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곤 Jun 07. 2024

존재의 힘

오늘 점심을 장모님과 집 근처 식당에서 했다. 그곳에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꽤 계셨다. 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장모님이 이렇게 말씀했다.

“아, 잘 먹었다.”

그러자 나도 오늘 메뉴에 만족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도요. 아주 잘 먹었습니다. 애들한테 감사하네요.”

내 말에 장모님이 약간 놀라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애들이라니? 누구 말인가?”

그러자 내가 깨끗이 해치운 음식들이 있던 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아, 오늘 제가 먹은 생명체요. 닭고기, 나물, 잡채, 두부, 콩나물... 애들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요. 감사할 따름이죠. 안 그래요?”

장모님이 말씀하신다.

“그럼, 당연하지.”



그리고 잠시 후였다.

장모님이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씀했다.

“요즘에 내가 쓸모가 없어지는 것 같을 때가 많아. 나이가 들면서,”

그러자 내가 말했다.

“무슨 말씀을요. 어머니는 지금 존재하고 계신 것만으로 소중한 가치가 있으시죠.”

그러자 장모님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시는지 다시 이렇게 말씀한다.

“안 그러네.”

그러자 내가 말한다.

“어머니, 생각해 보세요. 지금 어머니가 잡수신 음식을 만든 사람, 그 재료를 기르고 재배한 사람, 그리고 이 공간을 제공한 사람... 어머니는 오늘 이 음식을 드시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어머니가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신 겁니다. 그러니 지금 제 앞에 계시는 것만으로 소중한 사람인 거예요.”

내 말에 조금 위로가 되셨는지 아무 말씀이 없으시자 내가 이렇게 물었다.

“어머니, 전 세계 인구 중에 삼시세끼 먹고, 샤워하고, 자기의 잠자리에서 잘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거 같아요?”

조금 생각하시더니 장모님이 이렇게 말씀했다.

“글쎄...”

내가 예전에 한 신문 기사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많지 않아요. 아마 10퍼센트도 채 안 될 겁니다.”

장모님이 말씀했다.

“아, 그럴까?”

내가 다시 말했다.

“그럼요. 그러니 이렇게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 받은 거예요. 안 그래요?”

장모님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시며 이렇게 다시 말씀했다.

“하긴, 자네 말이 맞네.”

그러자 내가 이렇게 갈무리한다.

“자, 힘내시고, 가시다가 커피 한잔 하게 일어나실까요?”

장모님이 기운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세.”


그리고 우리는 식당을 나와 걷다가 제과점이 있어 그곳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고 앉았다. 잠시 후 내가 가지고 온 커피를 드시면서 장모님이 딸이 생각나시는지 이렇게 말씀하신다.

“가만있어봐, 우리 ㅇㅇ이가 좋아하는 빵 좀 사야지.”

사 오신 빵을 보고 다른 빵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내가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 ㅇㅇ 엄마는 이 빵보다 저 빵을 더 좋아해요.”

그러자 장모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며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신다.

“그래? 그럼, 저것도 사야지. 잠깐만.”



커피를 마신 후 그곳을 나와 내 팔에 의지하시며 걷다가 도로가에 서 있는 나무들을 보시고 장모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있잖아. 저 나무들을 보면 항상 짠하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말했다.

“저도 그래요.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콘크리트로 저렇게 둘러싸여 있으니.”

장모님이 다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럼, 우리 인간들이 어찌 보면 잔인해. 도시 미관을 위한다고 하지만 말이야”

그러자 내가 이렇게 맞장구를 친다.

“그러게요. 쟤들이 말을 안 해서, 아니, 우리가 못 들어서 그렇지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저러고도 저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대단한 생명력이에요. 안 그래요?”

장모님이 약간 높은 음자리로 이렇게 말씀한다.

“그럼. 대단해. 자연의 힘이.”

그러자 내가 이렇게 갈무리한다.

"사람도 자연도 그 자리에 있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 위대한 가치가 있는 거 같아요."


매거진의 이전글 출간의 여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