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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이모 Feb 26. 2022

LG아트센터 역삼시대 마지막 공연

2월 27일 하데스타운 공연을 마지막으로  사라질 역삼동의 LG아트센터

2022년 다이어리를 열고도 새해가 시작된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 설날이 진짜 새해지.  한복 사러 남대문 왔다 갔다 오랜만에 가족들 티타임 하고 세배 시간 갖고 사진 찍고 그래도 새로운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래 입춘이 되면 진짜 신년이지.  새롭게 시작해야 돼....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지나고 봄 느낌과 꽃샘추위가 몇 번 번갈아 오간 2월 마지막 주까지 어쩐지 마음만 바쁘고 새로운 기분이 들지 않네.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 행정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언니 따라갔던 동물사랑 관련 모임에서 시작된 일과 강의들,  새해에는 작곡 공부를 학위과정으로 본격적으로 해볼까,  동네 배움터 활동을 더 활발히 해볼까, 덜컥 시작한 구립합창단 연습은 어쩌나 브런치글은 또 언제쓰지. 마음은 번잡하고 눈은 흐리멍덩한데 둘째가 엄마를 찾는다.


당근 마켓에서 구입한 원피스들을 몸에 맞게 수선한다고 며칠을 검색하더니 맘에 드는 집을 찾았다고.  차로 10분 정도 되는 곳에 30년 된 아현동 토박이 옷 수선 장인 아주머니께 수선할 옷을 맡기고 왔다.  눈썰미 좋아서 사진만 보고 참 예쁜 옷 득탬도 잘하네.   롱페딩을 입고도 추운데 홑겹 민소매 원피스를 몇번이나 갈아입고 시침핀에 찔려 아프다 하면서도 옷고치는게 그렇게 좋을까 또 체격에 맞게 줄이면 얼마나 더 예쁠까?   그래도 한창나이인데 새 옷을 사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점심 모임에서도 밀크티로 참아낸 라떼를 저녁때 마시고 말았다. 그리고는 자다 깨다를 반복. 대선 관련 뉴스, 우크라이나 상황, 부동산 기사, 낮에 들었던 강의 복습, 아이가 작업한 영상물들을 다시 보며 날밤을 새우는데 갑자기 내가 이 새벽에 깨어 있는 중요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일이면 내가 아는 LG아트센터가 문을 닫는다.  휴가도 아니고 코로나 때문도 아니고 완전히 역삼동에서 없어지는 거다. 이렇게 얼굴 안 보고 그냥 보낼 수는 없다.  표가 있다면 시야방해석이라도 구해서 제대로 된 배웅을 해야 한다.  새 옷은 언제든지 살 수 있지만 이런 중요한 문화 경험은 때가 지나면 다시는 할 수 없다.  


급히 회원가입을 하고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몇 장 안 남은 예매 가능한 티겟 중 둘이 함께 볼 수 있는 두, 세 개 정도의 자리 그중에서 제일 앞자리를 선택했다.  2층 2열 구석자리 두 개.  앱카드로 6개월 무이자 할부.   그래 새 옷은 언제든 사줄 수 있지만 이 공연 놓치면 LG아트센터 역삼동과는 영영 이별.  중요한 정신적 유산이 역사 속으로 사그라 지기 전에 딸과 함께 추억을 공유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비몽사몽 예매하고 보니 역삼동 LG아트센터의 마지막 날, 마지막 회 공연이다.  내일이 지나면 극장의 문은 영영 닫히고 사반세기 전 기초공사를 할 때 안전모 쓰고 들어가서 보았던 그 공간은 사라진다.  무대, 울림판, 조명, 1000여 개의 파란 의자들, 100개는 될 것 같은 베너용 파이프들 (정확한 전문 용어는 모름), 그걸 조정하는 로프 등 수백수천 가지의 공연장을 구성했던 것들이 모두 모두 없어진다.




그런 내일. 마지막 공연을 보고 걸어 나올 때 어떤 느낌일까.  관객의 마음이 이런데 무대에 선 예술가들, 무대 뒤의 창작자들,  기술자들, 장인들, 그리고 극장을 만들고 지켜온 관리자들의 마음은 어떨까.  그래도 마곡 새 부지에 LG아트센터가 무려 안도 다다오 설계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탄생하고 역삼동 자리도 리모델링되어 극장으로의 기능은 다시 하게 된다니 참 반가운 일이다.  


https://youtu.be/KD74g83lpWU



치약과 예술 사이에, 냉장고와 사회공헌 사이에  LG아트센터가 있었다. 아니 LG아트센터가 있다. 내게는 그랬다. 아니 내게는 그렇다.  더 좋은 더 큰집으로 이사 가는 축하해야 할 일이지만 익숙한 공간과의 영구적 이별은 어쩐지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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