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영감을 준 사람들_ 장님할아버지 편

살면서 내가 경험한 것 중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은 우리 동네 장님할아버지다. 중풍까지 있으셔서 몸도 불편하신데, 놀랍게도 매일 새벽 5시가 되면 보행기를 꼭 잡고 홀로 집 앞을 30분간 걸으셨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큰 폭설에도 늘 한결같았다.

내가 이 장면을 볼 수 있었던 건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여행경비를 위해 새벽시간 헬스장 인포메이션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였다. 대충 4개월 정도 일했는데, 당시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과 투정 섞인 푸념으로 집 밖을 나섰다. 그때마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힘껏 생을 맞서는 할아버지의 태도에 절로 겸손해졌다. 가끔 폭설이 내리는 날엔 걱정이 되는지 며느리 같은 분이 그 옆을 함께 걸었다.

매일 깜깜한 새벽 앞이 보이지 않는 사경을 뚫고 성실하게 걷던 할아버지. 이미 앞이 깜깜해서 까만 새벽이 오히려 두렵지 않았던걸까? 오히려 젊은 나보다 모든 면에서 나보다 나아 보였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자빠져있을 때 할아버지가 가끔 생각난다. 지금도 건강하셨으면

아, 이맘쯤엔 새벽 첫 버스를 타면 성애 낀 창문너머 적당히 북적이던 일터를 향한 사람들 차분한 공기도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