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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곤 Nov 11. 2024

1990년대 일본에서 우리를 바라보다

오늘은 전에 발행했던 글을 수정하여 일본 이야기를 조금 하려고 합니다.


요즈음 제가 일본에서 공부했을 때인 1990년대 전후의 일본과 비슷한 상황을 일상에서 자주 접합니다. 우리와 일본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닮은 점이 많습니다. 과거를 보면 지금을 알 수 있고, 현재는 미래의 거울이기도 하지요.



'집값 폭락'


일본에 공부를 하러 갔던 해는 1988년 말입니다. 지금 한국은 일본과 모든 면에서 대등한 위치에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만 해도 일본과 격차가 있었습니다. 최근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제가 일본에 있을 때와 비슷한 것 중에 두드러지는 부분은 부동산입니다. 일본의 티브이 뉴스에서는 동경 외곽지역과 지방의 아파트 가격이 폭락에 실망한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곤 했습니다. 호황 때 저렴한 이자에 돈을 빌려 집을 구입했던 일부 직장인들이 부동산 가격 하락과 경기 침체마저 겹쳐 직장까지 잃는 지경에 이르자 현실에 비관한 나머지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1985년 플라자 합의 후 그 후유증이 나타났던 것이죠. 지방은 청년들이 대도시로 이탈하여 인구감소와 빈 집들이 늘어났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지방의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지요. 일부분의 일일 것이지만 상황의 흐름이 비슷합니다.



'노숙인'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일본 경제 침체의 영향으로 거리에서도 지하철역에서도 노숙하는 사람이 넘쳤습니다. 그 당시 서울에서 경험하지 못한 도심 속그늘을 마주했던 저는 충격이었습니다. '세계 경제대국에서 이런 일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밤늦게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가다 보면 길가에 노숙인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신문지나 박스 종이를 바닥에 깔고 잠을 청하던 모습은 기억에 생생합니다. 20년 정도 전부터인가요. 그때 일본과 같은 모습을 우리의 도심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지요.



'초고령화 시대'


일본에서는 은퇴자도 계속 일을 했습니다. 가정주부는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부자나라에서 가정주부들까지 일터로 가는 분위기에 놀랐습니다. 제가 살았던 맨션에는 동경대를 졸업하고 공직에서 퇴직한 할아버지가 청소일을 하셨는데 외부의 눈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그들의 모습에 관심이 갔었지요. 우리의 현재 모습은 아니라도 100세 시대에 곧 이렇게 되겠지요. 얼마 전에 일본의 한 방송에서 남성이 65세, 여성이 60인 부부가 95세까지 생활하는 데 필요한 금액이 연금 이외에도 약 2억 원 이상 필요하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있었을 때와는 다른 모습인데요. 우리는 어떨까요. 지금부터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몸짱 열풍'


이때 대단했습니다. 동네마다 헬스장이 있었습니다. 저도 집 근처 스포츠클럽에 다녔습니다. 층마다 운동기구와 에어로빅 강의실이 있었고 헬스장 한복판에는 온탕도 있었지요. 태닝을 할 수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센터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은 피부를 검게 태운 모습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몸짱연예인이 인기몰이를 했었지요. 약 20년 전에 일본에 갈 일이 있었는데 옛 스포츠센터가 있던 장소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조그마한 쇼핑몰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우리 주변의 헬스클럽.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늦은 결혼'


젊은이들이 직업을 갖기 어려워 결혼이 늦었습니다. 물론 맞벌이는 기본이었습니다. 경기 침체로 기업 사정이 안 좋아 채용규모가 축소되고 청년 실업자가 늘면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예전에 비해 지금 우리 청년들의 결혼 시기도 늦어졌지요. 32살에 결혼했던 제가 늦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지금은 평범한 나이입니다. 직업에 대한 풍속도도 그때 일본과 비슷합니다.



'최저 시급'


1990년대 초 일본에서는 시간당 800엔에서 1,000엔 정도를 받았습니다. 최근에 야후 재팬의 알바 구인 광고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시간당 1,000엔 정도이더군요. 30년 넘는 동안 큰 변동이 없었습니다. 직장인들의 급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잃어버린 30년 하면서 여기저기에서 지금의 일본의 상황을 주시한다고 하지만 버블 붕괴 초기 단계이긴 그때만 해도 일본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했습니다. 부자나라라고.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일본 젊은이들이 시급이 높은 해외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도쿄에 있는 한 요리학교에서는 동남아로 진출하여 '초밥집'을 운영하려는 청년들을 위한 창업교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0위 권 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속도입니다. 우리의 1989년 시급은 얼마였을까요? 600원이었습니다. 2024년 현재 9,860원이니 약 20배가 가까이 오른 셈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일본처럼 잃어버린 세월로 접어들까요? 아니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갈까요. 정부, 기업,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입니다.



'해외로'


해외로 어학연수나 유학을 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내 주위에도 많은 젊은 이들이 해외에 나갔다 온 경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으로 갔다 와서 S그룹 입사에 성공했습니다. 대기업을 가려면 외국어를 하나쯤 하는 것이 필수가 되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지금도 일본에 많은 한국학생들이 공부하러 가고 있다지요. 제가 갔을 때는 한 사립대학 기준으로 적게는 10명, 많게는 50명 안팎이었습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어보다는 일본어 실력자는 국내 기업에서 환영을 받았습니다만 약 20년 정도 전부터 인가요. 국내에서 중국 열풍과 한일관계 악화로 일본어 위상은 땅에 떨어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문화적 현상이 비슷하게 흘러가다 보니 언젠가는 일본전문가가 반드시 빛을 발하는 시기가 올 거라 확신합니다. 특히 초고령화 사회에 본격 접어드는 단계에 돌입하면 일본의 선례는 좋은 참고가 되겠지요. 국가 정책을 입안하는 부처 등에서도 기업에서도 일본 전문가가 필요하겠지요.



'갈무리'


세상은 넓고 할 일은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온갖 시험에 시달리고 계신가요? 가야 하는 길이다고 여긴다면 당연히 앞만 보고 가야겠지만 그렇지 않고 남이 하니까 마지못해 손에 들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마음의 기지개를 켭시다. 그리고 자기를 들여다보며 희망과 용기의 씨앗을 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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