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의 컵

영원할 줄 알았다

by 도파민경제



싱크대에는 컵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창문 밖에서는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집 안은 조용했다. 냉장고의 미세한 진동 소리만이 이곳에 아직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컵을 들어 올렸다.



가벼웠다.



너무 가벼워서, 손에 쥐고 있다는 느낌조차 희미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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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7년 차였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다.



아침이면 먼저 일어나 아이들의 학교와 유치원의 물병을 챙겼고, 비가 오는 날에는 말없이 그녀의 우산을 현관 쪽으로 옮겨놓았다.



하지만 그는 말이 많지 않았다.



“오늘 어땠어?”



그녀가 물으면,



“응, 괜찮았어.”



그리고 끝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편안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점점 그녀를 혼자 있게 만들었다.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혼자인 기분.



그녀는 그 감정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그저 혼자 술을 마시며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는 것이 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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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의 결혼 집들이에서 현우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웃었다.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웃었다.



“오랜만이다. 김은영.”



그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이름.



남편은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이름을 거의 부르지 않았다.



“여보.”



“이거.”



“잠깐.”



그게 전부였다.



술자리가 길어졌다.



사람들은 웃었고, 떠들었고, 과거를 꺼냈다.



밤이 깊어졌을 무렵, 현우는 조용히 내게 말했다.



“나 사실, 너 좋아했었어.”



그녀는 웃으며 넘기려 했다.



그는 다시 말했다.



“지금도, 조금은.”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심장이 낯설게 뛰고 있었다.



살아 있다는 느낌.



그녀는 그 감각을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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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그녀는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집들이 후 친구들과 노래방을 갔고, 그 후엔 현우와 따로 밤을 보냈다.



전화가 여러 번 울렸다.



남편이었다.



그녀는 화면만 바라보다가, 결국 받지 않았다.



다음 날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은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다만 말했다.



“걱정했어.”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한마디가, 오히려 그녀를 더 멀어지게 했다.



왜인지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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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그녀는 자주 웃었다.



현우와 함께 있을 때면.



현우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었고,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넌 여전히 예쁘다.”



그녀는 그 말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믿고 싶었다.



어느 날, 야구장을 함께 갔다.



사람들 사이에 앉아,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그 순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누군가의 아내가 아니라,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라,



그냥,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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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은 조용히 끝났다.



남편은 마지막까지 같은 표정이었다.



“잘 지내.”



그 말뿐이었다.



그녀는 그가 붙잡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이 그의 마지막 무관심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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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웃는 날은 줄어들었다.



현우는 여전히 웃었지만,



그 웃음은 이제 그녀를 향하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현우는 약속을 잊었고,



연락이 끊겼고,



늦은 밤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의 남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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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빠 요즘 맨날 웃어.”



그녀의 손이 멈췄다.



“회사도 옮겼어. 더 좋은 데래.”



잠시 침묵.



“엄마는 잘 지내?”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가 그러는데, 엄마 행복하면 된대.”



통화가 끝났다.



집은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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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싱크대로 걸어갔다.



컵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 하나뿐일까.



예전에는,



분명히,



4개였는데.



아이들의 컵.



남편의 컵.



그리고 자신의 컵.



서로 다른 모양의 컵들이, 서로 다른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지루하다고 생각했었다.



영원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녀는 컵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심장이 멈췄다.



고개를 들었다.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그녀는 깨달았다.



그 소리는,



기억이었다.



다시는,



열리지 않을 문.



그녀는 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자신이 떠난 것이 아니라,



자신만,



남겨졌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