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풍댐에서, 희미한 ‘강 건너 등불’)
(수풍댐에서, 희미한 ‘강 건너 등불’)
나의 발걸음을 유혹해서 1만 5천여km를 달려오게 한 푸른 강물은 묘한 여운을 머금고 시치미를 딱 떼고 흘러 흘러간다. 한 번만 더 내게 살가운 미소를 보내준다면 난 그대로 뛰어들려고 했었다. 압록은 아침이면 푸른 안개 피어올라 새 신부인 양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태가 신비스럽고, 햇살이 비치면 푸른 정장을 갈아입은 여성처럼 당당하다가 붉은 노을 속에서는 이브닝 가운을 입은 여인처럼 매혹적이다. 압록은 사랑스런 여인처럼 아침, 점심, 저녁, 어제도 오늘도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고 또 내일도 다른 모습으로 아름다울 것이다.
붉은 가을 푸른 강
붉은 가을을 품은 푸른 강물 한가운데서
여성저음의 음색이 흘러나오고
잃어버리고 살았던 아련한 정겨움
저 깊은 곳으로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싶다.
천둥오리 머리 빛
푸른 강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라졌던 모든 것의 재탄생을 바라는
강렬한 염원으로 끓어오르게 한다.
뛰어들면 바로
붉은 가을을 품은 푸른 강 빛으로 물들 것 같다.
그리도 먼 길을 달려왔건만
그리운 건 다 강 건너에 있다.
끝나지 않은 평화의 길 끝에는
간절한 염원만 더 붉고 푸르러진다.
아버지 가슴에서 평생 떠다녔을 대동강의 작은 배가 강 한가운데 또 내 마음에 떠 있다. 강 너머에 산과 산, 골짜기와 골짜기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서 있는데 바람에 흔들리며 피어있는 들국화 한 송이가 애처롭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단둥과 신의주가, 지안과 만포가, 장백과 혜산이 마주 보고 표정 없이 서있다. 이곳에서 아버지의 피에서 전해진 귀향을 꿈꾼다.
단절된 두 곳을 이으려는 인간의 의지는 집요했다. 사람들은 나루를 만들어 뱃길을 연결했다. 험한 물결 위에 다리를 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사무친 그리움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다리를 놓았다. 끊겨진 다리 옆에 또 다리를 놓았다. 애타게 그리던 소식이 오는 곳도 결국 강 너머로부터이다. 지금은 꼭 막힌 길이지만 결국 이 길이 우리의 관문이 될 것이다.
한때 아시아 최대의 수력발전소 수풍댐은 남한까지 전력을 공급하던 곳이다. 수풍댐으로 가는 압록강에는 연어와 잉어 등을 기르는 ‘가두리양식장’이 많다. 대부분이 한국으로 수출된다고 한다. 그전에는 장어 양식을 하던 곳이라고 동행한 조선족 박 여사는 설명한다. 할아버지 때 경상도 안동에서 만주로 넘어왔다고 한다. 그녀는 중국 최대 규모의 안산철강에서 일하다가 은퇴했다고 자랑한다. 은퇴해서도 퇴직할 때의 봉급을 죽을 때까지 받는다는 그녀는 얼굴에 자부심이 흠뻑 배어있었다.
강 밖 언덕에는 주먹보다 큰 빨간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린 과수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곳 사과는 서리를 맞아야 제 맛이 든다고 아직 가지에 매달려있다. 봄이면 사과꽃과 복숭아꽃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복숭아꽃을 보러온 사람들이 인파가 또 꽃무리를 이룬다고 한다.
바로 몇 십 미터 앞이 우리가 즐겨 암송하던 진달래의 시인 김소월과 장준하의 고향인 삭주이다. 소월은 꽃피는 봄이면 온 산을 분홍으로 물들이는 진달래로 피어나는데 장준하가 뿌린 민주통일의 꽃은 언제나 피어나려나?
내가 아시럽를 달려서 횡단한 것은 무한 속도 경쟁을 벌이는 현대문명에 반기를 든 것이다. 나는 유럽이 시작한 비정한 현대문명에 맞서서 유럽의 끝에서부터 한 발자국씩 뚜벅이로 달려왔다. 차갑고 냉정한 세상을 달리면서 따뜻한 미래를 꿈꾸며 설계하였다. 압록강 앞에 서서 이제 아시아의 시대가 천천히 그러나 확연하게 다가오는 것을 가슴으로 느낀다. 그 시대는 한국의 통일에서 출발하는 멋진 마라톤 대회 같은 것이 될 것이다.
무한 속도 경쟁을 벌이는 현대문명에 반기를 들고 아시럽 대륙을 오롯이 달려서 왔다. 대량생산, 중앙집권, 속도 경쟁 등 개인의 개성과 삶은 안중에도 없었던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종을 치기 위해 달려왔다. 거대한 제국의 종말은 한반도의 평화를 막지 못하는 지점에서 시작되고, 세계의 평화는 한반도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아시아의 시대는 아직도 서슬이 시퍼런 서구 제국주의의 시대를 떠나보내고 함께 나누는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일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돈만 내면 비교적 자유롭게 당일 여행으로 북한 땅을 오갈 수 있는데, 같은 피를 나눈 우리는 서로 다른 정치이념과 체제, 국제 정세 때문에 오가질 못한다. 등 돌리고 떠난 여인의 뒷모습 같은 북녘 땅을 바라만 보니 새삼 냉엄한 분단 현실이 가슴을 메이게 한다.
분단의 현실이 얼마나 모질기에 1만5천여km를 달려와도 선뜻 문을 열어줄 수가 없는지 답답한 마음 그지없다. 끊어진 두 곳을 잇는 다리가 되고픈 내 달리기이다. 강 건넛마을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조잘거림이 기관총처럼 마구 쏟아져 날아온다. 금방 가슴에 구멍이 쑹쑹 뚫리고 그리로 허망한 바람이 지나간다. 의식이 절망의 터널과 희망의 바다를 오간다.
허커우(河口)에는 압록강의 두 번째 단교와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의 동상이 서 있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한국전에 참전하지 않았다고 알려졌지만 중국이 마오안잉 동상에 그가 러시아어 통역관으로 일하다가 폭사했다고 새겨 놓은 것을 보니 소련 공군이 한국전쟁에 직접 참전한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는 한국전 참가 지원 1호라고 한다. 중국식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마오안잉의 묘는 북한에 있다. 마오쩌둥은 며느리가 그렇게 울부짖으며 애원했어도 아들의 묘를 중국에 옮기지 않았다. 아마도 북한에 오래도록 부채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유람선 나루에는 민물고기 요리 음식점이 늘어서 있다. 오랜만에 조선족이 하는 매운탕이 입에 당겼지만 이진숙 교수와 박 여사가 바리바리 싸 온 점심을 먹어야 했다. 수풍댐 아래에서 소풍 나온 사람처럼 음식을 바닥에 펼쳐놓고 한가하게 먹는 맛도 일품이다.
강 건너 저편에 오토바이가 하나 지나가고, 버스가 지나가니 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난다. 송인엽 교수님이 정말 붉은 가을을 머금은 푸른 강물에 물들고 싶었는지 여자분들 고개를 돌리라고 하더니 홀딱 벗고 강물로 뛰어든다. 10월 중순 만주벌판의 날씨이다.
수풍댐까지 가는 유람선인 줄 알고 탔는데 중간까지 돌고 뱃머리를 돌린다. 끊어진 다리를 지나간다. 이 다리가 중국군의 주력부대가 넘어가던 다리이다. 끊어진 다리에는 수많은 절규가 맴돌았다. 맞은편에 초소가 보이지만 초병은 보이지 않는다.
이쪽 산은 숲이 우거졌는데 저쪽 너머의 산은 민둥산이다. 간혹 밭을 일구는 사람과 뛰어다니는 어린아이가 보이고 자전거와 전동자전거가 교차로 지나간다. 저 땅이 할머니와 아버지, 나로 이어지는 대를 이어서 그리워한 땅이다. 바로 옆으로 노를 저어가는 고기잡이배 한 척이 무심히 지나간다.
배로 수풍댐까지 가지 못했으므로 다시 차로 수풍댐까지 간다. 1952년 500여 대 이상의 미군기들이 북한 지역 전력 공급의 90% 이상을 차지했던 수풍댐을 폭격했다. 한 시간 남짓 되는 시간에 900여 톤에 달하는 폭탄이 거의 무방비 상태의 수풍댐에 떨어졌다.
한국전쟁 중 최대 규모였던 이날 공습에 동원된 항공모함만도 4척에 달했다. 연 이틀간의 폭격으로 댐과 발전설비의 70% 이상이 파괴되었다. 미군은 지지부진하던 휴전회담을 속개시킬 속셈으로 그동안 폭격의 피해를 입지 않고 있었던 수풍댐을 폭격하는 등의 강경책을 택하게 된 것이다.
수풍댐 옆에는 몇 년 전부터 재가동되어 큰 굴뚝에서 연기를 뿜는 공장이 보인다. 규소와 철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북한경제의 재건은 이제 동북아 경제의 큰 화두이다. 그것을 위해서 전력생산을 늘리는 것이 가장 시급하며 특히 노후상태에 있는 수풍댐을 현대적인 시설로 정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현재 기본생산능력의 30∼40%밖에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수풍댐을 현대식으로 개조하면 3배 이상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북한은 40년 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할 때 이상으로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제재가 풀리면 압록강, 두만강에서 경제협력이 급물살을 탈 것이다. 북한 투자에 관심 있는 중국이나 해외 기업은 많다. 물론 한국과 러시아, 미국과 유럽도 대기하고 있다.
가장 급한 건 서울에서 중국 단둥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직행할 수 있는 철도망이다. 그러면 압록강 하구와 두만강 하구는 동북아 경제지도의 중심이 될 수 있다. 남북이 동, 서해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는 착공식을 12월 초에 하기로 한 것은 잘한 것이다.
바람처럼 아시럽을 달리며 내면에서 들려오는 진솔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신과 인간의 경계를 바라보았다. 보이는 풍요와 보이지 않는 평화, 들리는 생명의 소리와 들리지 않는 미물의 흔들림,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우정과 그리움으로만 남은 등 돌린 사랑, 육체와 영혼, 물질의 개벽과 정신의 개벽, 사색 그리고 명상과 행동 등 영원히 모순되는 것들을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내적 갈등의 추출물들을 얻어내려 부단히 노력하였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다. 거대한 문명의 흥망이 이어지고, 문화도 변화고 제도도 변한다. 때로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거대한 물줄기에 휩쓸려 떠내려가기도 한다. 인간의 역사는 진보의 역사이다. 더 나은 문화나 기술, 제도를 추구하거나 받아들였다. 그러나 새로운 것이 언제나 모든 이에게 축복이 되진 않았다. 어떤 부류에게는 변화가 현재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것을 지키려는 자들의 저항은 거칠었다.
나는 이 여정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유용하지만 가장 덜 발달한 것이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는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가 자기 보존과 평안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진다는 상식을 고려하면 특이한 현상이다.
특히 인간은 이웃이 죽거나 고통을 당할 때 자연스럽게 마음 아파하고 혐오감을 느낀다. 자기 보존에 관계되고 자신을 우선시해야 할 정당한 경우 외에는 타인이나 다른 감성적 존재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지금보다 더 많은 평화를 누리는 것이 맞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중대한 결정을 내리려 하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세계 역사의 물줄기는 요동을 치며 변화할 것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모순이나 사회적 갈등, 경제적 문제 등은 사소하기 짝이 없을 수도 있다. 한때 한반도 전역을 불 밝히던 수풍발전소에 서서 내 마음에 불을 밝히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둑어둑한 ‘강 건너 등불’을 바라보며 님 소식을 기다린다.
잃어버린 나의 조국을 바라보며 열망과 절망 사이의 허망을 망연자실하게 배회한다. 바람결에 천하태평(天下泰平)을 염원하고 대동세계(大同世界)를 외치던 녹두장군의 거침없는 외침이 들려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