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남편은 적지 않은 횟수로 5살이 된다
"여보야, 언제 한 번 부대 올래? 카운슬러가 여보도 같이 오면 좋겠다던데!"
도란도란 저녁 식사를 하던 도중 불쑥 남편이 물었다.
남편의 질문은 지나가도 좋은 듯 툭 던져진 것 같지만, 마음속 깊은 곳엔 내가 기꺼이 부대로 와주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평소엔 한 없이 크기만 해 보였던 남편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디서 키 작고 귀여운 흑곰 하나가 내 앞에서 짧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남편은 지금 끊임없이 눈으로 말하고 있다. '빨리 온다고 대답해줘. 나 여보랑 부대에서 있고 싶어!'라고.
육아도 하지 않는 젊은 전업 주부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부대에 가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울까.
다만 매번 속도 없이 "그래!"를 외치면 어느 순간부턴 남편이 나를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것 같아 한 번 튕겨준다. 연애 때나 써먹던 못된 심보다.
"카운슬링은 여보 혼자 받아도 되는 거잖아~ 난 집에 있을게."
대답을 들은 남편은 우선 괜찮은 듯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다가 또 눈을 반짝거리며 며칠 뒤 다시 묻는다.
"여보 다음 주에 부대 올래?"
아무리 곰 같은 남편이라도 두 번의 거절은 속상할 수 있을 걸 알기에 그쯤이면 원하는 대답을 내어 줘야 한다.
"알겠어. 몇 시에 가면 될까?"
대답을 들은 후 그제야 씰룩씰룩 가벼운 뒷모습을 보이는 남편을 보면 웃음이 난다.
그럴 때면 나의 포지션이 아내가 아니라 '흑곰 조련사'와 '엄마' 그 사이의 어딘가에 놓여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모든 와이프가 겪어나가야 하는 숙명 같은 부분이려나.
누구에게나 카운슬러는 필요한 법이므로,
신기하게도 미군의 경우 다양한 분야의 카운슬링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 Nutrition, Medical, Marriage, Financial 등 정말 그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이 혜택은 미군의 배우자에게도 동등하게 돌아간다. 결혼 전에 나와 남편은 부대에서 Marriage Counseling을 받았고, 예상외로 불편한 자리도 아니었으며 덩달아 마음도 가벼워졌다. 최근 남편이 받은 카운슬링은 심리 상담 관련인데, 남편은 내 이야기를 하다 본인도 모르게 그만 울컥한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일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내 성향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상황에 이끌려 집에서 하루 종일 외롭게 남편만 기다리고 있는 내가 안쓰러워졌다고 카운슬러에게 털어놨더랬다.
"그런 이야기 왜 나한테는 안 해~?"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부부는 평소 대화가 끊이지 않는 스타일이라 그런 이야기들은 나에게 털어놨을 법도 하기에.
남편은 눈동자를 바닥으로 떨구며 작은 소리로 기어가듯 대답했다.
"부끄럽잖아.."
남편의 모든 속내를 낱낱이 알고 싶은 마음, 또 내가 캐묻지 않아도 모든 것을 말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사실 나만의 욕심일 수 있다.
남편의 동료들 중엔 부대 곳곳에 상주하고 있는 '카운슬러'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아 오히려 남편이 기특하다고 느껴졌다. 늘 남편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고자 하지만 나의 역량이라는 것이 항상 충분하지 않을 수 있으니, 그 빈틈을 전문성 갖춘 다른 누군가가 채워줄 수 있다면 그건 아주 감사한 일이다.
나도 학부시절 카운슬링의 도움을 종종 받아서인지 카운슬링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모두 진심으로 존중한다. 특히 우글우글한 '영어 네이티브'들 사이에서 회계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리고 Big 4 회계 법인 중 하나인 딜로이트 출신 교수님 밑에서 "너는 아직 수업 준비가 안 됐다."는 뼈가 시리도록 명확한 지적을 들으면서는 더더욱. 그때마다 죽상으로 찾아간 카운슬러의 오피스에서 몇 십분 동안 고뇌를 풀어놓고 나면 집에 가는 길은 늘 한결 가벼웠다. 물론 카운슬러의 입장은 또 들어봐야 알 테지.
직종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조언자는 항상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상황 상 그 조언자가 늘 전문 카운슬러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며, 고로 '오롯이 홀로서기'를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함이 분명한 세상을 우리는 살아내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카운슬링'을 받고 또 그에 대한 가치를 잘 이해하며 인정하는 남편의 태도를 높이 산다. 그 과정 중 남편이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있다면 나는 언제나 그곳에 있을 거다. 다음 주에 잡힌 카운슬러 오피스 방문에서도 똑똑 노크를 하곤 묻겠지.
"혹시 저희 집 애완 곰이 이 곳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