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 이모 Jul 17. 2023

건배사와 견공동행사

(사)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 ICKC 소식지 47호 칼럼 기고문 입니다

“We do not remember days, we remember moments.  Cesare Pavese 

우리는 시절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기억한다. 체사레 파베세 (1908-1950) “


***                 ***                 ***


27년간 주한 호주대사관에서 8명의 대사님과 일했다. Darren Gribble, Mack Williams, Tony Hely, Colin Heseltine, Peter Rowe, Sam Gerovich, Bill Paterson, 그리고 James Choi.   조직의 수장인 대사님이 바뀌면 조직의 문화와 우선순위도 바뀐다.  또 외교업무의 주요 부분인 조찬, 모닝 티, 오찬, 리셉션, 오프닝, 클로징등 각종 이벤트 행사의 스타일도 달라진다. 그래도 늘 빠지지 않는 것은 호주 와인 그리고 대사님의 건배사.  행사 내용에 따라 건배사가 조금씩 달라지지만 잔을 함께 올린 사람들의 화답은 대게 치어스 (cheers).  양 옆의 게스트와 눈을 맞추고 잔을 부딪치며 치어스 라고 하는 것이 내가 본 공식 건배 장면.


1년간 ICKC (International Center for Korean Culture) 봉사활동을 마무리 하는 석식 자리에서 나는 전혀 새로운 건배사 문화를 알게 되었다. 단체장 뿐 아니라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나름의 메시지를 담은 짧은 문구를 만들어 선창을 하면 모든 참석자들이 함께 외치는 것이다.  건배사 라기 보다는 그 사람의 사회성과 지적수준이 드러나는 삼행시 시험으로 자칫 느껴질 수도 있으나 지나 보니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청춘은 바로 지금. 청바지!” 하면 ‘청바지!’ 하며 화답하고, ‘건강하고, 배려하고, 사랑하자’ 하면서 운을 띄우면 ‘건! 건강하고, 배! 배려하고, 사! 사랑하자’ 라고 외치면서 잔을 부딪힌다.  이렇게 다양하고 아름다운 뜻을 짧은 건배사에 담을 수 있는 것에 역시 한글의 우수성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한분 한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몸담았던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퇴직 후 이렇게 활동을 하시니 열 네다섯분 모인 저녁 식사 자리였지만 나이를 다 합하면 1,000년은 될 것 같다.  한국어와 태권도를 중심으로 한국문화의 국제교류, 그리고 ‘동물사랑, 생명존중’ 문화 확산을 위해 최선을 다해 또 오랜 친구, 선후배와의 잊지 못할 추억담도 나누며 즐겁게 활동에 임하시는 모습을 보며 선한 목표를 위해 봉사를 먼저 시작하신 선배님들의 내공과 보람이 느껴졌다.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이 생각났다.  






여러 대사님을 모시면서 다양한 대사님의 개와 고양이를 만났다. 그 중 도베르만 Snoopy도 있었는데 공식행사로 관저에 가면 개가 먼저 마중을 나왔다. 외투 거는 것을 안내하듯 지켜보고 식사중에는 다른 곳에 가 있다가 헤어질 때 다시 나와서 인사를 하는 갈색 견공 스누피는 딱딱할 수 있는 외교행사에 웃음을 가져다 주는 마스코트였다.  대사님 뿐 아니라 한국으로 발령받은 많은 외교관들이 애완동물을 데려온다. 해외에서 동물을 데려오는 일은 사람을 비행기에 태워서 오게 하는 일 보다 훨씬 복잡하고 까다롭다. 그래도 발을 동동 구르면서 검역, 접종, 건강증명서를 준비하여 자식 대하듯 데려오고 임기가 끝나면 다음 발령지로 함께 떠난다. 선진국일수록 애완동물에 대한 배려, 관리가 더 잘 되고 있다고 느낀 것도 그때다. 


지금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직장은 사무실에 애완동물 동반이 가능하다. 워싱턴에 본사를 둔 언론사인데 서울 지사가 공유 오피스인 위워크(Wework)를 쓰고 있어서 막상 미국 본사에는 불가능한 애완견, 애완묘와의 근무가 이곳에서는 가능한 것이다.  아이들 어릴 때 둘째 언니가 사는 남부 독일로  4주간 여름학교를 보낸 적이 있는데 그때  선생님 한 분이 아주 큰 개와 함께 근무하였고 내가 학부모 상담을 갔을 때 개를 옆에 두고 쓰담 쓰담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던 기억이 난다.


위워크의 경우 ‘크리에이터 최고의 친구 (Creator’s Best Friend)’라고 쓴 배너와 함께 입구 한 켠에 배변 패드, 물그릇, 밥그릇, 방석등을 비치해주고 입주사 회원에게 서비스로 제공한다.  사무실에 동료들이 개를 데려온 경우를 서너 번 보았는데 분위기가 더 좋아지고 정서적 안정감이 들었다.  또 무엇보다 견주는 더 편안한 마음으로 집중할 수 있어 반려동물의 근무지 동반이 업무효율을 높일 수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는 반려동물 산책도 되고 옆에 앉히고 커피도 마실 수 있는데 막상 위워크가 입주한 빌딩 중에는 동물의 엘리베이터 탑승을 금하는 곳이 있어서 계단으로 걸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어디까지 반려동물의 반려가 가능한지 로이와 하루 동안 실험해 보기로 했다.


우선 아침 출근길과 사무실 내 자리에 앉기까지 아무 문제 없다.  자차로 이동하고 강아지 백 팩을 이용했다. 안내 데스크 옆 애완동물 용품 박스가 비어 있어 문의하니 바로 배변 패드 등을 채워 주었다.  점심시간 인사동의 한식당에 갔는데 케이지가 있어서인지 아무 문제 없이 맛있게 식사를 하고 그 옆 카페에서도 오히려 강아지를 귀여워 해 주었다.  머리를 하기로 한 미용실에서는 다른 분들이 놀랄 수 있다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루 종일 단 한곳 빼고 견공동행이 아주 순조로 왔다.  


이 정도면 서울의 반려동물 동행 지수는 나쁘지 않다. 그래도 동물 동반은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서 걱정 시작이다.  공공장소에서 반려 동물을 어떻게 대해 줄 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마스크 필수 장소도 줄어 들고 재택 근무가 출근으로 바뀌는 요즘, 집에 오랜 시간 남겨질 반려동물들 그리고 밖에서 신경 쓸  반려인들이 좀 더 많은 장소에서 좀 더 편안하게 함께 할 방법은 없을까? 생명의 시간표는 모두 다르지만 함께 하고 싶은 순간에 너무 많은 걱정이나 고민 없이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이면 얼마나 좋을까.

워킹 맘으로 살면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 출근하려면 늘 맘이 무겁고 아쉬웠던 생각이 난다.  크리스마스나 패밀리 데이 등 가족 초청 행사 때 외에는 내 근무지에 아이들을 데려가 본 적이 없다. 공공기관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로이와 함께 출근한 오늘이 참 특별하다. 집이나 애견 까페 외의 장소에서 함께 긴 시간을 보내니 어떤 점이 불편할 지 어떤 사항이 걔선 되면 좋을지 생각도 많아진다. 애완 동물 양육 인구 1,500만 시대라는데 활발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반려동물 동반에 관한 상세한 가이드 라인이 나오면 좋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녀석 피곤했는지 자동차 조수석 내 코트 위에서 곤히 잠을 잔다.  사이드 미러에 비친 뿌연 하늘이 벚꽃색으로 물들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글쓰기 효과는 결국 돈으로 이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