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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장 Feb 23. 2024

그래서 미술이 대체 뭐길래?

나는 도통 모르겠다


한 2주 정도 되었던가. 갤러리에서 여느 때와 같이 일을 하고, 퇴근 후 부업을 가거나 집에 들어와서 나의 최애 시사 교양프로 "그것이 알고싶다"를 본다. 때때로 동네 갤러리나 미술관을 다니며 남의 전시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기웃거리며 전시 서문이 인쇄된 팜플렛을 들추어 보기를 일쑤. 글로써 나의 감상을 남기겠다며 집으로 가져온 팜플렛은-다시 한 번 읽히지 못한 채-택배 박스에 담겨 다시금 어딘가로 버려진다. 오늘은 배가 고픈데 배민으로 연어 초밥을 시켜 먹을까, 아니면 링귀니 파스타를 오랜만에 만들어 먹을까? 흰 종잇장같이 무미건조한 일상이 반복되니 문득 떠오른 생각.


나, 미술에 여전히 목매는 사람 맞나? 미술은 뭐고, 어떤 자격으로 좋아할 수 있나? 애초에 그것은 무언이던가?


돌이켜보면 미술사로 시작된 깊지만 가벼운 인연은, 미술을 그저 고상한 취미로 치부하던 나의 삶의 한 가운데에 똬리를 튼 지 오래다. 사실 요즈음은 이마저도 의심이 든다. 그런 것이 맞기는 한가? 분명 학사에 석사에 업계에서 일까지 하고 있으니 38퍼센트 정도 맞는 것은 같은데, 나도 나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미술만큼 어려운 게 또 없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나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미술에 발을 들인 자, 눈을 감는 순간까지 나는 미술을 몰라-하다 악! 하고 생을 마감할 것이다.


초등학생 시절 교과서에서 지겹도록 본 "인터넷", "정보의 홍수"와 같은 단어는 우리 세대를 관통하고는 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며 살아가는 나는 인생의 낭비라는 SNS까지 즐겨하는 탓에 본의 아니게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을  심심찮게 발견하고는 한다. 오늘은 한남동에서 이 전시, 그제는 을지로에서 저 전시를 보고 왔다고 한다. 무섭게도 어느 순간 나는 이딴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네가 이걸 보고 뭘 그렇게 느끼고 알았는데? 미술이 그렇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라고 인상을 찌푸린 나 스스로가 경멸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레오제이가 낳은 극강의 명언 "너 뭐 돼?"를 시전한 순간. 더닝 크루거의 그래프 속 나는 우매함의 봉우리 꼭대기에 서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바라보았다. 내가 절망의 계곡으로 낙하하는 모습을.  



사실 미술은 꼭 알아야만 사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몽매함은 대체 어디서 기어 나온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것은 위의 그래프가 적나라하게 보여주듯 무지함에 있었다. 뭘 알지도 못하는 게 겉핥기 조금 했다고 오만해진 것이다. 내 업무의 중심은 결국 미술에 있었거늘, 그저 일 잘하는 것에 치중해버린 나머지 내가 좋아하던 미술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책을 예전보다 덜 읽는다. 고로 사고하지 않는다. 시대별 미술상을 차차 잊어가고, 과거의 미술에 해이해지다 보니 현대의 미술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진다. 현대 미술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갤러리 직원이 대체 이 사람이 왜 좋은 작가이며, 그의 작품을 왜 좋은 작품이라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에 의심을 갖기 시작한다. 쏟아지는 전시의 반복되는 의제에 쉽게 질려버리고 우물에 갇혀 더 좋은 전시를 찾지도,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나, 이런 사람 아니었지 않나?


처마 끝에 매달려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 그것이 떨어지는 간격 사이의 리듬이라든지, 저 물이 고이면 또 다른 물길을 만들어 흘러가는 모양새라든지, 별의별 것에서 의미를 찾고 그것이 미학적으로나 시각적으로 승화되어 미술 작품이라는 이름을 입는 모든 행위에 감탄하지 않았었나. 그래서 모든 형태의 시각 예술을 좇던 사람이지 않았나. 과거의 뜨거웠던 마음을 다시 되살려야겠다 생각한다. 그것이 비록 순수하지 않더라도 다른 형태의 순수함으로, 혹은 숭고함으로. 


그래서 오늘 올레티비 구독을 해지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티비에 의존하지 말고 직접 현장에 가서 느껴야겠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차라리 책을 한 자라도 더 읽는 것이 유익하다는 사실은 두말할 것도 없다. 미술은 대체 무엇인가? 절망의 계곡에서 깨달음의 비탈길로 올라가기 위해 티비 구독을 해지하는 나 같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 혹은 그럴 의지를 제공하는 강력한 힘 그 무언가. 현재로서 그 이상을 적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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