 늘 단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때때로 엄마가 슬퍼하진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대부분의 순간 엄마는 강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꽤 자랑스럽게 여겼고 닮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엄마도 주저앉아 우는 모습을 저에게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가셨을 때와 제가 토끼를 보러 학교 뒷마당에 갔을 때 엄마는 울었습니다. 어린 시절 살았던 아파트는 거실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면 동네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저 또한 그 놀이터에서 자주 놀았고 그곳을 벗어나는 일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옆 동네 살던 반장이 토끼를 보러 가자고 졸랐습니다. 생태교육을 중요시했던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학교 주위로 온갖 식물들이 심겨 있었고 학교 뒤편으로는 토끼와 닭을 키우는 울타리가 있었습니다. 반장과 함께 울타리 앞에 쪼그려 앉아 하얀색 토끼 두 마리를 구경했습니다. 근처에 심겨있던 세잎클로바 몇 개를 뜯어서 토끼들에게 주기도 했습니다. 요즘 말로 ‘멍’을 때리듯 토끼를 하염없이 바라봤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해가 지고 쌀쌀할 때쯤 반장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파트에 가까워지니 온 동네가 시끌벅적 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1층 이모, 4층 이모, 아빠, 삼촌들까지 온 동네 어른들이 나와서 저를 반겼습니다. 놀란 얼굴과 안심한 표정으로 말이죠. 모두 저에게 어디 있었느냐고, 엄마가 제 걱정을 많이 했다고 전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엄마는 제가 늘 있던 놀이터에도 없고 있을 만한 장소에도 보이지 않아 손발이 떨렸다고 했습니다. 전날 엄마에게 대형마트에 가자며 투정을 부렸었는지, 엄마는 어린 제가 혼자 대형마트에 갔을까 봐 떨리는 다리로 달려가 저를 찾았다고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뉴스에 유괴사건을 비롯해 아동 실종사건들이 심심찮게 보도되었습니다. 제가 토끼를 보고 있는 동안, 어린 엄마가 어떤 심정으로 저를 찾아다녔을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저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은 엄마가 집에 돌아와 저를 안았는지, 혼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울고 있던 엄마의 얼굴만 또렷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어린 마음에 저는 엄마에게 혼날까 봐 무서웠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시절을 건너와 엄마 나이에 가까워진 저는 대형마트를 뛰어다니며 저를 찾았을 어린 엄마를 상상합니다. 편한 의자에 앉아 글자 몇 개를 써서 표현될 순간이 아니겠지요. 저는 그날의 엄마를, 울고 있었던 엄마를, 어렸던 엄마를 껴안고 싶습니다. 서로의 맥박이 느껴질 정도로 오래도록 안고 싶습니다. 서로의 인생에 오래도록 존재할 거라는 믿음을 건네고 싶습니다. 그러니 울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